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를 못 쓰는 작가가 로맨스에 빠지다.
난 고작, 1년 차 작가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디테일한 설명이 추가된다)
먹고사는 이유로 본업을 접지는 못했다.
하지만, 본업과 상관없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할 때면 항상
‘작가 IN.K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소개 끝에는 언제나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문채, 되돌아온다.
“어떤 책을 쓰셨나요? 좀 찾아보게요.”
뭘 찾아봐?
아... 얼마나 유명한 놈인지 확인하고 싶은 건가?
IN.K 란 필명으로 공모전에서 최상위 랭크가 되었다거나, 베스트셀러 한, 두 개쯤 있는 유명세는 아직 없지만 거울 속 나에게 곧 그리 될 것이라 매번 웃으며 인사한다.
민망하지 않냐고? 그냥, 지망생인 거 아니냐고?
에이...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글을 써서 받은 돈이 소형 자동차 한 대 살 정도는 되는데?
세상이 내 문장에 값을 매겼다는 뜻은 스스로를 작가라 칭해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작권 등록된 작품도 여럿이다.
비록 시작이 늦어도 한참은 늦었지만...
하지만, 이 늦은 시작은 내게 하나의 장점이 되었다. '작품은 작가의 경험을 뛰어넘지 못한다'라고 누가 그랬다. 간접적인 경험보다 직접경험이 풍부하다는 장점은 내 글을 살아 숨 쉬게 해 주었으며, 부끄럽지만 ‘철’ 이 아직 들지 않은 탓에 어린아이처럼 상상력도 대단하다.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면, 그 이야기는 장. 단편 장르 소설로, 웹 소설로, 웹툰 시나리오로, 숏폼 시나리오로... 한 발 더 나아가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로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며 그 스토리 또한 스릴러, 판타지, 회기물. SF 등 재 창조와 변형의 과정을 거치며 각각의 결과물을 계속해서 출력해 내었다.
그리고 장르나 구조를 섞는 과감한 시도도 해 본다.
※19금 작품은 정말 너무나 리얼리티 하게 쓸까 봐 도전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진짜 자신 있는데 솔직히 그 디테일을 표현할 내 손끝이 무섭다.
복합장르가 되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얘기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나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멈추지 않는 탓은, 하얀 쌀밥에 국과 정갈한 반찬을 늘어놓고 식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비빔밥도 나쁘지 않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며. 서구식 고급 레스토랑에서 청국장을 먹는 상상도 나에겐 꽤나 즐겁기 때문이다.
난 그냥 여러 명의 인물들을 창조해서 풀어놓고 관찰을 한다.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반드시 그들 사이에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들 사이에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여 갈등과 아이러니를 덧붙인다. 그리고... 그냥 지켜본다.
그들이 뭘 하고 뭘 먹고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떻게 사건을 이끌어 가는지. 그리고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보고 듣고 느낀 걸 그냥 쓰면 된다.
굳이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들은 스토리 기준으로만 올해 10여 편이 넘었고, 장르별 구분을 짓자면 최소, 십 수편에 이른다.
하지만...
내가 유독 쓰지 못하는 장르의 글이 있으니,
그 이름도 대단한 ‘로맨스(romance)’ 되시겠다.
로맨스의 사전적 의미는 다층적이지만, 그냥 남녀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정의하겠으며 굳이 몇 개의 예를 들자면, 저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안드레 애치먼의 콜미바이 유어네임 (제발 책으로 읽어보시라) 등이 로맨스 장르의 소설이라 하겠다.
이쯤 되면 당신의 입이 근질거릴 것이다.
모쏠이냐고...?
하- 하핫.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성과의 연애사가 끊이지 않았던 사람이다.
“엄마가 예뻐, 선생님이 예뻐?”
기대에 가득 찬 어머니의 질문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생님을 택했을 정도로 유치원 때 이미 그 근본부터 남달랐으며, 국민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 때에도 단 한 번도!
연애를 쉰 적이 없었다.
이는 내 기억이 증명하는 게 아니다. 팩트다.
주위에 보면, 상당히 잘난 것도 없는데 쟤는 왜 여자친구가 항상 있어? 하는 애들이 있다.
