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년을 살아 갈 마음이니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기는 초라해서,
종이위에나마 기록해 두려고 붓을 들었다.
옳지 못한 마음을 자신의 생生 가득 젖혀야 하는 종이는 탐탁지 않았을 텐데, 눈 한번 흘기지도 않고 어린 내 마음을 가만히 담아내 주었다.
끝내, 작품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한 줌의 마음이
종이 위에 깊게 박혔다.
그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니,
잘 만들어진 한지는 그 수명이 오천년을 가고 먹빛은 바래지 않고 도리어 아름답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문득 겁이 났다.
이 부끄러운 마음도 운이 좋아서 오천년의 세월을 견디게 되면 어쩌나,
빛나는 먹색이 창피해 하면 어쩌나,
쓰는 순간에도 마음 한 모퉁이에서 이렇게 찔리는데,
작은 가시가 커져 칼이 되면 어쩌나.
모자란 나의 마음도 담아준 종이에게 미안했지만
그를 고이 접어서 압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옮겨두었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어린 나의 마음이,
다른 마음의 눈물을 닦아주며 조금씩 커나가길 바라며.
새 글은 매주 화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올라옵니다.
서예인 / 인중 이정화
http://www.instagram.com/injoongmao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