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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Sep 14. 2021

반장선거날은 피자 먹는 날

육아 에세이

결과보다 도전하는 아름다움을 알길 바라며...


큰 아이 반에서 반장선거가 있었다. 요즘 표현으로는 '(학급)회장선거'다. 아이는 회장이든 부회장(부반장)이든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지난 학기에 입후보 했다가 탈락의 고배를 마신 탓에 다시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회장선거 전 날, 저녁밥을 먹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1호야. 내일 회장선거라는데, 선거 나갈거야?"

"모르겠어. 가희(가명)도 나간대고, 이훈이(가명)도 나간대. 나는 안 될 거야."


아이는 잔뜩 풀이 죽어서 말했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1호야. 엄마도 초등학교 때 반장되고 싶어서 반장선거 할 때마다 나갔어. 근데 다 떨어졌다?!"

"진짜?"

"어~. 맨날 떨어졌어. 그래도 엄마는 매번 용기를 내서 반장하고 싶다고 했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해봐야지. 엄마는 반장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매번 용기를 냈으니까 아쉽지는 않더라~."


아이는 낮게 "으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픽사베이

사실, 나는 한 번도 반장선거에 나가본 적이 없다. 반장이든 부반장이든 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아무도 나를 안 뽑아주면 어쩌지?', '떨어지면 엄청 창피할거야' 온갖 걱정들이 내 용기보다 앞섰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거짓말을 했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아이는 나처럼 용기가 부족한 탓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도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호야. 엄마는 네가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면 엄청 축하해주겠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좋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엄청 기쁘고, 네가 참 대견할거야. 그거 할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하고 싶어도 말 못하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게 멋있더라~"


내 마음이 잘 전해졌는지 아이는 조금씩 눈을 반짝이는 듯 했다. 


"좋아! 그럼 1호가 내일 반장선거에 용기내서 도전하고 오면 우리 도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점심에 피자 먹자~. 어때?"


쐐기를 박았다. 예상대로 아이는 "나 회장선거 해 볼래!"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고. 




아이는 회장도, 부회장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1학기때보다 한 표를 더 얻었다며 좋아했다. 나도 박수치며 축하했다. 


"엄마. 나 안 됐지만 괜찮아. 내년에 또 하면 되지. 내년에 안 되면 5학년 때 하면 되고, 안 되면 6학년 때 하면 되니까."

"맞아. 6학년때도 안 되면, 중학교도 있고 고등학교도 있잖아. 할 수 있는 날들이 엄청 많아~."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점심밥으로 약속한 피자에 치킨까지 얹어 준비했다.


ⓒ픽사베이

살다보면 수시로 도전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생소한 식재료를 먹는 것, 높아 보이는 계단을 오르는 것, 처음 가는 학원의 첫 등원날 등도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도전의 순간이다. 나는 아이가 그때마다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할 수 있을까?' 망설이고 포기하는 대신 '못하면 어때! 또 해보면 되지!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마음이 단단한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도전 앞에서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고 주변에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도전을 하기 위해 무한의 용기가 필요하다. 내 용기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들도 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셀 수 없이 많다.


마흔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그냥 그렇게 해 볼걸' 싶은 것이 어찌나 많은지, 그런 아쉬움들이 계속 몰아쳐 우울함으로 이어지는 날들도 있었다. 아이는 먼훗날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나같은 아쉬움이 적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누가 보면 하찮게 여겨지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급회장선거일 뿐이지만 나는 이것을 통해 아이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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