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림밑천이 아니다

애를 셋이나 낳고도 엄마랑 싸운다

by 대강철저

친정식구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유난히 몸이 힘들었다.

내 나름의 효도여행이었는데 돌아오고 나서 엄마가 화를 냈다.

여행 가서 보니 니가 요리도 안 하고 이서방만 부려먹는 꼴이 보기 싫다고. 니가 좀 해라고.


나는 그 순간 참고 있던 인내심이 뚝 끊겼다.

나는 걷지도 못하는 쌍둥이에 첫째까지 데리고 부모님에 친정동생들까지 모두 챙겨 효도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덕분에 잘 다녀왔다는 말은 커녕 내가 제대로 요리도 안 하고 사위만 부려먹어서 본인이 힘들었다니.


나는 참아왔던 설움이 터졌다.

엄마는 친정엄마가 맞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체 힘들게 아이 셋 보며 엄마 아빠까지 챙기는 딸이 안쓰럽지도 않냐고.

지금 사위가 요리하는 건 안쓰럽고 딸이 허리도 못 펴고 애 보는 건 안 불쌍하냐고.

가족 여행을 갔다 왔으면 너 덕분에 잘 다녀왔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하기 힘드냐고.

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너 때문에 힘들었다는 말을 들어야겠냐고.


말하면서 느꼈다.

내가 숨이 깔딱거리게 힘들다는 사실을.

엄마의 말에 참을 수 없었던 것도 부드럽게 넘어가지 못하고 끓어 넘쳤던 것도.

모두 쌓여가는 스트레스에서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들 때문이었다.

엄마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너무 괴로웠다.

아예 도움을 받지 않고 이런 소리를 듣지 않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덫에 걸려 숨이 깔딱거리는데 덫에서 나올 방법이 안 보였다.


나는 집에서 노는 게 아닌데.

나는 아이를 돌보고 공정한 가사 분배를 하고 남편은 이런 나를 지지해주는데.

내가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해서 이서방이 고생하고 힘들고 그렇게 하다가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결혼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게 나에겐 스트레스였다.


하물며 내가 첫째를 낳고 나서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내 딸이 편하게 살았으면 좋을 것 같은데.

집안일은 적게 하고 너의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할 것 같은데.

엄마는 왜 내가 손이 까지도록 집안일을 해야 마음이 편할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데,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친정엄마와의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남편이 그랬다.

나와 엄마가 마치 오래된 부부 같다고.

서로가 최선을 다하면서도 말은 밉게 하고, 공감의 말, 감사의 말은 못 하는 오래된 부부.


육아 도움을 받는 주제에 조용히 삭히거나 부드럽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폭발시킨 내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아이들을 보면서도 웃음이 안 났다.

입맛이 없어 안 챙겨 먹으니 살이 쭉쭉 빠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와 나 사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차분히 써보았다.


1. 서로에게 마음이 상하고 있었다.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상대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엄마는 나를 위해 육아를 도우려고 했으나 나는 간섭이라 여겼고, 보답해야 할 짐이라고 여겼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실 거라 생각하고 간 여행에서 나의 노력은 무시되고 나를 힘들게 하는 말들에 무방비였다.


2.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이 버거웠고 버거움에 말이 세게 나왔다. 차라리 덜 도움받고 나도 덜 갔으면 서로가 적절한 거리가 있었다면 실망이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 서로를 찌르고 있는 고슴도치 같았다.


3. 부모와 자식 간에라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부부 사이의 관계가 어떠하냐에 대해서는 엄마아빠와 내 생각이 전혀 다르다. 나는 부부는 동등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은 남자가 여자보다 위고, 여자가 집안 일과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부 사이의 집안일 분배 등은 부부간의 합의에 의해서 정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집안일을 잘 안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부부 사이 일일지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이런 차이를 맞닥뜨리자 이건 부모님과 내가 합의를 할 일이 아니란 깨달음이 들었다.

이것은 경계의 문제다.

서로에게 존중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4. 못하겠는 것은 못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엄마 아빠가 필요할 때마다 나를 불러 부탁하는 일들에 대해 나는 무리인걸 알면서도 하려고 했다. '니가 제일 잘 도와준다'는 말에 나의 몫이라 생각하고 꾸역꾸역 해왔는데 그게 오히려 이렇게 힘든 순간에 억울함으로 폭발했다.


5. 뭐든 잘하려고 하지 말자. 무리하다가 탈 난다.

이번 여행은 무리였다. 그리고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도 무리다. 서로의 집을 문지방 넘듯 자주 오가는 것도 경계를 흐리는 일이다.


