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밤 10시 30분 미국 뉴어크(Newark)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에는 미국행 비행기가 많지 않아 인천에서 출발, 시카고를 경유하여 뉴욕에 도착하였다. 시카고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는 절차가 있었기에 시간이 좀 지연되었고 장시간의 여정으로 나의 몸은 피곤했었다. 뉴어크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오는 길이 내리막길로 되어있어서 잠시 멈칫한 사이 카트의 짐들이 모두 쏟아져 내렸고 나를 지켜보던 대기선 밖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이모가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모두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아름답기만 했던 기억으로 미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모 집으로 가는 길. 그때가 군대를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기에 차창 밖 뉴욕 풍경은 신기하기만 했다. 멀리 맨하탄 스카이라인이 보였고 그 가운데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도 있었다. 나는 피곤함 속에 이모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보니 이모부는 이미 회사에 출근하신 상태였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이모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길이 너무 막혀 이상하다고 뉴스를 틀어 상황 좀 확인하여 달라는 전화였다. 우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TV를 틀었고 뉴스채널로 돌려보았다.
사실, 이 글에 앞서 여러분께 알려드리지 않았던 것이 있다.
내가 도착한 날은 2001년 9월 10일 밤 10시 30분이었던 것이다. 어젯밤 미국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보았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er)가 무너졌고 뉴욕 맨하탄은 아비규환이 되어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도착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한국에서 몇 시간만 늦게 출발하였다면, 아니 12시간후에나 있을 다음 비행기를 탔었다면, 시카고를 경유할 때 조금 늦어서 다른 루트로 비행기를 갈아탔었다면…..’이라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쳤고 옆에서 이모는 적잖이 위로해 주었다. 이렇게 9/11은 나에게 찾아왔다.
며칠 뒤 맨하탄을 나가보았다. 사건이 일어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폐쇄되었고 반경 몇 km 밖까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안으로는 시멘트 먼지가 자욱하였고 수개월이 지나도 지속되었으니 무너져 내린 현장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철조망 밖에는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가족, 친구, 친지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편지, 촛불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안의 처참한 상황을 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애도의 행렬은 오랫동안 지속 되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2년 겨울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어 다시 뉴욕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전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그 장소를 다시 찾게 되었다. 그 때 그라운드 제로는 9/11 메모리얼(Memorial)과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건설에 한창이었고 사전 예약자에 한하여 내부를 관람할 수 있었다. 다행히 사촌동생이 미리 예약한 상태였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9/11 메모리얼에는 당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 새겨진 이름들 중에는 당시 건물에서 근무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건물이 무너져 내릴 당시 사람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재붕괴로 순직한 소방공무원, 경찰관 등 공직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위한 기념비도 세워져 국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미국은 경찰, 소방관, 군인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에 대한 명예를 지켜주며 처우가 좋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는 공원을 보며 11년전 당시의 맨하탄을 다시 생각했다. 몇 개월이 지나도 공기 중에 떠다니던 흙먼지 바람과 시멘트 가루들, 철조망 밖에서 주저앉아 할말을 잃어 울먹이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 밤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되어 미국으로의 방문에 신이나 공항 밖을 나오며 모든 짐을 엎으면서도 싱글벙글했었던 나의 모습, 그 밖에서 나를 보며 크게 웃었던 미국 사람들과 미소 짓던 이모의 모습이 교차되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저마다 9/11사건을 바라보는 생각과 마음은 다를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그 때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잡아온 물음이 있다. “나는 과연 그들이 아닌 내가 산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다행이다?”….. “맞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하지만 그러한 감사함 속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이 남는다.
그로부터 5년후인 2018년초 나는 9/11메모리얼을 다시 찾았다. 이제는 완공된 원 월드 트레이드센터를 볼 수 있었고, 그 앞으로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에 의해 디자인되어 2016년 3월에 오픈한 오큘러스(Oculus) 즉, 월드 트레이드 센터 환승터미널(World Trade Center Transportation Hub)도 볼 수 있었다.
‘아이의 손에서 날아가는 새의 모양’이라고 하는 본 건물은 뉴저지 뉴어크(Newark)와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를 잇는 철도 환승역사로서 이제는 로어 맨하탄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17년전 내가 착륙한 뉴어크 공항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이어주는 환승역사라는 것이 나의 마음을 이 곳과 더욱더 엮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빼어난 모습에 멋지다고 감탄만 할 수 없는 마음이 있는 이곳, 감사하다고 다행이라고 하기엔 죄책감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이곳을 다시 찾았다. 채광이 잘되는 오큘러스의 뼈대 사이사이로 로어 맨하탄의 빛이 비추인다. 그 빛은 지난날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념의 빛, 추모의 빛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이제 나에게 그만 마음을 가볍게 내려놓아도 된다는 그들의 속삭임이라고 믿는다.
하루에도 수십, 수만 명의 사람들이 9/11메모리얼, 월드 트레이드 센터, 오큘러스를 방문한다. 과거 이 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슬픔과 죄책감이 머무르던 공간이었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는 밝은 빛으로 그들을 기념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세계의 중심 뉴욕,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 스트리트가 있는 로어 맨하탄에 그들을 기념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놓은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자본주의의 끝을 볼 수 있는 곳을 미국 뉴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세계 자본이 모이는 가장 과열된 도시 한복판인 로어 맨하탄에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단순히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이기 때문이 아닌 자본주의를 넘어선 더 높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 사회의 윤리의식을 나타내어 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 가운데 이제 나의 마음 속 부담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 상황을 모면한 것에 한편으로는 작은 빚을 진 마음으로 앞으로 선하게, 의롭게 주위사람들을 도와주며 그들의 몫까지 다하여 살아야겠다고 소박한 다짐을 한다. 그리고 비상하는 오큘러스의 날개처럼 하늘나라에 있을 그들의 축복을 기원한다.
부디 앞으로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건축물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짧게 나마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가볍지 않은 축복을 기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아울러 9/11으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에게 소소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의 이름은 이 곳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있다. 적어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