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어도 괜찮아.
철컥,
새벽 두시. 야작夜作을 하다가 바람을 쐬러 베란다에 나갔다.
이 시간에 하늘을 바라보면 달은 정확히 내 머리 위에 떠있다.
어느 날은 이러다가 하늘이 달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가까워지는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크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거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달은 언제나 기울고 일그러진다.
달은 자꾸만 줄어드는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당당하고 또렷하게 보여주며,
가끔은 선물처럼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바라보는 그 누구라도 눈부시지 않도록 포근하게 눈까지 마주쳐 주면서.
해와는 달리 달은 경계가 모호하다.
한살 더 먹은 나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에,
달의 여유로 인해 우리는 다시 새로운 해를 맞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좀 늦어도 괜찮으니 서두르지 말라고 속삭여 주는 달의 음성이 들린다.
나타날 때나 사라질 때나 대단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잡진 않지만,
그만큼 더 깊게 다가오는 달.
스물아홉이기도 하고, 서른이기도 할 어느 밤도 조용히 다가오겠지.
철컥,
베란다 문을 닫고 들어오니 작은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저 달처럼 유난떨지 않고 싶은데
나약한 인간이라 빛나 보이고 싶고 화려하고 싶기도 한 내 모습.
억지로 내는 빛은 마치 폭죽처럼 오래 못가 빛 바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벼루에 물을 붓고, 천천히 먹을 갈며 달의 토닥임에 숨을 깊게 내뱉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