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터 왜 안 써요?

부부 둘이서 터울 짧은 아이셋 키우기란.

by 대강철저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친구의 엄마가 대뜸 물었다.


시터 안 써요?


잠시 무슨 질문인가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네, 제가 해요.


그러자 상대가 되물었다.


그럼 애셋 육아를 혼자 어떻게 해요?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제가 해요


라고 말하고 멋쩍게 웃었다.


무례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느낌이었다.


그럴 수 있다. 나도 직접 애를 낳기 전까지는 모르는 세계였으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대체 어떻게 했지?



돌봄을 맡길 사람을 구하는 대신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긴 했다. 돌 지나고나서부터였으니.


그릇이 커서 셋이나 낳은 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내 그릇은

마치 억지로 진흙을 눌러 바닥을 평평하게 늘리고 다시 구워지는 듯 괴로운 과정을 통해서야 조금씩 넓혀졌다.


그리고 지금도 그릇의 크기를 강제로 늘리고 있긴 하다.


아이를 낳고 내가 잃게 된 것들에 대해 후회하기보다는

아이를 낳고 얻게 된 새로운 생각들, 깨달음, 경험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편이다.


어디에 집중하느냐는 나의 선택이기에 가능한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이다.

애가 많아서 힘든 점이야 수십 수백 개지만, 좋은 점도 꽤 된다.


무엇보다 3인 3색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전혀 다른 세 명의 생명체를 바라보며 관찰 일기를 쓰는 과학자와 같은 심경이 되기도 한다.


교육학자 피아제도 자신의 세 자녀를 관찰하다가 발달이론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나름 공감이 되는 게, 세 아이의 공통점을 관찰해 보면 뭔가 규칙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반응을 마주할 때는 역시나 인간은 자기만의 독창성이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시터를 쓰지 않고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동시에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편과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둘 다 최소 1.5인분의 역할을 해야 집이 어떻게든 굴러기 때문이다.

애가 하나일 때는 서로 일을 미룰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는 사람이 즉시 한다.


1. 안일은 '본'(목격한) 사람이 한다.

2. 자기가 할 거 아니면 상대방에게 입을 대지 않는다. (잔소리하지 않는다.)

3. 약 번아웃에 시달리면 상대방에게 구조요청을 보내고, 구조요청을 보낸 사람은 즉시 안방에 가서 눕고 휴식을 취한다.


대충 이 정도의 규칙을 세우고,

육아와 집안일이라는 매일 쏟아지는 장댓비를 헤치며,

전쟁터의 전우처럼 서로를 안쓰러이 여기며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나날을 버텨냈다.

고양이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가 많았지만 우리 부부는 각자 2인분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잠이 부족하고 몸이 힘든 시기를 버텨냈다.


이제 어느덧 9세 7세 7세가 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둘이 온전히 아이들을 이만큼이나 키워낸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꼬물꼬물한 아기였을 때 느꼈던 막막함이 어느 정도는 사라지고

셋이 옹기종이 놀이를 하거나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숙이 뜨끈 뭔가가 온몸을 뎁혀주는 듯 하다.


처음에 애 하나를 키울 때 서툴었던 나는 육아의 대원칙이랄께 없었다면, 터울 짧은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규칙은 필수다.

집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일은 대충해도, 중요한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1. 엄마, 아빠가 결정한다. 오늘 어디를 갈지, 뭘 먹을지를 애들에게 물어볼 수 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부모가 한다.

2. 밖에 나갔다 오면 자기가 입은 옷은 반드시 걸어두고 손씻고 논다.

3. 자기가 어지른 것은 자기가 치운다.

4. 밥 먹을 때는 다같이 먹고, 먹은 것은 싱크대에 갖다 둔다.

5. 집에서는 책을 보거나 누나나 동생이랑 같이 놀지, 티비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단, 같이 영화 보는 거 제외.)

6. 매일 꾸준히 집공부를 하고, 공부 시간에는 자기 문제집을 각자 푼다.


이런 규칙들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반복과 실천과 훈육을 통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것들이다.


가끔 우리 집에 오는 친구들이 어떻게 애들이 티브이 켜달라고도 안 하고,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놀거나 책을 보는지 물어보곤 했다.

집에 책 보다 재밌는 게 없어서 그렇지 뭐. 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우리 집만의 가족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없을 때부터도 대화를 많이 해왔고, 지금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엄마 아빠가 의견을 나누고 때론 다투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아이들은 보고 듣고 배우기도 한다.


가만 보고 있으면 셋이서 같이 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협상을 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언어능력이나 사회성이 키워지고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누나가 갖고 있으면 누나가 좋아할 만한 다른 장난감을 가져와 바꿔 놀자고 제안해보기도 하고,

동생들이 자기 방에 와서 어지르는 게 싫은 누나는 동생들에게 스티커를 주고 거실에서 놀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셋이 협심해서 온 집에 있는 의자를 거실에 모아 그 위에 이불을 둘러 텐트라고 부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램프를 켜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은 대화를 통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고, 놀잇감을 나눠 갖고, 끊임없이 협상한다.


만약에 내가 시터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겼었다면 온전히 이런 가족 문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아마 시터에게 애 하나를 맡기거나 쌍둥이를 맡겼다면 내가 셋을 동시에 통솔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것 같다.

남편이 시터비를 내주는 사람으로 육아에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버렸다면, 지금처럼 우리 부부 사이가 끈끈해지지 못했을 것 같다.


우리는 힘든 순간들을 함께 오롯이 겪으며 지나왔기에 나름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때론 쉬워 보이는 길이 어려운 길이고, 어려워 보이는 길이 때론 가장 쉬운 길일 수도 있다.


터울이 짧은 아이 셋을 낳고 부부가 온전히 합심해서 아이를 키우고 우리만의 가족문화를 만든 것.

이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의 사랑도 좀 더 풍성해졌다.

남녀로서의 사랑보다 더 깊어진 전우로서의 느낌도 있고, 서로를 키워주 동반자적인 삶의 안정감도 있다.

심장이 떨리고 설레는 감정만이 사랑이 아니라, 좋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싶고, 미래를 꿈꾸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만의 방식대로 앞으로도

마치 독수리 5형제처럼 다섯 명의 가족 구성원이 합심해서 함께 문제를 헤쳐나가고 싶다.

그 과정에서 다섯배로 더 행복해질 일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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