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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지하다 Feb 23. 2023

16세 딸의, 32세 남자와의 연애를 인정한 엄마

자식도 없는 내가, 쿨한 더치 엄마에게 배운 점.

나의 가장 최근 비행에서 나와 같은 갤리에서 일을 하던 52세 네덜란드 동료. 그 나이로 보이지 않게 건강미 넘치고 예쁜 아줌마였다. (아줌마라는 표현 말고 다른 걸 쓰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날은 밸런타인데이였는데, 브리핑에서부터 밝은 카리스마와 함께 입담이 넘쳤다.

몇 년 전 이혼을 한 뒤로 몇 번의 연애에 지쳐 올해 밸런타인은 제발 아무 남자도 자기 집 우편함에 카드를 넣을 수 없게 우편함을 테이프로 막고 왔다는 재미난 아줌마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여자의 집 우편함에 직접 카드를 넣는 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그게 그 50대 아줌마 세대의 이야기인지 아직도 지속되는 문화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어찌 됐건 이 말은, 아직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브리핑이 끝나고 내 앞에 걷던 그 아줌마를 올려다보니 키가 무척이나 커서 놀랬다. 나중에 물어보니 키가 180cm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 남편의 키가 174cm였다고 했다. 본인이 그렇게 큰데 본인보다 키 작은 남자와 결혼하는 게 신경 쓰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나는 키가 163cm으로 아줌마보다는 훨씬 작아서, 난 절대 나보다 키 작은 남자와는 연애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므로 갑자기 궁금했다. 실제로 그러한 이유로 무척 괜찮았던 남자 한 명을 거절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자기보다 키가 작은 것이 적지 않게 싫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에 결혼을 했고 두 명의 딸을 낳고, 지금은 이혼을 해서 딸들은 남편과 함께 산다고 했다. 자신이 비행을 다니기 때문에 비행 간 동안은 챙겨줄 수 없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다. 첫째 딸이 현재 16살(물론 외국은 만 나이를 쓰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고1이거나 고2 정도일 것이다), 둘째가 13살이라고 했다.


내가 경험한 바로, 같이 비행하는 네덜란드 아줌마들은 이혼한 사람들 비율이 꽤 높고, 이혼이라는 것이 네덜란드에선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혀 거리낌 없이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물론 사랑하는 한 명의 사람과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혼도 관혼상제 중 혼 다음에 올 수 있는 추가 옵션 일 뿐이고,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사랑이 식어서 이혼을 했다'라는 심플한 마인드를 나는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전 남편을 비난하거나, 이혼을 해서 불행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아줌마들은 별로 본 적이 없고, 이혼 후에도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자식들과의 사이도 좋고, 자신의 삶을 이어나간다. '이혼'이라는 사실은 삶의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고, 그것이 자신을 '이혼녀', '결혼에 실패한 사람' 등으로 규정짓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혼이 흔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혼'을 쉬쉬하거나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마저도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저 개인의 삶의 결정일뿐이다.


아무튼, 외국 생활 11년 차로 웬만한 이야기로는 서양의 문화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나지만, 그 아줌마가 자신의 첫째 딸, 고 2 정도 되는 그 딸의 남자친구가 32살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네 딸 나이의 정확히 더블이자나 그 남자는!!! 그리고 무엇보다 네 딸은 미성년자인데, 32살 남자랑 만난다는 게, 너 정말 괜찮아??? 그 남자가 네 딸이랑 연애하는 거 자체가 불법 아니야???"라고 물었더니,

"내가 만약에 반대를 한다면 내 딸은 창문을 열고 밤에 도망쳐서 그 남자를 만나러 다녔을 거야. 난 내 딸을 잘 알아. 그러니 반대하면서 몰래 만나게 할 바엔, 그냥 받아들여서 내가 그 남자와 친구가 되는 수밖에 없었어. 근데 그 남자 사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엄청 웃기고, 내 딸한테 잘하고"


