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팀장님과 김밥 한 줄

이동 면담

by 글꽃

면담은 오후 다섯 시로 잡혔다.

팀장님은 종일 바빠 점심도 못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면

김밥 한 줄 들고 잠깐 보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굳이 바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직은 말할 수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된 시각,

우리는 작은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회의실 문은 반쯤 닫혀 있었고

창밖에서는 이미 가방을 메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루가 끝나기 직전의 공기.

느슨함과 긴장이 동시에 섞인 시간이었다.


팀장님 손에는 김밥 한 줄이 들려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무젓가락을 똑 부러뜨렸다.

둘이서 하나를 나눠 쓰기 위해서였다.

김밥도 반으로 잘라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이건 먹어야지.”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저 점심 먹었어요.”

사실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면담을 기다리는 동안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속이 계속 조여 오는 느낌만 있었다.


김밥을 씹으면서도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입은 움직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오늘 해야 할 말들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요.”

괜히 말을 덧붙였다.

더 이상 먹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팀장님도 본인도 약속이 있다며 말했다.

그리고 정말 아무 뜻 없어 보이게 물었다.


“어디 가는데?”


그 질문이 공기 중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잠깐 숨을 잊었다.


순간적으로

이동 이야기를 이미 알고 묻는 건가,

아니면 감으로 눈치챈 건가,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질문인가,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생각이 동시에 튀어 올랐다.


‘어디’라는 단어가

장소를 묻는 말이 아니라

내가 가려는 방향 전체를 묻는 것처럼 들렸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고

손바닥에 땀이 찼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지만

나에게는 길게 늘어진 시간이었다.


“서현이랑 판교 사이요.”

나는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

마치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는 사람처럼.


그제야 심장이

조금 느린 속도로 돌아왔다.

팀장님의 질문은 정말로

저녁 약속의 위치를 묻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김밥을 다 먹고 나서야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는 먹는 시간이 아니라

말하는 시간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팀장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정말 오래 고민했다고 말했다.


내가 2020년 6월 경력으로 입사해

5년 동안 마케팅팀에서만 일할 수 있었던 건,

팀장님이 나에게

단순한 실행이 아니라

전사 관점에서 마케팅을 고민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맡겨주셨기 때문이라고.


지금 돌아보면

이 5년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시간이었고

그 중심에는

팀장님의 판단과 리더십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예의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나는 이 팀에서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기보다

마케팅이 돌아가게 만드는 구조를 만든 사람이었다.


리드 제너레이션을 전제로 한 홈페이지 첫 구축,

검색엔진 마케팅과 퍼포먼스 마케팅의 시작,

콘텐츠 마케팅과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축 정립.


코로나 시기에는

수많은 온라인 웨비나와 프로모션을 기획했고

코로나 이후에는

오프라인 행사와 전시 마케팅을 총괄했다.


없는 것을 만들고,

처음 만든 것을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드는 일.

그 역할을

5년 동안 집중해서 해왔다.



올해도 휴직 기간 161일을 제외하면

나는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럼에도

이번 평가 점수는 2.0이었다.


이의제기는 하지 않았다.

사명 변경과 브랜드 행사 시 부재라는 상황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수는

“다음에는 더 잘해보자”라는 자극이 아니라,

더 이상 힘을 낼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지 않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팀장님의 대답은 예상보다 직설적이었다.


“2.0은 줄 만해서 준 거야.”

“네가 육아휴직한 동안

우리가 얼마나 너의 빈자리를 메우려고 고생했는지 알아?”


그는 내가 없던 5.5개월을 길게 설명했다.

그 기간 동안

올해 연간 업무의 대부분이 시작되고 끝났다고,

사명 변경 프로젝트,

전사 브랜드 론칭,

고객 초청 행사 같은

가장 중요한 일들이 모두 그때 있었다고 했다.


“넌 그 자리에 없었잖아.”


아무리 전후로 열심히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가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건 공평하지 않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너의 행복을 위해

또 양보하고 희생해야 해?”

“나는 더 이상 그럴 의향이 없어.”


그 말은

업무 평가가 아니라

관계의 선을 긋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저는 행복해지려고 가는 게 아닙니다.”

“덜 불행해지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지금도 불행하고,

가도 불행할 것 같다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불행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선택을 하려는 거라고 말했다.


“여기가 그렇게 불행했단 거야?”

그가 물었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네.”

“저는 불행론자입니다.”

“행복은 제 인생에서 글러먹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덜 불행한 쪽을 선택하면서

회사 생활도, 인생도

그렇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새벽 네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화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하지 않은 말들,

말했어야 했던 말들.


