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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Jan 29. 2018

우리 사회에 회복해야할 낭만

미국 뉴저지에 사시는 이모부가 출장으로 한국에 나오셨다. 출장 업무를 마치신 다음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학 동기들을 만나셨다. 이모부의 대학 동기 다섯 분도 이모부가 나오시는 것을 기다리셨다는 듯이 모든 일정을 이모부의 시간에 맞추어주신다. 모두 H대학교 건축학과 출신이셨기에 대한민국 경제성장기 건설 대기업에서 한자리씩 하셨거나 같은 대학 교수로서 가르치시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신 후 지금은 사회에서 한걸음 물러나시어 여유로운 날을 보내고 계신다.   


이모부와 친구분들은 과거 추억의 학창시절 이야기들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그 중 한가지 이야기가 내 관심을 끌었다. 6명의 동무들 중 한 분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전문대에 다니는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한다. 이모부의 친구분과 여자친구 두 분은 서로를 상당히 사랑하였기에 친구들도 그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해주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성분은 전문대에 다녔기에 2년후에 졸업을 하게 되었고, 여성분의 부모님은 집안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딸이 하루속히 부산으로 내려와 부모님께서 정해 놓으신 분과 결혼을 하길 바라셨던 것이었다. 여성분은 결국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고 시간은 흘러 결혼할 날짜가 임박하게 되었다. 그 때 이모부와 친구 다섯은 모두 수업을 마친 후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고 한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여섯은 여자친구 집으로 달려가서 초인종을 누를 용기는 나지 않고 대신 그 집 담장에 사방으로 “ㅇㅇㅇ 결혼 결사반대”, “ㅇㅇㅇ는 ㅇㅇㅇ와 결혼해야 한다.”는 벽보로 도배를 두르고 우당탕탕 도망쳐 나와 서울에 올라와 밤새도록 위로주를 마셨다고 한다. 두 분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 부산까지 함께 내려가준 친구들의 우정과 열정은 영원히 남았으리라! 그 때에는 KTX나 SRT도 없었을 때인데, 그러한 열정이 있었으니 학창시절에는 여기저기 사고도 치고 철없이 놀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한자리씩 하셨던 것 같다.   


이제 그분들에겐 지난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시며 낭만이 담긴 학창시절의 이야기들을 나누시는 것이 모임의 기쁨이자 감동이다. 그런데, 그 중 대학교수로 일하셨던 분이 자기들 대학 때에는 학교도 땡땡이 치고, 대놓고 컨닝을 요청하기도 하고, 여러 사건과 사고가 많았었는데, 지금의 대학생들은 그러한 낭만이 없고 모두 학점과 스펙 쌓기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맞다. 어쩌면 우리시대에 가장 많이 놀고, 여기저기 부딪혀보기도 하며 낭만이 많아야 할 대학생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대학생과 대학생의 미래에만 초점을 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학생들이 처해있는 환경도 문제가 있지만 사회가 전반적으로 낭만을 잃어가고 있다. 이를 보며 우리사회의 세가지 모습을 떠오르게 되었다.   




첫 번째, 우리 사회 자체가 각박해졌다.   


농담으로 이야기했다. “이모부. 아마 지금 그 때처럼 벽에 다가 ‘ㅇㅇㅇ는 ㅇㅇㅇ와 결혼해야 한다.’, ‘ㅇㅇㅇ 결혼 결사반대’ 벽보를 붙여놓으면 아마 여자 부모님들이 이모부 친구분들 고소했을 걸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인간미가 없어졌다. 크리스마스에 거리를 걷다보면 캐롤이 들리지 않는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서 길을 건너면 차들이 기다려 주지 않고 사람이 지나가는 틈을 따라 조금씩 전진하다 지나쳐 버린다. 이 모든 것을 사람보다 자본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의 결과물이라고만 탓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도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오며, 낭만을 중요시하고 실내에서 사람들간에 문을 열어주거나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을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여유가 없다. 고등학교 때에는 입시로,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하여 경쟁한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더 높은 직급에 도달하고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하여 경쟁한다. 야근과 주말근무는 생활화된 사회를 살아간다. 바쁜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낭만과 배려의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두 번째, 우리 학생들은 너무나도 높은 경쟁에 노출되어있다.   


직장 여건에 따라 임금격차와 근로환경의 차이가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여 더 높은 스펙과 학점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자신들이 대학생활 동안에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며 도서관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거나 교환학생, 어학연수 등을 통하여 다른 사람과 차별화를 해야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낭만도 잃어간다.     




마지막으로 연애 자체를 쉽게 생각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나 내일 유학가.’,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의 유학으로 인하여 서로 헤어지는 것에 대한 슬픔이 청년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치한 소재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짧은 기간 또는 긴 기간의 헤어짐이라도 그 작은 것에도 애뜻함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청년들을 보면 너무나도 쉽게 만나고 또, 쉽게 헤어지는 것 같다. ‘썸’이란 단어가 유행이기에 가볍게 연애한다거나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젊은 세대의 경향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간의 애뜻한 생각보다는 경제적인 요건을 중요시하며 서로의 조건들을 따져가며 만나기도 한다. 연애와 결혼에 실리를 추구하는 패러다임으로 바뀐 것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세가지면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회가 바뀌어야 하겠지만 우리사회가 좀처럼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이자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경쟁하는 모습은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수십 년 후 노동 가능인구가 줄어들어 대학생의 취업문이 쉽게 열리기 전까지 대학생활은 치열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연애에 대한 젊은 이들의 경향 또한 점점 부담없는 만남을 선호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해 외부적인 요인을 바꿀 수 없다면, 내부적인 요인으로 눈을 돌려 봤으면 좋겠다.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사회는 자본을 중심으로 발전하기에 각박하고 냉정하지만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의 마음을 따스함으로 채울 수 있다. 상가에 들어갈 때 맞은 편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문을 열어줄 수 있고, 지하철을 탈 때에는 1초정도 기다렸다가 타는 여유. 이러한 여유들이 모여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만들어 주고 바위틈 속에서도 뻗어나는 한줄기의 식물처럼 각박한 사회 속에서라도 우리 마음 가운데 따스함을 채워줄 것이다. 이러한 따스한 마음이 사람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뀐다면 우리 마음에도 가벼운 사랑보다는 열정과 헌신에 바탕을 둔 사랑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낭만이 없어진 것은 맞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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