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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만 살다가
'나 자신'을 잃을까봐

육아에세이

by 이니슨

마흔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져서인지, 그래서 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어른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인지 요즘 들어 부쩍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픽사베이 by lavnatalia


아이를 낳은 이후로,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내 이름 석 자는 사라지고 누구 엄마로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한 것이다.


모든 업무를 재택으로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재택을 자주 하긴 했지만 외부 미팅을 모두 미루고 있다는 게 그때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일까. 업무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매일 계획했던 일들을 다 해내지 못했다는 무능력함이 나를 괴롭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자괴감이 더욱 깊이 나를 잠식한다.


더욱이 나는 내 스스로를 지인들과 비교해 더욱더 나락으로 밀어 버린다.


같이 아이를 키우고, 코로나19로 같이 힘든 와중에도 지인 A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사업을 시작했고, 지인 B는 틈틈이 재택 알바를 하고 있고, 지인 C는 공부방을 운영하며 '잘나가고' 있으며, 지인 D는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며 자격증 취득에 돌입했다. 그 외의 여러 지인들은 여전히 회사 생활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그들을 보며 '멋지다', '부럽다' 생각하는 나는 매번 뒤처지는 비참한 기분이다. 그 감정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것은 부모라면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것만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누구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냥 나'다.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그냥 나'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나는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픽사베이 by lavnatalia


'내가 나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 시국에서 내가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생각해 봤다.



업무는 가능한 오전 중에 끝내기로 했다

큰 아이는 등교와 원격 수업을 격주로 하고, 작은 아이는 9시에 등원해 11시 30분에 하원한다. 내가 온전히 내 뜻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이 2시간 30분 뿐이다. 이 시간에 집중력을 높여 최대한 많은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돌아온 이후에는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이 시간만큼은 엄마에게 혼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다소 힘든 부탁인 듯 하다.



내 내면을 채우기로 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한동안 펼치지 못했던 책을 다시 펼쳤다. 의도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으려고도 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도 책 보기를 즐겨 하게 된다길래.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는 오디오북을 듣는다. 내 내면이 단단해지면 아이들에게도 더 따뜻한 엄마가 될 것이다.



내 건강도 돌보기로 했다

올해 초 건강검진을 한 이후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가장 필요한 것은 다이어트.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하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식품을 먹으며 식단 조절과 가벼운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 가벼운 운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한 날들도 있지만 가능하면 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식을 넓히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수고를 들이지 않고 내 지식을 넓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TV의 교양 프로그램이다. 예전에는 TV를 틀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만 보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교양 프로그램에도 재미를 붙였다. 재밌게 보다 보면 내 교양도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디오북도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직접 읽기에 어려운 책들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좀 더 이해가 잘 된다.

ⓒ픽사베이 by lavnatalia


이봄 작가의 에세이 도서 <40에는 긴 머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자식을 잘 키우고 싶고 남편에게 좋은 배우자가 되고 싶으니 현모양처를 꿈꾸는 거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마흔의 삶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에 느끼는 실망감은 어떻게 해도 감춰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어야 할까. 모르겠다. 모르지만, 이게 전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내 전부가 되게 둘 수는 없다. 내 삶을 아이들에게만 걸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나를 갈고닦아야 한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다보면 무엇이든 길을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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