다음 날 아침에도

눈은 그냥 떠졌다.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의 눈치를 보다가

점심 무렵 슬랙을 보냈다.


“팀장님, 생각은 해보셨어요?

재면담 언제 가능할까요?”


“이따가 보고 알려줄게.”

짧은 답이 왔다.


하지만 그는 한참 동안

나를 피해 다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 기다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그래서 본부장님 비서에게 연락했다.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고.

오후 네 시, 30분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이건 공격이 아니라

내가 가진 마지막 카드였다.


오후 세 시쯤,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면담하자.”


그는

내가 본부장님 면담을 신청한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본부장님 앞에서

개인사까지 꺼내며

이동을 읍소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의 레퓨테이션을 건드리는 일이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규정상 6개월 휴직을 하면

평가 면제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팀장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복귀해 달라고 해서

5.5개월만 쉬고 돌아왔습니다.

조기 복직한 것도 제 선택이었고,

그 선택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면

그 책임도 제가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팀장님의 평가도

이의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평가는 팀장님의 고유 권한이고

그 기준도 존중합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제가 없는 동안 대신 고생한 팀원들에게도

상대평가 구조상

제가 점수를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는 결국

연봉과 인센티브,

돈과 연결된다.


“제가 낮은 점수를 받은 만큼,

팀장님이 더 같이 일하고 싶고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점수, 그러니까 보상을 더 줄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 말은

따지려는 말이 아니었다.

정산하려는 말이었다.


“제가 없는 동안 고생한 팀원들에게

금전적으로라도 보상이 갔다면

그걸로 제 몫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또 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해야 되냐고 하셨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저도 충분히 손해 볼 만큼 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일을 원망하거나

평가를 바꾸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저는 다 존중하고 수용했습니다.”


“이제 팀장님께서도

제 결정을 한 번만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존중 안 해주면 어쩔 건데?”


그 질문에는

선택지를 주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팀장님은

제가 진심을 다해 설명하면,

그리고 제가 팀장님을 존중해 왔던 것처럼

팀장님도 저를 존중해 주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나는 말을 고르며 덧붙였다.

“저도 이제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 밤,

나는 새벽 네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말했던 문장들과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침에도 눈은 그냥 떠졌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팀장님의 눈치를 봤다.

점심 무렵,

슬랙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팀장님,

생각은 해보셨어요?

재면담 언제 가능할까요?”


“이따가 보고 알려줄게.”

짧은 답이 왔다.


하지만 그는

한참 동안 나를 피해 다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 기다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그래서 본부장님 비서에게 연락했다.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고.

오후 네 시,

30분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공격이 아니라

내가 가진 마지막 안전장치였다.



오후 세 시,

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면담하자.”


알고 보니 그는

내가 본부장님 면담을 신청한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본부장님 앞에서

개인사까지 꺼내며

이동을 읍소하는 장면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그의 레퓨테이션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일이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안 보내주면 어쩔 건데?”


두 번째 면담에서

그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말했다.


“퇴사를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회사 안에서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조직에서 저를 불러줬고,

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못 가면요?”

“그럼 원래 계획대로 퇴사하겠습니다.”


“이직할 데는 있어?”

그가 물었다.


“이직은 안 합니다.”

“창업을 준비할 겁니다.

최후의 보루로요.”


그는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고생길을 자처하냐.”

“그냥 여기서 편하게 일하면 되잖아.”

“열심히 하면 올해처럼 안 줄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올해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말했다.


“가정도, 개인사도 무너진 상태에서

사회적으로라도 성취하지 못하면

저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그는 말했다.


“그럼 가.”


그 말은

허락이면서 동시에

끈을 놓는 소리였다.


면담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나는 이동 확정을 받았다.


언제 이동하느냐는

묻지 않았다.

그날 내가 얻어야 할 건

날짜가 아니라

결정이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이혼을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행복해질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대로는 더 버틸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선택은

나를 빛나게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덜 무너진 상태로

다음 날을 맞이할 수는 있게 해 주었다.


이번 결정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어디로 가면 더 나아질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어디를 가도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나를 조금 덜 소진시키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남아 있는 대신

결정하는 쪽을.


버티는 대신

방향을 바꾸는 쪽을.


퇴근 무렵,

김밥 한 줄을 나눠 먹으며

나는 또 하나의 결정을 지나왔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이번 주말은

조금은 편하게 쉬어도 되겠지.


적어도

내가 나를 배신하지는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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