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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27. 2021

떡볶이를 먹자고 했다 [육아에세이]

그렇게라도 사과하고 싶었다

저녁으로 떡볶이를 사다 먹자고 했다.

아이는 좋다고 했다.

산책 삼아 걸어갔다 오자고 했다.

아이는 또 좋다고 했다.


오가는 길에 아이는 몇 번 힘들다 했지만

예전처럼 떼를 쓰진 않았다.

가을장마로 습한 날씨에 마스크까지 쓴 탓에

더 힘들었겠지만

아이는 한 번씩 구시렁댈 뿐이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와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몹시도 자랑스러웠다.



편하게 배달을 시켜 먹어도 됐겠지만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니

집 밖에 나갈 일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라도 바깥공기를 쐬자는 마음이었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사실은, 낮에 아이를 많이 혼낸 게 미안해서

저녁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먹게 하고 싶었다.


나는 한 번 쌓인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편이다.

아이의 어떤 행동에 화가 나기 시작하면

쉽게 멈춰지질 않는다.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미 감정에 지배당한 동물일 뿐.


그래서 매번 화를 내고, 화를 내고

또 화를 내고서야 상황이 종료된다.

그러고는 마음이 괴롭다.

'난 오늘 또 이 모양이구나'

아이 역시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였다.

오랜만에 같이 걸어보자고 했던 건.

이유가 어찌 됐든

낮에 있었던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 대신

덥고 힘들었지만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기억이

그날의 전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같이 떡볶이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낮의 일은 잊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슬쩍

낮에는 엄마가 미안했다

사과할 타이밍도 만들고 싶었다.



아직도 완전하지 않고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이 엄마는

매번 이렇게 아이에게 잘못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는다.


부디,

내가 아이의 앞날을 망치지 않길,

훗날 아이의 기억에

좋았던 추억만이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육아 #육아에세이 #육아일기 #엄마의고민 #부모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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