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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Nov 26. 2021

잠재적인 술친구

육아 에세이

나는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술 자체도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맛 좋은 안주에 술 한잔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코로나 이후로는 늘 '혼술'이다. 그전에도 혼술을 자주 하곤 했지만 자발적인 혼술과 강제적인 혼술은 엄연히 결을 달리한다. 자발적인 혼술은 나름의 회한을 날려보내는 '낭만'이라고 하면, 강제적인 혼술은 회한이 더 쌓이는 '서글픔'이랄까.

ⓒ픽사베이


어떤 걱정 근심 우울감 등에 혼술이 간절히 필요하던 날. 내 맘속엔 두 아이를 얼른 재워야겠다는 조급함이 가득했다. 때문에 뭉그적거리는 아이들을 향해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굳이 애들을 재워야 하나. 그냥 같이 먹지, 뭐~. 


"얘들아. 우리 막창 먹을까? 엄마 막창이 너무 먹고 싶네~~?"


개인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술 마시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술 마시고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막창이 도착하고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았다. 난 급하게 냉동실에 넣어둔 소주 병을 꺼내왔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막창을 씹으면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TV나 책에서 봤던 이야기, 예전 이야기들까지...


막창과 소주 한 병을 놓고 우린 셋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내 아이들은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인데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서는 들었던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졌다. 어떤 불안과 걱정으로 파도치던 내 마음도 어느새 잔잔해져 편안했다. 위로가 필요했는데 아이들은 그 자체가 가장 빠르고 강한 위로였다.


신나서 자기 얘기를 이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얼른 커서 이 아이들과 술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물론 아이들이 그만큼 컸을 때 나에게 시간을 내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지인들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겠다 싶은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때로는 빨리 커라, 또 때로는 천천히 커라 한다. 둘째 아이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최근 들어서는 유독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날은 얼른 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아이가 크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새롭게 경험하게 되는 것도, 새롭게 느끼는 것도 참 재밌다. 지나간 시간의 아쉬움을 생각지 못했던 새로움이 채워주는 듯하다.


이번엔 술친구였는데 다음엔 또 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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