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mbti는 사실 INJI입니다.
지금처럼 mbti가 최고의 스몰토크 주제가 되기 한참 전의 시절,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나는 학교진로상담센터 같은 곳에서 mbti 테스트를 두 번 했었다.
2007년엔가, 내가 처음 받았던 것은 ESFP였고, 2009년에 다시 했을 때는 INFP가 나왔었다.
그 2년 사이에 나를 내향형으로 만드는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날 나의 기분에 따라 내가 대답을 달리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향과 외향의 차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던 시절엔 그저 '내가 내 성향과 맞지 않는 과에 와서 조금 내성적이 되었나 보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안정적인 것보단 무모한 도전을 더 선호하고, 관료주의와 수직적 계급구조가 상징하는 모든 것에 치를 떨던 내가 행정학과에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많은 내 동기들은 안정적인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위해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고, 그런 과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스스로 떨어져 나오며, 학사경고를 간신히 면할 정도로만 공부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에 보내주는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들에 지원해서 해외에만 6번을 다녀온 뒤 졸업했다. 3년이란 휴학시기를 모두 꽉 채운 뒤.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나고 mbti라는 이름도 모른 채 했던 성격검사들의 결과는 기억도 하지 못할 무렵, 2021년, 친구가 요즘 핫하다는 성격검사를 아냐며 물어봤고 나는 그렇게 다시 mbti를 접했다. 그 유명한 16personalities.com이라는 웹사이트에서. 나는 또 한 번 '열정적인 중재자' INFP가 나왔지만, 당시 나는 호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대학교 시절에 했던 검사 결과를 기억하지도 못했고 그저 이 검사가 새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책상 서랍을 훑어보던 중 내가 2009년에도 INFP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12년 동안 이것이 똑같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굉장히 뿌리 깊은 INFP인가 보다 생각하며 지냈다. 그 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mbti 타입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나도 할 말이 없다 싶을 땐 가장 만만한 그 주제를 비장의 무기처럼 꺼내 들면서도, 마치 '한 개인의 정체성=그의 mbti'라는 공식처럼 타인의 mbti를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들을 의심했고, 나중엔 지겨워질 정도로 소비되는 mbti 관련 콘텐츠들에 식상함을 느끼면서도, INFP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맞아 맞아 나도 딱 저래'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mbti 토크에서 내가 가장 즐겼던 부분은 내가 INFP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주변에선 '네가 I라고? 당연히 E라고 생각했는데' 하는 것이었다. '난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해, 하지만 나의 사회성이나 Openness는 나를 E처럼 보이게 하는 거겠지'하는 얄팍한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정확하게는 I가 51% E가 49%였기 때문에 나는 울타리에 걸쳐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I반 E반이라고 하는 것이 마치 확고하지 못한 정체성처럼 느껴졌고, 사람들 또한 범주화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INFP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쉽게 사귀지만,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무조건 혼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성적이지는 않지만 내향적인 사람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떨 때는 I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나의 단점을 부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할 때도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 사회는 사회성을 무척 중시하고 사교적이고 모임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으므로. 하지만 며칠 전, 궁금한 마음에 mbti를 다시 해보았는데 ENFJ로 나왔다. 1년 반 만에 INFP가 ENFJ가 된 것이다. 53%의 E와 47%의 I. 올 해부터 큰 마음을 먹고 매일 아침 하루하루 마칠 일들은 철저히 계획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P에서 J로 된 것은 그렇다 쳐도 나는 16년 만에 다시 I에서 E가 되었다. 올해 들어 오히려 약속을 줄이고 정말 필요한 약속만 잡으며 살았는데도 E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도대체 이깟 성격테스트가 뭐라고 이렇게 소비되는 것인지, 역시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한국사회의 특징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뻔하디 뻔한 질문인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기보다, 그저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고 취미는 무엇인지, 조금 더 오픈형 질문을 던지는 건 어떨까 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이자, 불확실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한국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mbti로 정의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에 그렇게 mbti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 or I, S or N, T of F, J or P. 고작 이 여덟 개의 알파벳으로 16개의 조합을 만들어서 사람을 카테고리화하는 게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는 아니었을까? 나는 외부환경에 민감하고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내 내면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감정적일 때가 많지만 종종 이성적이기도 하고,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계획 없이 살다가도, 계획을 즐기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언니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이름이 마치 mbti 같다고. 듣고 보니 그랬다. 그래서 앞으로 누가 나의 mbti를 묻는다면 "전 INJI(아이엔제이아이)에요"라고 답하기로 했다. "네? 그런 mbti가 있어요?"... "꼭 mbti 한 종류 같죠? 제 이름이에요. INJI. 8가지 알파벳의 특성을 조금씩 혹은 많이, 그러나 모두 다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인간개체입니다. 8억 지구 인구를 16종류로 범주화하는 것만큼 지나친 일반화가 어디 있겠어요?" 물론 큰따옴표가 아닌 작은따옴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결국 나는 앞과 끝에 I가 두 개나 있는 extra I, mbti INJI타입이니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기승전mbti라는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