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년 차. 엄마에게 드디어 이만큼 모았다고 얘기를 하니 엄마는 잠자코 듣다가 이야기했다.
모았으면 집부터 사라
이제 그 정도 모았으면 그 돈으로 집부터 사라고 했다.
집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한데 싶어 물어보니 '갭투자'를 하면 된다고.
갭투자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니까 10만 원짜리 물건을 8만 원에 빌려 살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2만 원에 소유할 수 있다고? 이게 말이 돼?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를 못 하자 엄마는 답답해했다.
너는 똑똑한 애가 이걸 이해를 못 하니? 돈 아무리 열심히 모아봐라 집을 현금 모아서 살 수 있나...
엄마는 내게 한번 말했을 뿐 더 이상 얘기하진 않았고 나는 다시금 내가 잘하는 것으로 돌아갔다. 돈을 벌고 열심히 저축하는 것으로. 결국 내가 모았던 소박한 돈은 전세금을 올려 다음 집을 구하는 데에 쓰였고 우리는 다시 일차함수처럼 차곡차곡 수입의 절반을 저축했다. 그렇게 2년간 돈을 모으는 동안 엄마가 갭 투자로 사라고 했던 아파트는 삼차 함수로 가격이 올라 우리 손에서 저 멀리 도망가버렸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집값은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경험을 하게 되니 엄마의 말이 알쏭달쏭 이해가 될 듯 말 듯 했다. 두 번째 전셋집에서 집주인의 횡포로 설움을 느끼고서야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에는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는 첫째를 임신하고 나서였다. 이제는 둥지를 틀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가장 돈이 없던 시절에 생긴 첫째를 뱃속에 품고 나는 집을 보러 다녔다. 다시는 고장 난 보일러와 내려앉은 창문을 두고 '싸게 전세를 주었으니 그 정도는 알아서 고치고 살라'는 집주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맘때 집을 사러 다니다 보면 모든 부동산에서 매수를 말렸다. 지금은 시기가 안 좋으니 4월 즈음 사라고. (2017년 12월이었다. 그때 분위기는 그랬다.)
"사장님 저 그때 애 낳아서 사러 못 와요. 지금 사야 돼요."
엄동설한에 배는 남산만 하게 부푼 채로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다. 사려고 하면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였다. 왜 그렇게 다들 '아들이 못 팔게 한다'라고 말을 바꾸시는지. 생애 첫 집을 사기란 쉽지 않았다. 그 추운 겨울에 집을 보러 다니느라 발이 퉁퉁 부었다. 첫째의 예정일이 2월이었는데 나는 1월에 집을 덜컥 샀고 그다음 주에 양수가 터졌다. 집을 보러 다니느라 너무 무리했던 거였다. 아무튼 가장 돈이 없을 때 샀던 집. 그 집 덕에 쌍둥이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몰랐다. 집을 사고 일어날 일에 대해 그 집을 사고 세를 주고 우리는 친정 근처의 다른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20평대 집에 전세로 살면서 30평대 집은 월세를 받았다. 좁은 집에 살더라도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이 있다는 것이 주는 만족감이 컸다. 장기 휴직 중이고 친세권이라 더 그러했다. 그렇게 소득의 흐름이 생기고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며 숨통이 트이자 쌍둥이가 생겼다.
지금은 집을 샀던 것도 결국에는 엄마의 혜안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타이밍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엄마는 소비를 극도로 절약하면서도 집은 꼭 있어야 하고 나중에 임대를 놓을 집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해 왔었다. 아빠가 언제 회사를 잘릴지 모르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알이 계속 나오는 거위가 있어야 한다고. 그걸 어릴 적에 들어둔 덕에 나도 부동산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고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에는 부동산과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소비의 수준을 늘리지 않고 돈이 될만한 다른 파이프라인을 꾸준히 만들라는 것은 식상한 조언일 수 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일생을 통해 꾸준히 실현하고 있는 부모님을 보고 그것의 실질적인 모습을 배웠다.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아빠는 외벌이면서 애 셋을 어떻게 키웠어?라고 물으면 아빠는 늘 '희망으로 키웠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앞으로 어떻게 애들을 셋이나 키울지 막막하다고 하자 아빠가 하신 말씀이 있다.
잘 키워나 봐라. 뿌듯하다.
말이 길지 않았는데도 그 뿌듯함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나에게도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대에 아이를 셋이나 용감하게 낳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 물론 돈이 많이 들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이미 나보다 더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이 셋을 키워내고 자신의 삶까지 바닥에서 일으켜 세운 본보기인 부모님의 삶이 있다. 그 땅에서 자란 나는 다시 가정을 일궈 내가 커온 것보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자식에게도 좋은지 알 수는 없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쩌면 일생을 통해 부모는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워갈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삶을 꾸려갈지는 자식이 선택하는 것일 수도.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엄마 아빠가 자주 하던 말들이 배경음악처럼 들리곤 한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들이 대부분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가 묻어나는 말들이라 다행이다. 아이들에게도 내 말이 언젠가 자동 재생되는 때가 온다면 그 말이 아이에게 힘이 되거나 또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팁이면 좋겠다.
이것도 가족문화일까? 아이들이 나중에 나의 어떤 말을 기억하고 혼자 있을 때 재생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