딸이 도대체 어떻게 32살 남자를 만나게 됐냐고 물었더니 딸이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그 레스토랑의 사장이라고 했다. Wow... 난 정말 할 말을 잃었지만 이것은 내가 할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었다. 네덜란드에서 16살이면 아마 이미 친구들과 파티에서 술도 마시고, 심지어는 대마초조차 피어봤을 나이다. 이미 다수는 성관계도 경험했을 나이다. 만 16살, 이미 성인 흉내를 내기 시작한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그녀 딸의 결정이고, 그걸 '허락'이 아닌 '인정'을 한 이 아줌마가 나는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딸의 선택이기 때문에 '허락'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내가 이미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법적 나이로 술만 못 마실 뿐, 나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다. 나도 중3 때 첫 연애를 했고, (물론 나보다 16살이 아니라 1살 많은 오빠였다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 엄마가 말렸다고 한들 나도 몰래 계속 만났을 것이다. 다만 우리 엄마는 말리지 않았지만 그 오빠의 엄마가 말렸었다. 아들 공부하는 데 방해되게 연애를 한다고 만나지 말라며 나를 찾아오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우리는 만났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이 아줌마 말이 맞는 것이다.

어차피 엄마의 허락이 없었더라도 아줌마의 말대로 아줌마 딸은 창문을 타고 도망쳐서 그 남자를 만났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딸은 엄마에게 숨기는 게 생기고, 그로 인해 엄마를 피하게 되고, 대화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게 아줌마의 지론이었다. 내가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근데 미성년자인 네 딸이, 자기보다 나이가 두 배나 더 많은 남자랑 섹스를 한다고 상상하면 진짜 끔찍하지 않아?"라고 너스레를 떨며 물었더니, "그래서 아예 그 생각은 하지도 않아. 사실 딸 방에서 물건들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먹는 피임약이 전혀 없던 걸 보니 둘이 아직 섹스는 안 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아줌마에게, 나는 더욱더 장난기를 부려 "피임약 안 먹고, 콘돔 쓸 수도 있겠지"라고 했더니 아줌마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아줌마는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자신감 넘치고, 일도 잘하고,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쿨 내를 풍기는 더치 아줌마였다. 나는 아줌마에게 말했다. I respect you. 내가 어느 날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미성년자인 상태로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난 과연 내가 너처럼 내 딸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을지 난 자신이 없다고. 그러자 아줌마가 말했다. 네가 반대를 하더라도 하게 되어있다고. 그러니 그냥 그걸 받아들이고, 오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남자를 오히려 집에도 더 자주 데려오게 해서 더 잘 알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그리고 헤어지게 되면 배우는 게 있겠지...라고도 덧붙였다.

물론 이 아줌마가 extra cool한 더치 엄마인지, 다른 더치 엄마들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10살 넘게 차이 나는 남자를 만나는 십 대 더치 걸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늘 우리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사건을 평가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처럼 자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들의 인생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행동양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의 일례로, 내 지인의 지인이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던 중에, 그분의 어머니가, 딸이 혼기가 한참 지났는데 강아지까지 키워버리면 영영 결혼을 못할 것 같아 엄청 큰 반대를 하셔서 결국 반려견 키우는 것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취를 한다고 했다. 나로서는 왜 혼자 독립해 사는 나이 마흔 여성이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그 부모가 개입을 하는지도 의아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부모님의 의견 때문에 포기한 마음도 헤아리기 쉽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살면서 부모님의 말은 들어본 적이라고는 없는 나, 나쁜 자식의 이기적인 생각이다.


물론 성인이 된 자식의 인생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그 마음도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마음에서라고는 하나, 내가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중하고, 어떤 선택을 하건 내가 잘 키워냈을 자녀의 선택을 믿고, (물론 내 자식이지만서도 '이 자식이...!' 하는 순간이 올 수는 있겠지만...) 지지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 비행 와서도 수영이 하고 싶어서 실내수영장을 찾아가겠다는 이 멋진 50대의 아줌마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남겨준, 생각할 거리를 준, 기억에 남을 동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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