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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Nov 05. 2021

너의 웃음소리가 내게 주는 의미

밀착 육아 에세이

유독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그 이유가 아이들의 아이다움이 버겁기 때문일 수도 있고, 코로나19에 따른 피로감일 수도 있고, 내 스스로의 낮은 자존감일 수도 있다. 또  나를 둘러싼 여러 환경들일 때도 있다.


뭐가 됐든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다 싶으면 나는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었다. 

ⓒ픽셀즈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음악 속에 숨었고, 책을 펼쳐 이야기 속으로 숨었고,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뒤로 숨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한 잔 술 뒤에 숨었고, 핸드폰 속 시시콜콜한 가십거리 속으로 숨어들었다. 때로는 이불 속에 파고들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려 애썼다. 


빨리 육퇴를 하고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육퇴 후 혼자만의 시간은 허무했다. 아이돌들이 공연 후 숙소로 돌아와 느낀다는 공허함이 이런 걸까. 온종일 그렇게 갈망했던 시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며 빠르게 TV 채널을 돌렸다. 


숨어버리고 싶은데 어디에도 숨을 수가 없었다. 내겐 어떤 방식으로든 속 시원한 위로가 필요했는데 어디서도 그것을 찾을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날도 엉망진창이 된 거실에서 뒹굴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 쉬고 있었는데 순간 아이의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분명 나는 가슴이 답답했고, 빈틈 없이 어질러져 있는 거실을 보며 화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었다. 


ⓒ픽셀즈


그래서 알았다. 내게 가장 큰 위로는 아이의 웃음소리였다는 걸. 그 웃음소리는 꽉 막힌 속을 펑 뚫어주는 소화제 같았다.


나는 늘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고, 어떻게 하면 인정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고민 앞에서 무너지기도 여러 번. 때로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시도할 수 없는 일들도 있어 좌절했고, 나의 고민을 알 턱 없는 아이들이 온 집안 구석구석을 어지르고 다니며 시끄럽게 노는 것이 거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나를 발견할 때면 더 깊은 곳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결국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더 지치고, 더 숨을 곳이 필요한 악순환이었다.




얼마 전 종영한 <갯마을차차차>를 재밌게 봤는데, 극 중 혜진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임신 중인)윤경에게 사람 키우고 돌보는 것 참 어려운 일인데 잘하고 있으니 정말 훌륭하다고 말한다. 그 말에 윤경은 다시 자신감을 얻는다. 여전히 많은 시간 혜진이 부러운 나지만 그 말은 내게도 큰 울림을 줬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내게 '나는 이 생명을 키워내고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준다고나 할까. 그건 내게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위로이자 응원이다.


ⓒ픽셀즈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여러 번 숨고 싶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숨을 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내게 숨을 곳이 돼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든든해진다.


이렇게 아이가 늘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하나의 이유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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