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키우며 쪼들리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것
매달 일정한 날에 가계부를 쓰다 보면 일정한 현금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아이가 하나에서 셋이 되었다고 해서 소비도 3배가 되지 않게 하려면 꾸준히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기록을 해야 파악이 되니까. 다행히도 나와 남편은 가정 경제에 관한 생각이 일치하는 편이라 서로의 수입을 합치고 공동으로 지출을 관리한다. 지출을 제한하는 것이 가계부를 쓰는 목적인데 꾸준히 가계부를 쓰다 보니 몇 가지 특이점을 알게 되었다.
수입이 적었을 때에도 우리는 총수입의 50~60퍼센트를 소비했다면 수입이 늘었을 때에도 소비에 쓰는 비율은 일정했다. 그러니까 200 벌면 100 쓰고 600 벌면 300 쓰는 식이다. 이는 아무래도 수입이 늘었을 때 생기는 마음의 여유로 인해 평소보다 비싼 물건을 사는 것에 좀 더 관대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돈을 더 모으기 위해서는 지출의 수준을 함부로 높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지출은 자연스레 수입에 따라 증가한다. 그런데 수입이 줄어든다고 지출이 같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쓰던 가락'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 함부로 지출의 수준을 늘리지 말지어다.
외벌이로 딸 셋을 키우면서 노후대비까지 해둔 우리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번 자랑하지 말고 모은 자랑 해라
내가 수입이 늘었다고 자랑하면 꼭 타박하듯 하시는 말씀이었는데 뭔가 심통이 났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왜냐면 수입이 늘었다고 저축액이 느는 것은 아니었으니.
사실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남는 게 있어야 되니까. 아무리 많이 벌어도 모으는 것이 없다면 노동소득이 끊기는 순간 빚을 지게 된다. 우리의 주된 수입원이 노동소득이라면 꾸준히 모아서 자본소득으로 바꾸는 노력은 필수다. 오랫동안 나무를 베려면 언제까지 도끼질만 할 수는 없다. 도끼의 날을 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소득이 이후에 자본소득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번 돈'이 아니라 '모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관리비, 정수기 렌탈비, 인공지능 음악 듣기 결제, 쓰지 않는 옵션비 등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통장에서 새어나가는 돈이 꽤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듯 이렇게 자잘하게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모여 수십 수백만 원씩 훅 나가는 거다. 이렇게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돈들부터 의식적으로 막아야 한다.
쿠팡도 최근에 연회비를 올렸고 각종 배달 어플의 배달비도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송해주는 것들에 익숙해지면 곧 그들은 우리 통장에서 매달 야금야금 돈을 빼간다.
배달음식을 시키기보다는 직접 사 오고 인터넷 배송보다는 마트나 시장에서 사는 습관. 이것은 작은 소비 습관이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면 잔돈이 모여 묵직한 돈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소비 자체의 기준을 타이트하게 잡는 것이 좋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면 꼭 필요할 것 같아 사야 할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장바구니에 담아 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보면 이미 불필요해진 것을 알게 될 때가 많다. 대형 마트들은 오후 7시가 넘어가면 신선식품은 20퍼센트 할인을 하고 과일은 묶음으로 할인해서 판다. 이 시간대에 주로 신선식품을 사면 시장에서 사는 것과 비슷한 가격에 신선식품을 살 수 있다. 2주마다 있는 일요일 휴업 전날 저녁은 할인가가 높다. 이 시간대를 잘 활용하여 물건을 구매하면 좋은 품질의 물건도 싸게 살 수 있다. 이것은 궁상이 아니다. 절약하는 소비 습관이자 미니멀 라이프라는 가치관의 적용이다. 의식하지 못하게 새어나가는 물줄기를 막으면 의외로 고이는 돈의 양이 상당하다.
인터넷으로 무엇을 검색을 하든 결국의 종착지는 '소비'이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이 인터넷이기 때문에 어떤 누가 검색을 해도 필요한 정보를 위한 소비에 다다르게 된다. 과거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면 현재의 모든 검색은 '소비'로 통한다. 어린이날이면 장난감을 사주도록, 주말이면 놀이공원에 가도록, 쇼핑몰과 키즈카페 모두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사라고 권유한다.
소비의 수준을 함부로 높이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손쉬운 즐거움인 소비를 통한 즐거움에 한 발짝 떨어져야 한다. 물론 아이들은 장난감과 놀이공원과 쇼핑몰과 키즈카페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본질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부모와 함께 안전한 환경에서 친구들과 몰입해서 놀이에 참여하는 경험이다. 그것이 키즈카페이든 동네 놀이터 모래사장이든 본질적으로 즐거움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비를 통한 손쉬운 놀잇감과 놀이장소에만 찾다가 가계부를 통해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파악하고 나서는 소비를 통한 즐거움을 경계하게 되었다. 어른인 나만 봐도 그렇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인터넷으로 별 필요 없는 것들을 야금야금 사게 된다. 그러나 심신이 건강하면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건강한 심신을 주고 싶다면 소비를 통한 즐거움보다는 본질적인 즐거움과 가족 간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느낄 기회를 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보다는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한다. 또한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지지 않게 잔잔한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놀잇감이나 영상으로만 즐거움을 찾는 어린이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들이 주변의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놀 거리를 찾기를 바랐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줄어드는 소비 항목들이 꽤 많다. 일단 우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거의 사주지 않고 옷도 물려 입는 옷이 많다. 물론 새로 사주거나 하는 것들도 있지만 한번 쓰고 버릴 것 같은 것은 최대한 사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가계부를 쓰면서 깨닫게 된 3가지 특이점 덕분에 소비를 조절하고 현금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정에서 엄마의 가계부를 보게 되었다. 엄마의 가계부는 여전했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말 그대로 '안 쓰고 안 입고 안 놀고' 절약하는 삶을 사셨다. 맘 카페도 없던 시절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 아빠만 믿고 올라와서 우리 셋을 키운 엄마는 아빠가 언제든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렇기에 극도로 절약하는 삶을 사셨는데 이제는 우리 세 자매도 성인이 되어 자기 앞가림은 하니 부모님 생활에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직도 절약이 몸에 배이셨다. 아끼며 아이를 키우느라 누리지 못한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나는 늘 안타까웠고 이제는 팍팍 쓰면서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새로운 곳에 가면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도 어쩌면 엄마 아빠는 이런 것을 누리지 못하는데 나만 누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이 자기 인생을 신나게 사는 것에 부모에게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신명 나게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겐 효도니까. 그래서 그 이후로는 소비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게 되었다.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소비를 집중하고 싶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부모인 우리를 떠올렸을 때 희생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가계부가 엄마의 삶을 보여준다면 나의 가계부는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쓴다는 것은 어디에 욕망이 집중되어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많이 버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자유로움을 만드는 삶을 이루고 싶다. 가족이 함께 누리는 모든 시간을 오롯이 누리고 싶다. 번 자랑하지 말고 모은 자랑 하라는 말을 기억하면서도 내가 돈을 벌고 아끼는 것은 모두 나의 가족이 행복하기 위한 길임을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