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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알려준 친구의 의미

고맙다, 같이 놀아줘서.

by 이니슨

'띵동 띵동' 집에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인터폰으로 봤을 때 이미 사람은 가고 없었다. 택배 올 것도 없었고, 음식을 배달시킨 것도 아니었다. 내가 택배를 주문해 놓고 잊은 것이 있나 싶어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뽀얀 동치미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그날, 아침부터 아이가 머리가 어지럽다고 했다.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는데 지난밤 일이 생각났다. 저녁으로 고구마와 과일을 배불리 먹은 아이가 그만 먹겠다고 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설사였다. 그땐 몰랐는데 어지럼증까지 생긴 걸 보면 음식을 급하게 먹어 탈이 난 것 같았다.


내 아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며, 평소 똑똑하기로 소문난 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애가 어지럽다는데 왜일까? 병원 가야 할까?" 친구는 내 생각처럼 체한 것 같으니 하루 쉬게 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선 몇 시간 후 이렇게 동치미를 갖다 준 것이다.


"한 그릇 쭉 먹여봐~. 나도 애들 소화 잘 되라고 먹여~"


아이는 동치미 한 그릇을 마시고 어지러움이 호전됐다. 물론 동치미의 영향인지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동치미에 담긴 그 친구의 마음이 아이를 낫게 했다고 생각한다.


people-5306374_1280.png ⓒ픽사베이



사람 간에 마음을 나눈다는 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아도 좋은 것이 생기면 나누고 싶고,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내겐 요즘 그런 친구가 둘 있다. 한 동네에 사는 친구인데 동네 친구들 중 코로나19 전 같이 운동을 하면서 더 가까워진 친구들이다. 희한하게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 싫어하는 성격이나 아이 키우는 방식까지 참 비슷하다. 더 웃긴 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도 '혹시 저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소심함까지 닮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보통 여자 셋이 모이면 두 명이 유독 친해 한 명이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데 우리 셋은 그런 것도 전혀 없다는 것.



이렇게 서로의 성향이 비슷하기에 우린 쉽게, 또 빠르게 '특별한 절친'이 됐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선 그렇게 소심하지만 우리끼린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또, 어떤 말을 해도 오해해 듣지 않는다. 욕을 섞어 가면서 막말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덕분에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말투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그 친구들과 운동 끝내고 커피 한잔하면서 수다 떠는 시간은 큰 힐링이었다.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며 웃다보면 다운됐던 기분도 어느새 하늘로 솟아올랐다. 육아와 가사와 그 밖의 일들로 지쳐있는 마음도 즐거움과 희망으로 물들곤 했다.


코로나19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젠 헬스장이나 커피숍이 아닌 스마트폰 메시지창 속에서 그들을 만나다. 코로나19 이전과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언택트 배달'을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좋은 것이 생기면 잘 나누곤 했는데 만나서 줄 수 없으니 집 앞에 전달할 물건을 놓고 오는 것이다. 마치 택배기사처럼 말이다. 그날의 동치미 역시 그런 방식이었다.





(이글을 쓴 날을 기준으로)며칠 전은 설날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주지가 다르면 가족 간에도 5인 이상 모이는 것을 자제하라는, 역사에도 남을만한 명절이었다. 친구들도, 나도 부모님댁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 우린 '법적으로 하라고 하면 그대로 하는 성격'도 참 닮았다.


나는 명절 분위기를 내보자는 마음에 전을 조금 부쳤다. 그러고는 두 접시를 따로 담아 친구들에게 건넸다. 언제나처럼 언택트로. 겨우 한 접시였는데도 감동이라며 고마워하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나도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내가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다른 친구 하나도 언택트 배달에 나섰다. “싫어! 오지 마~. 나 혼자 나눠주고 실컷 생색낼 거야~”라는 나의 말에도 친구는 집을 나섰다. 나눠 줄 것이 딱히 없다더니 된장에 반찬거리에 간식거리까지 잔뜩 담긴 보따리가 전해졌다. 그것을 풀며 어릴 적 명절에 과자 선물세트를 받았을 때처럼 설렜다. 그날 밤 우리는 형제간의 우애를 다룬 민담 <의좋은 형제> 속 형제처럼 서로의 집을 찾아 마음을 나누기에 바빴다. 다른 한 친구는 고마움과 함께 자신은 정말 나눌 것이 없다고 아쉬워하기도, 미안해하기도 했다.


“야, 우리끼리 무슨 기브 앤 테이크야! 그냥 받으면 되지~.”


며칠 후, 명절에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커피 사러 갈 건데 뭐 마실래?'라고 묻는 것이었다. 자신의 커피만 사서 마시면 될 것을 굳이 내 커피까지 챙기는 친구였다. 그리곤 언택트 배달까지~! 커피 한 잔에 담긴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 유독 맛이 좋았다.



friends-5408036_1280.png ⓒ픽사베이


코로나19로 별일 아닌 것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지만 이렇게 서로를 아끼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여러 예민함을 잊게 하고, 또 다른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메시지창에서 순식간에 200~300개 이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더 많이 나누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작은 나눔에도 감사할 줄 아는 친구들이 있기에 답답한 집콕 생활도 할 만하다.


당분간 우린 이렇게 메시지창 속에서 수다를 떨고, 언택트 배달로 서로의 따뜻함을 전할 것이다. 그렇게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서로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친구란 그런 따뜻한 의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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