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가_ 양귀자의 <모순>

by 대강철저

어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퍽퍽 맞는 기분이 든다.


시작할 때는 분명 별 감흥 없이 읽고 있었는데, 덮고 나면 자꾸만 생각이 나는 책.

그래서 다시 뒤적이며 맞은 데를 기꺼이 또 맞는 책.

사람들이 인생 책이라고 부르는 책들에 괜한 거부감이 있는 나는 이 책을 처음 만나는데 오래 걸렸다.


바로 양귀자의 <모순>

처음 읽을 때는 아침 드라마를 보는 줄 알았다.

김장우냐 나영규냐. 고르는 건가?


그러다가 차츰차츰 책에 빠져들었다.

아마 이 문장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_ <모순> p122


받은 상처들을 데스노트처럼 간직하고 있는 나는 뜨끔했다.

고만 고만한 아이 셋을 키우며 씨족사회처럼 양가의 긴밀한 육아 도움을 받는 나는,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하고 자잘한 상처들은 조각칼로 새긴 듯 마음에 남겨두었다.


방부제를 뿌린 말들이 가슴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도움과 간섭은 세트메뉴와 같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아무의 간섭도 없는 진짜 독립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가슴 깊이 차올라 있다.


그런데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니.

한 대 맞았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삶이란 뜻이다.
_ <모순> p28


가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읽고 떠오른 포즈가 있을 것 같다.

나의 가난한 최초의 기억은 엄마의 생일선물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만 원짜리 머리핀을 사서 내밀었던 기억이다. 좋아하거나 최소한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걸 만원이나 주고 사 왔냐'며 다시 환불받아 오라던 엄마.


그때는 IMF였고 우리는 딸만 셋인 외벌이 가정이었다.

나는 만원을 함부로 써서 혼났고 결국 엄마의 생일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이 자동 재생되게 하는 문장이었다.

우리 집에서 축하와 파티는 한동안 찾기 어려웠다. 인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화려한 포즈를 취할 여력이 안됬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리 가족은 불행했을까? 가난하면 불행한 걸까?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_ <모순> p21


내가 나의 ‘행복하지 않음’에 당황하고 억울하듯,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불행에 속수무책으로 억울할 수밖에 없다. 왜 남의 불행에는 이토록 무관심하고, 나의 불행에는 이토록 과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걸까.


주인공 안진진의 삶 속에 얽혀있는 가족의 이야기가 신파가 아닌 이유는 아마도 어느 누구 하나 완벽하게 행복하지도, 완벽하게 불행하지도 않아서, 모두가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론 모두가 제멋대로라서 그런 것 같다.


일란성쌍둥이인 엄마와 이모의 상반된 삶, 행과 불행, 삶과 죽음을 보면서 과연 누구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렇게 부유한데’, ‘저렇게 팔자 좋은데’라는 말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을 수 없다.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양파처럼 겉과 속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이 사람살이이다.


책을 잠시 덮고 숨을 돌려 나를 돌아봤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과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같은 모습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왜 아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걸까?

한걸음 물러서 보니 민낯이 보인다.


아이들의 행 불행이 나의 인생의 성적표 같아서가 아닐까.

당장 1~2년 앞도 못 보면서 30~40년 앞을 내다보려고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적을지도 모른다.

나의 행불행의 기준이 아이들의 행불행의 기준과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_ <모순> p296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 살아가면서 탐구해야 하는 아이만의 삶이다.

아이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모순>을 덮으며 생각했다.



나나 잘하자.



내 인생만 나의 것이니, 나나 잘하자.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하느니 내 인생이나 잘 탐구하자.


어떤 책을 읽든 육아서로 읽는 이 몹쓸 습관이 아쉽지만,

결국엔 이 책도 아이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 인생의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자각.

행복과 불행의 경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깨달음.


그렇기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정작 아이들의 인생에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나의 인생을 탐구할 뿐이다.

또 스스로를 잡도리해본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참 무사태평이다.

아이들을 자알 키워 놓으면 알아서 자기 앞가림하며 자알 살거라는 그의 말은,

고생을 안하고 자란 자의 자만 같아 얄밉기도 하지만, 내겐 없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그러고보니 그렇네.

자꾸만 아이들 쪽으로 향하려는 고개를 돌려 나와 남편을 바라본다.

결국에 인생에서 내가 선택한 유일한 사람은 이 남자였지.

자꾸만 잊게 되는 나의 선택에 집중하자.


우리가 잘 사는 것.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자식에게 줄 수 있는게 없다.


안진진의 부모도 안진진에게 삶을 통틀어 보여줬을 뿐이다.

손에 잡히는 것만이 유산이 아니다.

부모가 긴 인생을 통해 보여주는 삶이야말로 무한히 반복되는 잔소리보다 막강한 법이다.


내가 읽은 건 소설이었는데, 내가 덮은건 육아서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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