그 애가 나다-
고등학교땐 일각에 유명한 얘기도 하나 있다.
고2...
그때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공황장애'를 겪었었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교실로 향하는 걸음걸음 식은땀이 났으며 자리에 앉아있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이게,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인 것은 밤을 새워 떠들어 대도 모자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난,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시도 때도 없이 빨간 코팅 목장갑에 쇠파이프를 들고 설치는 세계사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문득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확신이 섰다.
복도에 걸려있던 '상담쪽지함'에 종이를 투척했다.
[결혼하고 싶어요 / 2학년 4반 김도영]
그날 저녁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도영아. 너 도덕쌤이 상담실로 오래"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의 도덕 선생님이 상담실로 날 불렀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러시아 국적의 작가와 결혼을 하셨고 이국적인 외모에 큰 키 그리고 완벽한 비율로 감히 우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몇 년이 지나 한 TV 드라마에서 난 그날, 도덕쌤이 나에게 했던 첫마디를 데자뷔처럼 듣게 된다.
"도영아...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아...아니 쌤... 쌤하고 결혼하겠다는 게 아닌데...
뭐, 이 실제로 있었던 일화는 그냥 웃자고 쓴 얘기지만 분명한 건 서두에 말했듯, 나의 연애 경력을 이력서에 쓴다면 단편 소설 급은 될 것이다. 한 가지 철칙은 절대 동시에 여럿의 이성을 만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다만 사랑이 식는다고 생각이 들 때, 환승이 빨랐을 뿐.
(김도영은 필자의 실명이 아니다.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내 작품에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리고 환승연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에게 잠시 변명을 하자면, 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말라 비틀어 죽어버리기 전에 나에게 물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은 것뿐이다. 이건 삶과 죽음의 얘기이니 적당한 선에서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군 복무를 하던 26개월 동안은 어땠냐고? BL이라도 찍었냐고?
그렇다. 난 그때에도, 난 사랑을 쉬어본 적이 없다.
애국(愛國)을 했지...
제대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국가에 미안하게도, 또 이성과의 연애를 시작했고, 한 번의 짧았던 결혼 직전까지 그 흐름은 쭉 이어졌다.
하지만 그 실패한 결혼생활은 나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다.
이성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경험이 뇌리에 깊이 박혀 버렸으며, 이는 항상 말랑했던 나의 심장을 차갑게 굳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던 탓이다.
아니, 도대체 결혼 생활이 어땠길래?라고 물어보신다면 세상 모든 따가운 시선이 이 나에게 집중될지언정 죽을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그게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지막 예의다.
하지만...하- 하핫. (이건 민망함의 웃음이다) 절대 다시는 사랑 안 한다고 외치던 순간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조금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들을 시작하고야 말았으니.
‘아. 이제 마지막 이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던 만남이 그 시작이었는데, 8년을 연재하던 그 이야기도 결국엔 끝이 났고 예감은 마치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나에게 더 이상, 사랑은 없다.
조금 있으면 3년을 채우겠으니 내가 이 미친 세상을 떠나기 전, 인생의 회고록을 남긴다면 이 시점을 나에게 있어 가장 어두운... 암흑과 같은 시기였다고 쓰겠노라.
난 결국 혼자서는 완성되기는 힘든 존재인가 보다.
말라비틀어졌지만, 몸무게는 왜 느는 건지...
내 모든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하나씩 자물쇠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을 보아도 아름답다 느끼지 못했고, 부드러움과 접촉을 하여도 부드럽다 느끼지 못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고, 가장 큰 문제는...
청력이었다.
내 귀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바로 귀를 막아버리거나, 차단하는 행위.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라는 얘기가 아니고, 소리가 내는 주파수. 그 일정 범위 안에 없는 소리는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칠판을 긁는 손톱 소리처럼, 기분 나쁜. 그리고 소름 끼치는...
이거 정말 큰일이다.
그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더욱 크게 작용했으며, 내 귀에 듣기 편안한 목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내는 소리는 나에게 잡음이고 공황이었다.
사회란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으로서, 혼자서는 살 수없는 인간이란 존재로서, 이성 없이 완성되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로서... 이거... 정말, 큰 일이다.
난 지금, 열쇠가 필요하다...
이제,
그 열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