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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20. 2021

'백수오빠'같던 아이의 방학 끝에서

너에게 방학은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 게임해도 돼요?"


아침 먹인 것을 치우고 돌아서니 소파에 드러누워 티비를 보며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던, 그야말로 멀티로 놀던 아이(10세)가 나를 부른다. 게임을 해도 되냐며.


우리집 방학규칙은 오전에 일정량의 공부를 한 후에 점심 먹기 전까지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다. 자유시간 중 원한다면 30분의 게임시간이 주어진다. 물론 30분으로 정해놓은 게임시간은 늘 1시간이나 그 이상으로 이어지지만 일단 규칙은 그렇게 정해놓았다.


그런데 아이는 오전공부를 하지 않은 채 동생이 보는 EBS우리집유치원을 보며 깔깔대더니 이젠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고 물었다.


"오전 공부 했니?"

"아 엄마~ 오늘만(게임 먼저 할게요)~~~"


아이는 내가 싫어하는, 발을 퉁퉁 차고 몸을 비틀며 떼쓰기를 시전한다. 떼를 쓴다고 허락할 내가 아니기에 단호히 답한다.


"놉!!!"


게임을 하고 싶으면 오전 공부를 먼저 하라는 말과 함께.



온라인 수업을 하던 방학 전에도 그랬지만 방학 후 유독 아이가 '동네 백수오빠'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삼시 세끼 따박따박 받아먹으면서 드러누워 티비 보다 게임 하다 잠이 오면 자다가..생각 없는, 백수인 게 오히려 즐거운 그런 사람 말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학원도 다니지 않으니 영락 없는 백수오빠 콘셉트다. 여기에 때마다 밥 타령, 중간중간 간식 타령을 늘어놓으니 심한 말로 '삼식이' 생각이 날 때도 더러 있는데 부모로서 아이를 먹이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니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찌됐든 방학을 맞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정해놓은 학습량과 시간이 있는데 이렇게 실랑이를 해야 하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어느덧 개학이 코 앞이다. 길게만 느껴졌던 방학이 금세 지났다. 문득, '아이는 방학이 즐거웠을까' 싶었다.


예전처럼 친척집에 놀러갈 수도, 친구들과 모여 물놀이를 할 수도,  친구들 집에 몰려다니며 놀 수도 없으니 어쩌면 아이에겐 방학이나 온라인수업을 하는 학기 중이나 다를 바 없겠다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아이의 방학이 아깝고, 그런 아이가 안쓰러웠다.




방학에는 충전의 의미가 있는데 그 충전은 다시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학기 중 바쁘게 보내느라 놓친 휴식의 충전, 학기 중 부족한 학습에 대한 충전.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다가올 학기를 위한 준비도 넣을 수 있겠다.


아이들은 전자의 방학을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후자의 방학에 치우치지 않았나 깊이 생각해본다. 물론 내게는 그렇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하루는 오전 공부고 뭐고 다 두고 일단 집을 나섰다. 멀지 않은 한 베이커리 카페를 찾았다. 야외 테이블이 여유있게 있어서 사회적 거리두기도 가능한 곳이었다. 아이가 고른 빵과 음료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약간의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나름 야외학습이었다. 아이는 신나했고,  그런 아이를 보는 나도 기분이 몹시 좋았다.


아이는 '방학 중 기억에 남는 날'을 묻는 내 질문에 그 날을 빼놓지 않는다. 별 것 아닌 일상의 변화가 아이에겐 큰 기쁨이었던 모양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열흘 후면 개학이다. 이제 와서 학습의 충전보다 휴식의 충전에 중점을 둘 순 없다. 하지만 남은 며칠의 시간만이라도 아이에게 방학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정해놓은 공부를 접어놓고 한적한 놀이터를 찾았다. 일단은 놀만큼 놀아보자. 하루씩은 그런 재미도 좀 있어야 방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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