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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Nov 28. 2022

암은 '앎'이다

암경험자가 바라본 기다림 

“어제 검진하신 병원이에요. 병원에 들러서 결과 들으세요.”

“네? 많이 안좋은가요?” 

“갑상선에 악성 결절, 갑상선 유두암이 의심돼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눈앞이 멍해졌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대로 버스를 잡아탔다.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창밖은 그저 지나치는 차와 건물로 가득했다. 세상은 고요했지만, 내 눈물은 쉴 줄을 몰랐다. 눈물이 눈에 고여 한가득 차고 나면 뚝뚝, 줄줄 흘러내리고 닦고를 반복했다. 


‘뱃속 아이는 어떻게 하지? 우리 아이들, 남편, 아부다비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떡하나. 죽는 건가? 그런데 왜 하필 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다.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되어 사그라들게 되는 건지 두려움이 휘감았다. 셋째 임신 7개월 차에 마흔도 안된 젊디젊은 여성, 남편 따라 중동 아부다비에 살다 1년 만에 한국에 잠깐 들리러 왔다가 청천벽력을 들었다. 




5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뱃속 7개월 아기 포함 우리 다섯 식구는 부모님을 뵈러 한국에 들렀다. 그리웠던 부모님과 친구들도 만나고 한식도 마음껏 먹고 참 즐거웠다. 출산 전 검사를 하러 들린 병원에서 갑상선, 유방 초음파 검사를 했다. 차가운 젤이 목에 닿는데 느낌이 왠지 서늘했다. 검사 중에 결절이 발견됐다. 모양이 좋지 않아 바늘을 찔러 세포 검사를 했다. 그때부터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다. 혹시나 암? 그럼 어떡하나! 


그리고 다음 날,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렀다. 기막힌 타이밍, 식당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전화를 끊자마자 몇 미터 앞에 버스가 한 대 멈추길래 버스를 탔다. 창밖을 보니 익숙했던 거리를 지나 낯선 곳에 도착했을 즈음에 정신이 돌아왔다. 점심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아이들이 생각났다. 다행스럽게도 밥은 맛있게 먹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악성 결절, 암이다. 임신 중이라 수술은 할 수 없고 출산 후에 검사받고 수술하면 될 거라 하셨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 메시지를 품으라셨다. 당장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고 기다리는 게 답이었다. 그렇게 ‘기다림’을 배워나갔다. 내 몸에서 자라난 ‘작은 혹’ 하나는 내게 ‘기다림’을 가르쳤다. 기다리는 중에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줬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쁨을 더 극적으로 맛보게 했다.


어느 날은 웃고, 또 어떤 날은 불안에 떨었다. 웃다가 울다가 몸 안에 ‘작은 혹’ 하나는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얼마나 또 울었을까? 퉁퉁 부은 눈으로 세수하고 거울을 봤다. 볼록해진 배도 보였다. 그래서 더 이겨낼 힘을 얻었다. 내겐 지금 가족이 있으니까. 나를 웃게 하고 엄마 밥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힘을 내야 했다. 힘을 내고 싶었다. 암 진단을 받고, 셋째를 낳은 그해,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왔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나니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란 셋째는 쑥쑥 자랐다. 그리고 우리 집 행복 비타민으로 정말 많은 웃음을 줬다. ‘작은 혹’을 잊어버리고 살 만큼 내게 ‘바쁨’도 선물해줬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암 경험자(암 환우라는 말 대신)로 치료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대신 암산정 특례치료 혜택도 중단된다. 웃어야 할 것인가, 울어야 할 것인가. 내 선택은 둘 다다. 웃음과 울음을 한 번에 쏟아내고 싶다. 그간의 ‘작은 혹’ 덕분에 알게 된 ‘기다림’을 배웠던 시간이 아주 고마워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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