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 할 나의 '키다리아저씨'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첫 번째 회사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때는 2013년 2월, 졸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어떻게든 빨리 취업을 해는 것이 목표인 시절이었다. 당시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한 학번 선배에게서 제안 하나를 받게 된다. 홍보대행사에 다니고 있는 지인이 주변에 추천해줄 만한 사람 없냐며 물었는데 내가 딱 떠올랐는거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나는 당연히 홍보의 ‘ㅎ’도 몰랐다.)
취업에 급급했던 나는 면접이라는 것이라도 경험해보자는 마음으로 서류를 넣었다. 그렇게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을 보게 됐다. 총 7명 중 세 명이 붙었고, 세 명 중 한 명이 나였다. 제대로 된 책상도 없었던 그 때 그 시절. 셋이서 동그란 테이블에 쪼르르 앉아 노트북을 하나씩 꾀고 일했다. 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책상 없는 내 모습을 보고 경악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광경이지만 그냥 내 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때였다.
그 첫 번째 회사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만났다. 본인과 관련 없는 것은 관심이 1도 없는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는 그런 선배였다. 일 한지 한 달이 돼도 내 이름을 못 외우고, 이름을 겨우 외우고 나니 자꾸 성을 잘못 부르기 일쑤였다. 당시 선배님이 나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너 이름이 뭐더라?’ 였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입사하고 얼마 있다가 퇴사를 했다. 퇴사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선배님에게 나는 이름 겨우 아는 인턴 나부랭이였다. 선배님이 퇴사를 하고 회사를 홍대로 옮기면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 회사로 스카우트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첫 번째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또 다른 여자 선배이자 나의 첫 사수와 함께 홍대에 있는 두 번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키다리 아저씨와 함께 두 번째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회사 대표님과의 면접도 참 인상적이다. 키다리 아저씨가 나의 면접을 위해 회사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아 주셨고, 면접시간이 되니 대표님이 카페로 들어오셨다. 첫인상은 그냥 예뻤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생글생글하고 인상이 좋았다. 면접인가 싶을 정도로 유쾌한 티타임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입사가 결정됐으며 시원시원하게 연봉협상도 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패기롭게 말했더니 이직할 때나 길게 쉴 수 있는 거라며 열흘 후로 출근일자를 정해주셨다.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할 걸?’ 싱긋 웃으시며 말이다. 면접을 봤던 때는 9월 말이었고, 첫 출근일은 10월 9일이었다. 대표님 덕분에 예상치 못한 열흘이라는 휴가가 생겼고,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게 됐다. 내가 혼자 여행을 가게 된 시초는 바로 대표님 덕분이다. 나를 포함해 5명이라는 단출한 인원이었지만, 재미없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번쩍 떠졌고 출근 준비마저 즐거웠고, 신도림에서 2호선을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한강과 국회의사당 마저 좋았다.
내가 두 번째 회사에 오게 된 썰을 다 풀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를 해보겠다. 사실 ‘키다리 아저씨’하면 다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이 양반은 말이 좋아 키다리 아저씨지, 사실 일반적인 키다리 아저씨의 이미지는 절대 아니다. 되게 시크하고 매사에 덤덤하고, 관심이 없다가도 흥미가 생기면 갑자기 열정 폭발하는, 멋대로 사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나를 자전거와 카메라의 세계로 인도한 장본인이자 녹음실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데려간 사람이기도 하다. 자전거 좋아하고, 카메라 좋아하고, 직장인 밴드도 하던 취미부자였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가족을 제외하고 나에게 영향력을 가장 많이 미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일 것이다. 같이 밴드활동 하던 형님들도 소개해줬었고,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알려주며 나보고 보컬을 해보라고 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어떤 스트리밍 사이트에도 없는, 전혀 모르는 노래를 연습했었다. 지금도 첫 소절이 생각난다.
‘♪ 너는 없고, 나를 떠나 ♬ '
그리고 악기 하나는 꼭 다루라고 해서 기타 연습에 돌입하기도 했었다. 왠지 그의 말에는 나도 모르게 실천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용을 본 사람들은 ‘에이, 좋아했네~ 애정이 있었네~ 짝사랑이었나?’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런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선배님의 아들은 진짜 예쁘게 생겼다. 고로 그는 유부남이라는 얘기. 둘째 딸도 참 예뻤드랬지. 지금 첫 째는 한 10살 정도 됐으려나?
맥주 한 모금에도 얼굴 전체가 빨개지고 마는, 나의 술친구를 하기엔 적합하지 못한 선배였지만 같이 참 잘 놀았다. 회사 근처에서 선배님의 안장 높고 비싼 자전거를 타다가 길바닥에 나자빠져도 보고, 선배님이 맥주 500cc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나 혼자 옆에서 몇 잔의 맥주를 비워내는 날도 있었다. 쫑알쫑알 이런 저런 얘기 쏟아내도 이것저것 신경 쓰며 말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 편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집 근처에 엄마가 가게를 오픈했다. 대표님께서 내 생일기념 전체 회식을 하자고 하시더니 우리 가게를 가자고 하셨고, 나 몰래 가게로 화환을 보냈다. 6명으로 늘어난 회사 식구들은 대표님의 승용차에 낑겨 타고 홍대에서 인천까지 갔다. 가게에 도착하니 입구에 화려한 화환이 자리잡고 있다.
진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사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뭔가 제대로 생일 축하받은 기분. 엄마도 내심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는 우리 딸이 사랑받으며 회사를 다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가게를 오픈 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이기도 했고, 내 생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가면 좋을 것 같았다고, 음식이 참 맛있다며 씽긋 웃는 대표님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업무 보는 도중에 나 몰래 화환 주문하고 문구 넣고 배송 확인하느라 힘들었다며 생색 내는 선배님의 귀여운 투정도 좋았다.
이 회사에 오래 몸 담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키다리 아저씨, 두 번째는 예쁜데 멋있고, 예쁜데 털털하고, 예쁜데 예쁜지 모르고, 예쁜데 일도 잘하고, 예쁜데 성격까지 좋은 대표님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키다리 아저씨가 갑자기 사라졌다. 실종신고를 해야 하는 건가 생각했을 만큼.
‘막내인 나에게는 전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립고 보고 싶다. 지금 내가 이 내용을 쓰는 이유도 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어제 꿈에 그가 나왔고, 꿈에서 그는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무슨 군인도 아니고 코트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너무나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오버로크라고 하던가) 미친 듯이 달려갔지만 결국 그는 군중 속에 사라져버렸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너무나 현실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며 지내실까 궁금하다. 그가 사라졌을 땐 나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 날의 정황은 이러했다. 그 날따라 출근이 늦길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건 자동응답 목소리뿐이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착신이 정지되었습니다.’
엥? 뭐라고? 어제까지 잘 출근했던 사람 핸드폰이 왜? 이 소식을 회사에 알렸고, 대표님이 비상연락망으로 선배님의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신 듯 했다. 어떤 이유인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왠지 물어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지금이었다면 어떻게든 알게 됐을 텐데 그 땐 참 조심스러웠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고, 여전히 이유가 궁금하다. 사라진 그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컨택 포인트는 네이버 메일주소. 회사메일로 보내지지 않는 대용량 메일을 주고받다가 알게 된 그 메일주소 하나가 유일한 연락망이었다. 당시 답장 안 해도 되니까 읽기나 해달라는 내용으로 구구절절 메일을 보냈었다. 평소에 말도 안 듣던 양반이 이럴 땐 말도 참 잘 듣지.
정말 읽기만 하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