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행열차에서 내리자 반듯하게 보이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Berlin Hauptbahnhof”
여러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지금 유럽에서 가장 힙하다는 도시 베를린에 드디어 도착했다. 호스텔에 간단히 짐을 풀고 나왔다.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도 흐리다. 흐린 날씨가 차가운 공기와 만났다. 그런데,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 참 비정하다.’
찬 공기에 흐린 날씨. 동서냉전의 현장이었던 베를린과 잘 어울린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총알과 포탄자국, 전쟁으로 무너진 벽면들은 힙스터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했고 밀리터리 패션, 그래피티 등과 더불어 베를린 특유의 개성 넘치는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것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한다. 내가 기대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까지 질서와 균형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이 개성있는 도시를 찾은 것이다. 과연 베를린 거리 곳곳 벽면에는 총알과 포탄자국이 있었다. 또, 개성있는 그래피티들도 눈에 들어왔다. 걷다가 종종 마주치는 곰 조각상들도 재미있었다. 과거 서독과 동독의 판문점, 베를린 장벽,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군복을 패셔너블하게 입은 사람들... 베를린은 개성있는 도시가 확실했다.
그렇게 걷다가 마주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 이곳은 모든 것이 각이 져 있었다. 갑자기 여행 시작 전 회사 관계자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정인기 과장은 딱 독일 스타일이야. 독일의 어느 역에 가보았는데 간판이 네모 반듯하게 각이져 있더라고... 딱 정인기 과장과 어울리는 것 같아.”
독일인들이 과거의 잘못을 되새기고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메모리얼을 걸으며 네모반듯한 독일과 마주하게 되었다. 다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동일하게 흐린 날씨, 포탄에 맞은 벽면, 그래피티가 눈앞에 들어왔다. 하지만 갑자기 나에게 수평과 수직의 선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보이는 각진 아파트들, 동일한 패턴들의 창문들. 카이저 빌헬름교회(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전승기념탑(Siegessäule) 꼭대기에서 본 다섯 갈래로 쭉 뻗은 도로도,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에서 본 아파트들도, 신뮤지엄(Neues Museum) 계단도, 다리 밑의 모습도, 길거리의 아파트들, 심지어는 지하철까지 모두 수평과 수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개성 있다는 베를린은 사라지고 각지고 질서와 정렬로 이루어진 베를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삶의 질서가 있다. 특히 나의 아버지는 더욱 그러하셨다. 아버지는 아침 5시에 일어나셔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보를 나가시고 6시에 식사를, 7시에 회사로 출근을 하셨다. 퇴근을 하시면 기자이셨기에 5시에 뉴스, 6시에 식사, 그 후 7, 8, 9시 뉴스를 모두 챙겨보시고 바로 침대로 들어가셨다.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같으셨다.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퇴직을 하신 다음에도 똑같았다. 화, 목, 토요일은 병원에서 혈액투석을 받으시느라 반나절을 보내셨고, 투석을 하지 않는 월, 수, 금, 일요일은 운동과 사우나를 가셔서 6시간을 채우고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투석과 사우나로 빼는 무게는 1.5kg~2.0kg으로 매일 거의 비슷했다. 나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근 전 준비 시간부터 출근 그리고 회사업무, 퇴근 후의 활동까지 비슷한 시간과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왔다. 나는 물건을 매번 동일한 위치에 놓는다. 회식을 하고 들어온 날도 집에 들어오면 가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제 위치에 놓는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했지만 제자리에 놓는 것이 나중에 찾기에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와 열이 맞으면 정신건강에도 좋았다. 이러한 정리습관들은 내가 회사에서 기본교육팀 입문교육을 오래 맡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자 시작한 여행. 나는 지금 유럽에서 가장 힙하다는 도시, 그래피티와 뒤죽박죽 문화가 난무하는 베를린의 각진 건물들에서 질서와 패턴에 익숙한 아버지와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안정감을 얻기 시작했다. “독일은 각이 지고 깔끔하기 때문에 한국 직장인 남성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특히 군대에서 각잡기를 한 한국 남자들에겐 더욱 그러했다. 베를린의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둘러본 후 밤이 되어 피곤하여 호스텔에 들어와 잠을 잤다.
밤이라고 하기엔 많이 늦고 새벽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 옆 침대의 호주인 친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2박 3일간 쉬지 않고 운영된다는 클럽에 다녀왔다고 자랑을 했다. 보통 베를린에 올 때 기대하는 자유, 해방을 누리고 들어온 것이다. 낮에 보았던 장벽과 포탄, 그래피티, 힙스터들과 밀리터리 패션들, 개성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베를린은 확실히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반면 나는 자유를 찾아온 개성적인 이곳에서도 규칙과 계획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8시 기상 및 샤워, 9시 식사후 하루 여행시작.....
아침이 되어 다시 나왔다. 베를린 붉은 시청사(Rotes Rathaus)와 마주하게 되었다. 절도 있으면서도 간결해 보이는 모습, 늠름해 보이기까지 하는 붉은 시청사 앞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앞에서 자유를 갈망했지만 규칙, 질서, 형식에서 안정을 느끼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베를린은 각이 졌지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 예전의 정리된 버릇을 떨쳐버리고 나 또한 개성있는 모습에 합류하려고 이 도시를 찾았지만 그것이 잘 안 되었고 섞일 수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회사를 그만두었음에도 반드시 지킬 것을 만들어서 그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 자유를 꿈꾸는 여행에서도 그 규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과연 자유는 규칙에서 벗어남인가? 아니면 질서와 정렬 속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일까? 아직도 헷갈리는 것이 많고 베를린은 두 가지 얼굴로 나를 갈등하게 만든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각이 진 건물들과 골목, 그리고 차가운 공기와 비는 비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회사를 들어간 후 아버지와의 대화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 시절에 사촌동생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마찬가지라고. 일하고 온 후 아버지와 마주치면 아버지는 여전히 뉴스를 보고 계셨다. 말은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냉정한 침묵 속에 서로를 향한 대견함과 존경이 있었던 것 같다.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한 눈빛. 서로 쳐다보며 느낌만 알 뿐이다.
직선이 비를 맞자 더욱 직선처럼 느껴진다. 수평과 수직 속에서 냉정한 이 거리를 걷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릴 적 나를 안고 걷던 아버지의 각이진 강한 어깨였다. 차가워 보였지만 그것에서 느껴지는 든든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각이진 강한 어깨는 이제 나의 몫이 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이자 개성있는 도시 베를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이 지면서도 간결한 질서가 있는 베를린. 지금은 자유와 개성이 넘치지만 예전엔 억압과 냉전의 상처가 있었던 베를린. 이 상반된 얼굴을 하고 있는 차가운 베를린의 거리를 홀로 걸으며 결국 내가 찾은 것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 자유가 아니었다. 간결함과 질서정연함 속에서 오는 안정감. 내가 느낀 것은 수평과 수직에서 오는 아버지의 강한 어깨였다. 아버지의 향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