6. 생각보다 엄마와의 갈등의 골이 깊었다는 걸 느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즈음이 내가 아이를 낳은 때와 겹쳐서 엄마가 나를 챙길 힘이 없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수술해서 누워있는 내게 안 오겠다고, 시어머니 부르라고 하는 엄마의 문자에 서운했다. 둥이 임신 중에도 삼촌들의 배신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 엄마였기에 아들은 소용없다는 둥, 무슨 덕 보려고 아들을 임신했냐는 둥의 말이 내게 가시 같은 상처였다. 엄마는 그냥 하는 소리였겠지만, 나는 그냥 듣지 못했다. 새겨져 있다.

내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 말들도 엄마에게 새겨져 있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주고받았다.


7. 칭찬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아직도 내 속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더이상 부모님의 칭찬과 인정이 있어야만 생존하는 어린 생명이 아니다.


8. 나는 왜 화가 날까. 그것도 선택적으로.

왜 엄마의 말이 나를 공격하는 말로 들릴까.

엄마가 내 말을 안 듣는 것. 듣기 싫다고 표현했음에도 계속하는 것이 내게는

상처가 낫기도 전에 계속 날카롭게 할퀴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터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이혼할 때 어떻게 그렇게 단호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엄마와 나 사이가 부부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혼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느낌.


9. 나는 첫째니까,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막상 독립을 한 후에 족쇄로 느껴졌다.


나는 살림밑천이 아니다.

나는 화수분이 아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깨달았다.


나에겐 일종의 억울함이 있는데

이것의 실체는 '살림밑천'이라는 걸.


이 나라는 결혼 안 한 여자가 돈 쓰는 것에 파르르 떠는 경향도 있고(아니 내가 벌어 내가 쓴다는데!). 그런 거 할 돈 있으면 집안 세간살이를 바꾸자든가, 네 오빠나 남동생 뭐하는 데 좀 보태주자든가, 그 돈으로 가족여행 가자는 식이다. 나는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소름 끼치게 싫어한다. 어디 맏딸만 그런가? 한국사회는 여성의 돈은 곧 가족 모두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제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이만큼 모았어요"라고 하면 칭찬하는 대신, "마침 잘됐네, 돈 들어갈 데가 많다"가 되는 것이다.

_<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신예희) p166


딸이 번 돈은 공공재처럼 쓰려는 가족문화가 깔려있는 분위기에 대한 설명이 훅 하고 들어왔다.

비단 돈뿐만이 아니었다.

시간과 에너지에 대해서도 가족의 일이라면 장녀가 해야 할 몫이 상당하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더더욱 그랬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의 니즈보다는 우리 원가족을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자식은 많고 집은 가난했기에.

첫째는 그 집안을 일으킬 레버리지였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가족이 중산층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첫째 딸은 그 집안의 디딤돌이었다.


빨리 성인이 되어 돈을 벌어오고,

빨리 돈을 모아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알아서 좋은 곳에 시집가서 입을 덜어줄 것.

시집가서도 친정을 챙길 것.


나에겐 응석받이가 위아래로 다 있는 거였다.


책에서 이어지는 구절은 이러했다.

돈 쓰는 일에 마음이 불편하고 심란할 땐 가만히 우선순위를 따져본다.
우선순위의 가장 맨 위에 언제나 내가 있다. 무엇도 내 위에 있지 않다. 누가 뭐래도 그건 지킨다. 음식을 만들어 제일 맛있는 부위를 나에게 준다. 내 그릇엔 갓 지은 새 밥을 담는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좋은 걸 몰아주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 영 손이 가지 않을 땐 아깝다는 생각을 접고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한다. 난 이거면 된다며 복숭아 갈비뼈를 앞니로 닥닥 긁어먹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내 몸뚱이와 내 멘탈의 쾌적함이 가장 중요하다. 그걸 지키기 위해 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_ p167


나는 싸울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마음으로 삭히고 머리로 부정하며 그렇게 엄마와의 갈등의 씨앗을 차곡차곡 키워갔던 거였다.

이렇게 갈등이 터져나가고

그래서 서로의 얽힌 관계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보니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것도 같았다.

어쩌면 이번 기회로 거리가 생기면 관계에 더 조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는 방어를 할 필요가 없고 이제는 독립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일방적인 응원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자존감은 내가 챙겨야 한다.


건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 아빠가 가르쳐준 '애지욕기생'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랑은 상대방이 살도록 해주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약간 다르다. 진짜 뜻은 이러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자기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게끔 만든다.'

진짜 뜻이 더 멋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편하게 숨 쉴 수 있게 살아있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 덕에 내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갈수 있음에 고마워하고 싶다.


나중에 아이들이 결혼하고 나서 본가에 와서만큼은 마음 편하게 지내고,

배우자와의 관계에 일방적으로 희생하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너의 자존감은 니가 챙기라고 해야지.


무엇보다 너는 우리 의 어떤 '살림'보다도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어야지.


너는 어떤 수단도 아니고 너를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해주어야지.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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