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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Nov 28. 2022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

나는 언제 가장 반짝일까..?


내가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내가 가진 반짝임을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반짝이고 싶은 이유가 뭘까?

반짝임을 누군가가 알아차려주기를 바라고 있나?

나는 언제나 반짝이고 있는데

누군가는 반짝임을 알아차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왜 드는 것일까?

 


왜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알아차려야 하는 걸까?


그냥 반짝이고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나는 언제나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의 반짝임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왜 그런 마음을 키워가는 것일까? 가족이 지켜봐 주고 있음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의 반짝임이 어딘가에서 빛을 더해 발하고 누군가에게 빛을 밝혀주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그것은 왜 일까? 인정 욕구로 인해서 일까?


나는 그 생각의 근원을 찾고 있다. 내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 주고 인정해줄 때 그 만족이 오래갈 것인가, 아니면 나의 내적 만족이 커짐에 따라 내 만족도 커져가는 것일까?


그리고 오래가는 그 빛은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내 생각을 정리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커져가서 그 빛을 내 안에 가둘 수 없을 때 더 커져갈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나를 온전히 밝히고 그 빛의 넘침은 나 아닌 또 다른 누군가를 비추기 위한 빛으로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채우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채울 수 있을까?

과연 나를 채우고 나서만 다른 사람을 비출 수 있을까? 그 채움이란 내가 정한 주관적인 기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객관적인 인정이라 함은 어디에서 인정을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소히, 우리가 보는 전문가라는 집단에서 정해주는 그것이 진정한 인정인 것인가?


내적으로 자라지 않고 그 충만함이 이뤄지지 않은 순간에도 나는 빛을 발할 수 있을까?


빛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하지만, 오래 밝히고 그 빛을 누군가에게 비추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온전한 나의 밝힘이 오래 지속될 때 그 빛은 더욱 커지고 빛이 부족한 다른 이에게 전해 지리라는 막연하면서도 확신한 나의 믿음이 있다. 나는 그 빛이 밝혀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작은 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밝히고 있는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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