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중 이정화 Nov 19. 2019

한번 보고 말 사이, 그러니까.

순간의 영원함





일단, 이 한 장은 연습 삼아서.




작품을 하기 전, 대략적인 구도를 잡기 위해서

종이를 펴보니 언제 묻은 것인지 모를

먹물 자국이 선명히 있었다.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첫 장은 연습 삼아 써보려는 것이니까, 큰 상관없지.' 하며 붓을 움직였다.    


한참 동안 수십 장의 종이가 희생을 했지만,

쓰면서도 자꾸 첫 번째 쓴 글씨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가져다 놓아도 출처 없는 저 먹물과

전체적인 내용이 어울리지 않기에 아른거려도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밟힐 마음이 될지도 모르고

‘어차피 지나갈 한 장의 종이 일 뿐이니까.’라고 여긴

내 마음이 야속했다.    


‘그냥 한번 써본’ 첫 장을 꺼내 가만히 바라보니

‘그냥 한번 보고 말 사이.’ 라며 단정 지었던 만남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번 보고 말 사이니까,

그러니까 더 마음을 다했어야 하진 않을까.

우리가 함께 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쳤던 내 모습이 그가 평생 기억할 나의 모습이 될 것임을 왜 알지 못했을까.    


먹물이 묻어있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나의 마음만을 사정없이 밀어붙이며 써 내려갔던 저 종이처럼, 쉽게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에게 했던 나의 가벼운 행동들이, 지워지지 않을 멍울이 되어서 마음 한 부분을 쿡- 찌른다.







새 글은 매주 화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올라옵니다.

서예인 / 인중 이정화

injoongmaobi@naver.com

http://www.instagram.com/injoongmaobi

작가의 이전글 흔, 그리고 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