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

: 터를 빌려 쓰고 내는 세

by dindyuu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군가 침범하려 할 때

지키려고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텃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침범하지도, 침범할 수도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훨씬 직급이 높은 사람이 이유 없이 사람을 밀어내는 경우도 있더라. 이유가 없다. 이유 = 그냥.. 본인 마음에 들기 전까지는 그냥 싫어한다. 그게 바로 우리팀 부장이었다.



내가 이 회사를 입사했을 때 퇴사를 코 앞에 둔 사원 두 명이 있었다.

딱 보니 새로 들어온 나에게 하던 업무 넘기고고 도망치는(?) 그림이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서 몇 장이 인수인계의 전부였다. 그렇게 둘은 퇴사를 했고, 각각이 남기고 간 브랜드(총 2개)는 내 것이 되었다. 업무적으로는 어려운 것이 없었다. 이전부터 계속 해왔던 SNS 콘텐츠 제작 업무였으니까. 물론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와 브랜드, 클라이언트 성향 등을 파악해야 했지만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련은 다른 곳에서 나를 노리고 있었다. 바로 우리팀 부장이었다. 일단 새로 들어온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경계하고 싫어한다. (나중에 보니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더라.) 부장이 싫어하니까 바로 밑에 팀장도 덩달아 싫어한다. 이유 없는 미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외근이 많은 그들에게 컨펌을 받아야 하는데 연락하면

'미팅중이다, 운전중이다, 기다려라…'


컨펌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업무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사실 회사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같은 공간이지만 비교적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들릴만큼 나에게 틱틱거렸기 때문.


그런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경영기획팀 대장. (※나를 격하게? 과하게? 예뻐했다.)

너무 예뻐한(???) 나머지 나를 구한답시고, 나한테 묻지도 않고 컨펌라인을 본인으로 바꿔버린다. 나를 예뻐하는 건 알겠는데 예뻐하는 방법을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업무 중 내가 혼날 짓(=실수)을 해서 사무실에서 혼난 적이 있다. 조금 과하게 혼나긴 했지만 혼날만 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이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박진주 대리 혼낼 거면 나한테 먼저 얘기하세요!’ 하고 더 언성을 높였다. 물론 갑분싸…

난 중간에서 너무 불편했다. 심지어 컨펌라인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컨펌받는 건 기존대로 해야했기에 그냥 나만 힘들어진 꼴이었다. 컨펌라인만 하나 추가된 셈이지. 게다가 나를 과하게 꽁꽁 감싸고 돈다. 원래부터 그들은 대장을 싫어하는데… 그녀가 감싸고 도는 나까지 더 싫어진 셈이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들이 계속됐고, 입사한지 3개월 즈음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이유 없는 미움을 받는 것도 싫었고, 감싸고 도는 방법이 너무나 잘못된 경영팀 대장 때문에 더 힘들었고, 또 다른 팀 이사는 사람 개무시하는 게 취미었다. 내가 맡았던 브랜드 중 한 곳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였고, 나도 그 브랜드와의 개인적인 인연도 있었고 애정이 굉장했다. 하지만 애정만으로 버티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희한한 진실을 덧붙이자면 나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언제부턴가 나를 엄청 좋아라 했다는 것이다.

왜 싫어했고 왜 미워했는지도 모르지만 왜 좋아졌는지도 잘 모른다. 좋아진 이유를 대충 때려 맞춘다면 이제 자기들이랑 손발 맞고 일하기 편하고 나름대로 나를 인정한 거겠지.


한 번은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왜 그렇게 나를 싫어했는지.

‘에이, 왜 그래~’ 그냥 무마하는 말을 하며 웃어 넘긴다. 나에겐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는데…

역시나 별 이유 없었다. 그냥 텃세였다.


사실 부장님에 대한 첫인상은 너무나 좋았다. 말도 잘하고 자신감도 넘치고, 외모적으로 말하자면 나이에 비해 굉장한 동안이시고 가장 좋았던 건 특유의 유쾌함이었다. 그래서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성격은 롤러코스터라 힘들었지만 일은 참 잘했다. 완전 인정. 그래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울 게 있었으니까. 그녀의 텃세에 울면서 나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나도 울었던 적이 있었나? 있었던 것 같다. 근데 또 신기한 건 출산을 하고 난 뒤 다른 사람인냥 착해졌다.


'텃세'에서 '애정'으로 노선이 바뀌고 나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까지 회사 생활 통틀어서 가장 큰 실수를 범했던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퇴근하고 자고 있는데 뭔가 쌔한 기분에 눈이 번뜩 떠졌다. 노트북을 켜서 그 날 한 업무를 확인해봤다. 그 때가 아마 새벽 3시?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걸까. 일단 내 선에서 수습할 수 있는 것을 수습하고 셀프 경위서를 써내려 갔다. 시간대별로 경위서 형태로 정리하고 4시경 팀장에게 메일로 보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출근해서 차장에게 바로 달려갔다. 팀장과 부장은 집이 가까워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팀장 차를 타고 같이 출퇴근을 했다. 아마 차 안에서 부장에게 보고했겠지. 그런데 부장은 윗 선에 보고 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렇게 셋만의 비밀이 생겼다.


만약 미워하던 시절에 이 일이 터졌다면...

아마 대표, 이사 등에게 전부 보고하고 나는 대회의실에 불려가고 시말서 쓰고

회사 전체에, 동네방네 떠들었을 것이다.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전 생각을 하니 조금은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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