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음모론...

응원할 것인가. 묻어버릴 것인가.

by INK

■ 음모론에 대해

[우연이나 구조적 문제로 설명될 수 있는 사건을, 의도적 또는 조직적인 ‘배후의 계획’으로 해석하는 사고의 틀]이라 정의하고 시작하겠다 ■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예수님 생일인데 왜 빨간 날이냐, 내 생일도 아닌데 말이지, 하는 생각을 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아, 솔직히 공감하지 않는가.


내게 크리스마스는 큰 의미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딱히 크리스마스라고 산타가 찾아온 적도 없었고, 혹 나의 기억에만 없는 일일지언정 양말을 매달아 놓고 기다렸던 일도 없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연말까지 불법 복제 테이프를 팔던 거리의 리어카 상인들 주변에서는 거의 12월 내내 캐럴이 끊이지 않았다. 시즌에 맞춰 앨범을 내놓는 개가수들도 있었고, 그중엔 내가 좋아하던 맹구(이창훈) 아저씨도 있었다. 물론 영구(심형래)의 뒤를 잇는 희대의 바보 캐릭터였지만, 나는 이 아저씨가 참 좋았다.

잠시 종영되었다가 다시 시작한 K사의 G 프로그램, 그 마지막 코너를 장식하던 맹구 아저씨.

“썬쌩님~ 누니 오나 봐아아아 아~ 요”

그 특유의 말투와 어눌한 표정을 한 번쯤은 다들 따라 해보지 않았을까.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그 장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힘든 하루, 혹은 일주일을 버티게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새삼 개그맨. 아, 요즘은 이런 표현이 후져서 희극인이라고 써야지... 하여튼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시간의 개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12월은 그 날씨만큼이나 냉혹한 반성의 달이다. 지난 1년간 있었던 일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반성의 달이며, 그 행위는 다가올 새해를 위해 목욕재계를 하는 것과 같다.



지금부터는 나는 조금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놀려야 할 것이다.


내가 쓴 시나리오 중에 S.N.L이라는 것이 있다. SNL은 가제이며, 실제 제목은 [특별한 시선 – 관계의 숨결을 읽다]이다.

작년에 집필하고 올해까지 퇴고를 거듭한 이 작품은 몇 군데 공모전에서 광탈했다.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가 ‘음모론’에 대해 회의적인 탓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시나리오는 상당히 재미있거든.

S.N.L이 뭐냐고? 세러데이 나잇 라이브냐고?

-아니다.


굳이 이렇게 이름을 지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 NBC의 장수 라이브 코미디 쇼 SNL은 각 나라에서 ‘현지화’되어 제작된 포맷이며, 정치 풍자·사회 이슈·연예 패러디를 핵심으로 삼는다. 원조는 미국이지만, 구조 자체가 수출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일명 ‘서늘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시나리오는, 대중의 심리적 반응을 연구하고 이를 지표로 만들어,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다. 인간의 공포 반응을 데이터화해 사회 통제의 레버리지로 삼는 시스템. 그리고 그 조작된 공포를 통해 사회를 지배하려는 비선조직.

창시자는 정밀한 시스템 통제를 원했으나, 조직은 점점 ‘신탁’이라는 신비화된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결국 창시자조차 조직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되어, 조직을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태고...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다.



방송계의 서열 정리가 시작된 것인지, 모 회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묻기 위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분명한 건 이번 연예계 이슈들 또한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사고 발생 시 충격 상쇄 아이템 개발.



우리는 의문을 품는다.

왜 하필 지금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떠돌았고,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의혹과 불편함들이 유독 이번 12월, 거의 같은 시점에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이건 우연일까, 의도일까.


음모론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배후가 있다.”

“조종하는 손이 있다.”

“우리는 속고 있다.”

이 의심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정렬시킨다. 흩어졌던 혼란은 사라지고, 하나로 다시 태어난 분노는 방향을 얻는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누가 조종하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에 가깝다.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반응하는가.


‘서늘’ 프로젝트를 집필하며 가장 무서웠던 설정은 비선조직도, 음모도 아니었다. 그 시스템은 사람을 겁주지 않는다. 그저 어떤 공포에 사람들이 반응하는지를 묵묵히 기록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어느 순간부터 사건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지금의 연말 풍경도 어쩌면 비슷하다. 사건이 커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주목받기 좋은 사건만 남는다. 설명하기 복잡한 문제는 밀려나고, 분노하기 쉬운 이야기들이 전면에 선다. 그 과정에서 사실은 흐릿해지고, 질문은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음모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공포와 분노를 너무 능숙하게 소비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연말은 늘 반성의 달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요즘의 반성은 자기 자신을 향하기보다 타인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응원할 것인가, 아니면 묻어버릴 것인가. 그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으면 어디에도 서 있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계절.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의 나를 텔레비전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만들었던 맹구 아저씨를 기억한다.

그 웃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된 것처럼, 지금도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판단을 너무 빠르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글은 누군가를 변호하기 위해 쓴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해 쓴 것도 아니다. 다만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을 그대로 적어두고 싶었을 뿐이다.

왜 하필 지금이었는지, 왜 이렇게 한 방향이었는지.

혹시 이 모든 것이 정말 아무 의도 없는 우연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조금은 서늘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어떤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면, 그 역시 우리 모두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점도 덧붙이며...


모든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반복되는 패턴을 매번 처음 보는 사건처럼 소비하는 사회라면, 그건 음모보다 더 정교하고 서늘한 구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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