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왕국의 옛 수도이자 찬란했던 바이킹의 숨결이 남아있는 웁살라를 찾았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 북쪽에 위치한 웁살라는 18세기까지 스웨덴의 수도이자 정치, 문화, 교육, 종교의 중심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홀로 있고 싶은 마음, 외딴 곳을 찾아나선 마음은 나를 북유럽으로 인도하였고 스웨덴의 옛수도 웁살라에 도착하자 그런 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을씨년스런 날씨가 나를 맞았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웁살라 콘서트홀이자 의회(Uppsala Konsert & Kongress) 건물이었다. 2007년 9월에 개관한 본 건물은 을씨년스런 웁살라의 겨울 오후를 빛내는 수정(The Crystal)과도 같았다. 14,600 제곱미터에 5개의 무대는 매년 약 300회 정도의 문화행사를 주최한다.
이곳의 모토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환영받는 문화와 회의의 중심’.
북유럽이 정치 청렴도도 높고 평등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듯 이 건물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이었다.
건물내부에 들어가니 붉게 물들여진 에스컬레이터와 바닥, 의자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건물 내부 인테리어에 더하여 물건들조차 붉은 색으로 덮였는데, 이에 창밖의 음산한 날씨가 더해지니 방금 도착한 낯선 땅인 이곳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갑자기 든 생각은
‘이방인인 내가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콘서트홀 꼭대기에선 웁살라의 사방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었는데, 날씨 때문인지 음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웁살라는 매우 차갑다는 느낌을 주었다.
‘겨울인 지금 오후가 막 지났을 뿐인데 주변이 모두 흰색, 검은색, 회색으로 바뀌어 콘서트홀만은 정열과 따뜻함을 상징하는 붉은 빛으로 물들인 것인가?’
일리가 있는 엉뚱한 상상이라 생각된다.
차가운 도시 웁살라를 따뜻하게 하는 붉은 빛을 품은 수정.
잠깐 웁살라의 전망을 본 후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당인 웁살라 성당으로 향하였다. 이제 막 오후 4시가 넘었지만 겨울 웁살라의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묵직한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향하니 문 안에선 밝은 빛이 북유럽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있었다. 아무도 없이 쓸쓸해 보이지만 매우 밝은 성당내부. 적막함 때문인지 오히려 들어가길 머뭇거리게 했다.
1260년부터 1435년에 완공된 북유럽 최대의 성당. 높고 거대하지만 지나가는 사람, 기도하러 들른 사람 하나 없는 이곳을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 마치 거대한 기둥 뒤편에 북유럽 바이킹 용사들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명성에 비해 너무 한적했다.
아니. 웁살라에 도착하자 처음부터 들었던 생각.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더욱 어울렸다.
그리고 내 옆으로 펼쳐진 스웨덴 왕족의 묘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시작된 여행이었기에 조금은 대담해지고 겁을 잃었기 때문에 이곳을 배회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지구 반대편 북유럽에서 스웨덴 왕족의 묘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들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동일한 자부심이 있다.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정아무개의 손자이자 그의 큰아들의 아들이라고. 그들과 나만의 속삭임 속에 훌륭했던 북유럽의 왕들처럼 나 또한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보았다. 그리고 머리 위를 바라보니 화려하진 않지만 따스한 색깔의 그림과 문양이 천장에 수 놓여 있었다. 이 그림과 문양은 마치 북구 왕국의 추위로부터 성당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직 저녁 6시도 되지 않았지만 날이 너무 어두워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향했다. 사람의 마음이 날씨를 반영하는 것인지 숙소로 향하는 길도 너무 한적했다. 북유럽의 뒷골목인건가.
다음 날 아침
간단히 웁살라 대성당과 웁살라 성을 돌아본 후 식물원으로 향했다. 식물의 분류체계를 정리한 식물학자 린네의 계획에 따라 재건된 이곳은 다양한 식물과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 유명하다. 양 옆 피라미드 모양으로 정돈된 잔디를 거닐며 아침의 화창한 햇살을 만끽했다.
이 식물원 앞 정원은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고르고 평평한 정원과 양옆으로 도열한 피라미드 모양의 잔디들, 뒤편의 복고풍 식물원 건물, 넓게 펼쳐진 하늘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축복의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잠시 몸을 녹이기 위해 식물원 안 온실에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선 북유럽의 겨울과는 대조적으로 밝은 햇살과 따스한 공기가 온실속의 열대식물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고 있었다. 웁살라 전역을 다녔지만 식물원 온실이 가장 밝고 따스했다. 스웨덴은 식물학, 기초과학, 의학, 약학으로도 유명한데, 웁살라, 스톡홀름을 거닐면 선진국일수록 기초과학과 같이 기본을 중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웁살라 식물원이다.
특이하게도 북유럽의 겨울 햇살은 아침 9시가 가장 밝다고 느껴진다. 오후 3시가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정오의 햇살은 겨울 빛을 띤다. 이른 오후 스톡홀름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여 바이킹의 전설이 잠들어있는 감라 웁살라로 바로 향하였다.
옛 바이킹 왕조의 정치적 중심이자 지금은 고분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감사웁살라.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고분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고분은 지휘체계에 따른 것인지 큰 고분 사이사이로 작은 고분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그 고분과 고분 사이를 걷는다. 날씨가 맑고 밝은 햇살이었다면 마치 텔레토비 동산을 연상시킬 수 있었겠지만 바이킹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 겨울 햇살이 비추인다.
여러 고분들, 북구 겨울의 오후 햇살, 잎이 모두 사라져버린 겨울나무들, 붉은 색의 스웨덴 전통가옥...그 모습 하나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수백년전 도끼와 망치를 휘두르던 바이킹의 영혼이 바람이 되어 나를 통과하는 듯하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고분들을 걷고 있으면 전지전능한 창을 들고 말을 타고 있는 오딘과 천둥을 부르는 망치 묠니르를 휘두르는 토르, 대지의 어머니 프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발할라에서 최후의 전쟁을 기다리는 바이킹 용사들이 당장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 같은 상상을 일으킨다. 한밤이 되면 신들을 상징하는 별들이 이곳 위를 반짝일 것이다. 어둠과 추위를 상징하는 이곳을 신들의 세상과 이어주는 무지개다리가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동쪽편 신들의 바다에선 바이킹선이 출정을 기다릴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그려본다. 인간과 신들의 전설이 연결된 이곳 감라 웁살라에서는 누구든지 이러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이 신비함을 오랫동안 느끼고 싶지만 아쉽게도 북유럽의 햇살은 더 이상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 신들의 땅을 벗어나야 한다.
정오가 지난지 불과 한두 시간 되었지만 해가 저물어가기에 간단히 고분 주변에 있는 스웨덴 전통의 빨간 집들과 무덤가를 돌아본 후 스톡홀름행 열차를 타기 위해 웁살라 시내로 돌아왔다. 오후 서너시가 넘었지만 웁살라 시내는 이미 캄캄해졌다. 예정된 숙소에 가기 위해 스톡홀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숲과 호수, 논과 전원의 검은 그림자가 펼쳐졌다.
‘스웨덴에만 수천수만의 호수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들은 바이킹의 찢어진 상처를 나타내주는 것인가.’
그리고 그 검은 신들의 그림자는 스톡홀름 시내에 들어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전설을 벗어나 도시로 현대로 가는 것이다. 북구의 신비하고 오묘한 감정과 겨울 햇살, 차디찬 바람이 전설과 함께 나에게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