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지나간 자리
짐을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된 마음을 마주했다.
신혼여행 때 찍었던 사진들,
그가 한창 나를 사랑하던 시절에 써주었던 손편지들.
“평생 지켜줄게.”
“너라서 너무 행복해.”
“늘 고맙고, 사랑해.”
그 문장들은 그때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의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다.
그 ‘평생’은 생각보다 짧았고,
그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방향을 바꿨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기보다,
어딘가 허탈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변화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
편지를 덮고, 또 다른 편지를 펼쳤다.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들이 써준 손편지.
그때는 서로의 인생을 끝까지 함께할 것처럼
진심을 나누던 관계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그때의 약속도, 감정도,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라는 건, 결국 다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아무리 깊어 보여도,
아무리 영원할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흩어지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쏟고,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관계를 이어가는 걸까.
잠깐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면,
이 모든 게 무의미한 건 아닐까.
그 생각 끝에,
나는 오히려 한 가지를 더 분명히 알게 됐다.
결국,
남는 건 ‘나’라는 것.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변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내 곁에 머물지 않더라도,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쓰는 삶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삶.
관계에 기대어 나를 증명하려는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단단해지는 삶.
관계는 여전히 소중하지만,
그 관계가 나의 전부가 되지는 않도록.
누군가와의 인연이 끝나더라도
내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렇게,
나는 나를 중심에 두는 삶을 선택하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이립’이라는 말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떠나도,
나는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