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영원함
일단, 이 한 장은 연습 삼아서.
작품을 하기 전, 대략적인 구도를 잡기 위해서
종이를 펴보니 언제 묻은 것인지 모를
먹물 자국이 선명히 있었다.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첫 장은 연습 삼아 써보려는 것이니까, 큰 상관없지.' 하며 붓을 움직였다.
한참 동안 수십 장의 종이가 희생을 했지만,
쓰면서도 자꾸 첫 번째 쓴 글씨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가져다 놓아도 출처 없는 저 먹물과
전체적인 내용이 어울리지 않기에 아른거려도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밟힐 마음이 될지도 모르고
‘어차피 지나갈 한 장의 종이 일 뿐이니까.’라고 여긴
내 마음이 야속했다.
‘그냥 한번 써본’ 첫 장을 꺼내 가만히 바라보니
‘그냥 한번 보고 말 사이.’ 라며 단정 지었던 만남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번 보고 말 사이니까,
그러니까 더 마음을 다했어야 하진 않을까.
우리가 함께 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쳤던 내 모습이 그가 평생 기억할 나의 모습이 될 것임을 왜 알지 못했을까.
먹물이 묻어있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나의 마음만을 사정없이 밀어붙이며 써 내려갔던 저 종이처럼, 쉽게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에게 했던 나의 가벼운 행동들이, 지워지지 않을 멍울이 되어서 마음 한 부분을 쿡-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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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인 / 인중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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