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중 이정화 Jan 10. 2020

이미 알고 있잖아.

소년 명필은 없다.




나는 여기서 자는  좋겠다.
오랜만에 왔으니까
…….
사실 배는  알고 있거든.”     




선상에서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밤새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추운 내부가 걱정이었다.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어 함께 한 사람들과 숙소를 잡아 옮기려고 하는데 선장님이 본인은 배에서 주무신다고 하셨다.      


‘배는 다 알고 있다.’


그 말이 나의 가슴을 콕 찔러 듣는 순간 

눈물이 툭 떨어졌다.     


기업에서 강연을 하고, 인터뷰를 하며 

서예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는 명목 하에

부끄럽지만 붓은 잠시 내려놓고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입으로 완성시켰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붓을 잡으면 

생각만큼 써지지 않는 것을 도리어 붓에게 탓을 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은 해도 빨간 스티커 하나를 찾지 않는 모습에 그들의 안목을 탓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붓과 종이를 쓰다듬은 만큼,

먹과 벼루가 소리를 내는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 정직하게 표현되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탓을 했을까.


잘 되면 남의 덕, 안 되면 나의 탓이라는 

큰아버지의 말씀을 어째서 거꾸로 실행했을까.


노력 없이 결과를 얻으려 했었고,

배신하지 않는 땀 대신 

세치 혀를 움직여 침을 더 흘리고 다녔다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붓에게 먹빛 목욕을 시켜주었다.

한동안 미안했다고, 나와 오래도록 함께 해 달라고 

나의 마음에서 그의 마음으로 속삭였다.






서예인 인중 이정화

 글은 화요일과 금요일에 올라옵니다.

instagram.com/injoongmaobi

injoongmaobi@naver.com



작가의 이전글 다 너를 위한 나의 생각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