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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Mar 07. 2018

승현이와 함께한 2월의 뉴욕산책

겨울이라고 하기엔 따스했던 2월의 어느 날 뉴욕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의 대형서점 반즈 앤 노블(Barnes & Noble). 4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머리 끝부터 승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형 안녕하세요. 뉴욕에서 보니 더 반가워요.”

“나도 내가 승현이를 뉴욕에서 볼 줄 몰랐네?”   


3주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만났던 우리가 다시 지구 반대편 뉴욕에서 만난 것이었다. 그것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미드타운과 패션/쇼핑의 거리 소호를 잇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약속장소인 유니온 스퀘어에서 만난 것이 너무 신기했다.     

둘 다 약간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반가운 이야기들은 식사를 하면서 하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멕시코 요리 프랜차이즈 치폴레(Chipotle). 지난 수년간 뉴욕을 오면서 쉑쉑(SHAKE SHACK), FIVE GUYS 등 유명 햄버거 집과 여러 레스토랑을 다니며 블로그와 매거진에 맛 집들에 관하여 정리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미국 전역에 지점이 있는 치폴레는 가보지 않았기에 내가 가자고 이야기했고 그 곳에 이르자 승현이는 주문하는 요령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승현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 교회 모임에서였다. 그 때 승현이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에 나온 것이었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승현이가 CUNY(City University Of New York)의 재학생인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 내 사촌동생이 CUNY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어서 서로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승현이의 공부와 일, 이번 학기 마치고 승현이가 가야할 군대 등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끝은 다이어트로 귀결되었다. 작년 여름 그리고, 얼마전 겨울 서울에서 보았을 때에도 우리의 주제는 다이어트였는데, 지구반대편 뉴욕까지 와서도 우리의 주제는 동일하니 다이어트는 남녀노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중요한 주제임을 실감했다. 약간은 헤비한 치폴레의 부리토를 다 먹은 후 우리는 담화의 주제인 다이어트 실천에 충실하기 위해 문 밖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우리의 출발점은 교복 입은 중학생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모두의 약속장소인 유니온 스퀘어. 맨하탄 다운타운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스트 빌리지, 노호(NOHO), 뉴욕대학, 패션과 쇼핑으로 유명한 소호(SOHO, South Of Houston st.), 차이나타운을 거쳐 뉴욕 시청사 앞까지 오게 되었다. 둘 다 뉴욕에 익숙하여서인지 구석구석 걷는다고는 했지만 한 시간 남짓한 시간만에 25블럭 정도를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하게 된 시청사 앞. 이제 선택은 ‘맨하탄 다운타운으로 더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널 것인가’였고, 승현이는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뉴욕은 세계 제일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바쁘고 개성있게 살아가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보면 어느덧 나태함이 사라지고 더 큰 열정을 추구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지난 7년간 6번을 왔지만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넌 것은 6년전 한번이었고(그것도 절반만…) 여러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덤보(DUMBO)는 가본적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 동안 내 맘 속에 뉴욕시티의 중심인 맨하탄을 벗어나는 것은 금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뉴욕 주는 매우 크기에 북쪽으로는 캐나다까지 맞닿아있지만 뉴욕 시는 우리가 흔히 뉴욕시티라고 부르는 맨하탄 섬, 브루클린, 퀸즈, 브롱스,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다섯 지역을 이야기한다.)   


“에잇. 다리 건너자. 한 6년만에 건너보는 것 같은데…”   


두 남자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기로 결정했다. 2월 중순이지만 이상기온 탓인지 봄 햇살이 비추었고 온도는 섭씨 10도가 조금 넘어 보였다. 브루클린 브릿지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중 하나이기 때문인지, 걷기에 딱 좋은 날씨 덕인지 다리는 양 옆으로 브루클린으로 가는 사람들과 맨하탄으로 오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물론, 주변에선 한국말도 들렸고, 중국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외국어 등 영어 빼고 다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오랜만에 건넜기에 모든 것을 사진에 담고 싶어 연거푸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곳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기에 마치 제 3세계 언어로 떠들며 지나가는 커플들, 부부들, 가족들이 사진 프레임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승현이는 그 시간들을 너그러이 함께 해주었다.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어 대어 ‘나 뉴욕 자주 온 사람 맞나?’라는 물음을 자문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다이어트를 위해 유니온 스퀘어에서부터 시작하여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게 된 두 청년 발 앞에 문장 하나가 들어왔다.   


“Welcome To Brooklyn”  

“브루클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번을 오고 난 뒤에야 브루클린에 오게 되다니 이제까지 내 머리 속 지도 안에서 뉴욕 시티는 곧, 맨하탄이라는 고정된 빨간 핀을 꽂아왔던 나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덤보로 향하게 되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포스터에 나온 덤보에 다다르자 승현이가 말했다.   


“맙소사. 제가 형이랑 덤보를 오게 될 줄 몰랐어요.”   


“나도 내가 너랑 덤보에 오게 될 줄 몰랐어. 하하하.”   


국내 유명 쇼 프로그램 덕분인지 덤보에 다다르자 우리 주위에는 90%가 한국 사람이었으며, 대부분이 커플이거나 여자들이었기에 우리처럼 남자 둘이 온다면 이성교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기에 딱 좋아 보였다. 그런 것을 느꼈는지 둘 다 너무 어색해했다. 문제는 순진한 두 청년은 쑥스러워서인지 서로의 사진만 찍은 후 주변의 ‘한국’ ‘여자’ ‘사람’에게 가서 사진을 요청하거나 찍어주겠다는 말조차 걸지 않았다. ‘승현이는 정말 뉴욕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착실한 청년인 것 같다.’ 결국 승현이가 외국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해서 둘이 함께 간단한 사진을 남겼다.       

이제 저녁이 되어 한산해진 뒤 골목을 지나 브루클린 브릿지 공원에 다다르게 되었고, 우리 앞으로 맨하탄 다운타운의 야경이 펼쳐졌다. 불과 3주전까지만 해도 서울 코엑스를 거닐던 우리가 맨하탄 야경을 같이보고 있다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스트 강 한쪽 편, 바다와 맞닿는 쪽으로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오늘 하루가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다. 유니온 스퀘어, 이스트 빌리지, 소호, 차이나타운, 시티홀, 브루클린 브릿지, 덤보까지 약 10여 킬로미터를 걸어온 것 같았다. 내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더욱 의미있었던 것은 첫째, 맨하탄을 넘어 브루클린에 다다른 것이었고 둘째, 치폴레, 차이나타운, 시티홀, 브루클린 브릿지, 덤보까지 갈 기회가 너무나 많았지만 그 동안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씩 했던 것이었다. 정말 이럴 때가 있는 것 같다. 해야지 해야지 생각하며 자신이 하기에 너무 쉽고 간단하지만 그냥 하지 않았던 것들, 어쩌면 어색해서 하기 싫었던 것들이 누군가와 함께 하기에 실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뉴욕에서의 그 걸음을 승현이가 함께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미있고 특별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결국 이 곳은 승현이가 함께 했기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깨닫게 되었다. 시컴시컴한 남자 청년 두 사람이 모이면 카페 보다는 함께 걷는 것이 훨씬 덜 어색하다는 것을. 맨하탄에서의 아르바이트, 공부와 동아리 관리 등 학기 시작을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어 함께 동행해준 승현이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함을 전한다. 뉴욕은 특별한 곳이다. 전세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개성있는 곳이며 그곳에선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지금 나에겐 그날 승현이와 함께 본 브루클린 덤보에서 바라본 맨하탄 스카이라인과 분홍빛 구름이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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