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일 데어 슈타트에서 보낸 하루

고모집 뒷마당

by 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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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눈을 떴다. 시원한 통창으로 밝은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맡았던 아침 공기 중 가장 상쾌한 공기였다. 어제까지 런던에 있는 사촌형 집이었는데, 오늘은 독일에 있는 그의 어머니 집에서 눈을 떴다. 식사를 하기 전 간단히 빨래를 돌렸고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에 빨래를 노출시켰다.


독일 스투트가르트(Stuttgart) 외곽에 있는 바일 데어 슈타트(Weil Der Stadt)에서의 아침이다. 바일 데어 슈타트는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Kepler)의 고향이자 독일 남부 검은 숲(Schwarzwald)의 관문이다. 약 2만 명의 주민이 있는 이 작은 마을에 큰고모는 55년간 살아오셨다. 1960년대초 고모부가 스투트가르트대학 교수로 부임하시어 고모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곳 주민들은 동양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없어서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지나가면 으레 고모집을 가리키며 ‘저 곳에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살고 있다’고 종종 이야기했다고 한다. 55년이 지난 지금 고모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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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씻은 후 현관을 나가보니 누군가가 선물을 남겨놓고 갔다. 작은 바구니에 호두가 담겨져 있었고 둥그런 펌프킨 호박도 옆에 하나 놓여져 있었다. 건너편 집 핀란드인 이웃이 휴가간 사이에 고모가 집을 봐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고 간 것이다. 며칠 동안 집을 봐준 감사의 표시로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마을 인심이 후하긴 한 것 같다. 고모와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런던에 사는 사촌형에게 짐을 붙이기 위해 바일 데어 슈타트 시내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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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기 전 독일은 작은 영주들에 의해서 다스려졌다는 역사를 실감하듯 바일 데어 슈타트 또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는 시내에 있는 우체국에 가기 위해 해자와 성곽을 통과하였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1300~1400년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고 딱 내가 보고 싶었던 독일의 작은 마을, 작은 성곽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도 잠시, 아이러니하게도 성곽 내부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되었고 우체국 내부는 현대 여느 우체국과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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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으로 짐을 모두 붙인 후 바일 데어 슈타트 중앙 광장에 나가보았다. 이제 유럽 중세 소도시에 대한 고모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먼저, 도시의 중심에 시장이 서는 광장이 있다. (독일어 : Marktplatz, 영어 : Marketplace) 이 광장은 주말 및 주중 마켓이 서며 물론, 크리스마스 시기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는 도시의 중심이 되는 시장이다. 둘째, 그 광장 앞에는 반드시 시청사가 있다. (독어 : Rathaus, 덴마크어 : Rådhus) 시청사는 가로나 세로면의 중앙에 자리잡아 시청 앞 광장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시청사와 가로 또는 세로의 반대편에 분수대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뒤에서 관망하듯이 시청사의 뒷면이나 주변에는 성당이 있다. 전형적인 유럽 중세 소도시의 모습이다. 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제껏 돌아본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유럽 “소도시”의 중심가는 모두 이런 구조로 되어있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DSC06692.JPG 시청사 앞 광장. 시청사와 광장, 분수대가 있고 뒤편에 높게 지어진 교회가 있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으로 들어와 앞으로 계획된 여행 동선을 짜고 기차표와 숙소를 미리 예매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고모가 오셔서 저녁을 먹기 전 집 뒤쪽 마당에 산책을 가자고 하셨고 나는 고모의 특이한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갑자기 왜 나오자고 하셨지?’


낯선 독일 시골마을에서 고모를 따라가며 마주치는 집들의 마당에는 사과나무와 호두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마당이라고는 표현하지만 딱히 경계가 있진 않았다. 그리고 집들을 너머 오솔길을 지나자 소 목장이 나왔고 그 뒤로 PC배경화면으로 나올만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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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으로 끊임없이 펼쳐진 언덕이 있었고 이곳이 검은 숲으로 가는 관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뒤로 멀리 독일 동화에서 나올만한 검은 숲이 펼쳐졌다. 초원에는 소를 방목하여 기르고 있었고 언덕 위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는 닭을 사육하고 있었다. 고모가 닭장에 다가서자 고모가 뭐라도 주는 줄 알고 닭들이 고모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닭장을 지켜야할 개도 고모를 반겨주었다.


‘어머. 얘~ 너 검은 숲에서 여우라도 나타나면 내쫓을 수 있겠니?’


덩치는 컸지만 너무 착하게 생겼고 닭들도 개가 무섭지 않은지 함께 고모 앞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그 모습이 동물들도 이지역의 터줏대감을 알현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주인에게 폐를 끼칠까봐 그 자리를 벗어나 사과나무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예전에는 떨어진 것은 다른 사람들이 주워가도 주인들이 허용해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떨어진 것도 주워가면 안된다고 한다. 이곳도 이제 외부인들이 많이 모여들어서인지 인심이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은 한쪽에 사과가 담긴 박스들이 놓아져 있었고 알아서 일정금액을 내고 가라는 수금박스도 옆에 함께 있었다. 시골이어서 그런지 무인판매를 원칙으로 서로 믿는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제껏 느낀 바로는 순수 독일 사람들은 정직하고 원칙을 중요시 여긴다. 그들은 분명히 사과 가격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려놓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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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서서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이 초원은 보기만해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벤츠와 포르쉐의 도시 스투트가르트에서 기차로 30분만 벗어난 바일 데어 슈타트에 이러한 초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30분밖 도시에선 치열한 삶이 순환되고 있다. 반면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밤이 되면 이 언덕 앞에서부터 머리 뒤편 끝까지 별들이 쏟아질 것이다. 약 450년전 청년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 언덕 위에서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사람이 되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나온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호두나무들과 마주쳤고 고모께서는 호두를 줍기 시작했다. 나도 옆에서 따라 주웠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사과는 무인판매로 바뀌어서 주워가면 안되지만 호두는 아직도 가능하다고. 고모의 외투와 내 외투 양쪽 주머니에 차곡차곡 담다보니 한가득이 되었다. 집에 도착하여 주머니의 호두를 큰 용기에 담으니 제법 보기좋게 가득 찼다. 익숙한 솜씨로 고모가 호두까는 장비를 꺼내 보여주셨다. 서울에서만 자란 나로서는 이러한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과연 우리가 직접 가져온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의문도 들었지만 실제로 먹으니 사먹는 호두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맛있었다. 독일까지 와서 시골에서 호두를 주워 직접 까먹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맛까지 있다니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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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원, 검은 숲, 무인판매 사과박스, 누구나 주워가도 되는 떨어진 호두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소망해본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화려한 도시도,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소박하지만 힐링이 되는 이름 모를 언덕이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