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가을밤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다. 월 스트리트,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있는 로어 맨해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지구이다. 낮에는 정장에 넥타이를 맨 애널리스트들이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가며 촌각을 다투지만 밤이 되면 그 바쁜 상황이 정리되고 사람들도 빠져나간다. 몇 년 전에도 저녁에 이 거리를 걸었다. 그때에도 이러한 한적함을 즐겼던 것 같다. 사람에겐 가끔씩 이렇게 한산한 거리를 걷는 것이 필요하다. 캄캄한 밤하늘, 높은 빌딩 숲, 뒷골목은 나의 맘을 더욱 어둡게 했다. 골목에 사람이 없다. 차가운 금융가의 뒷골목을 홀로 걸으니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90년대 초 중학생시절이었을 것이다. 추석연휴에 아버지와 함께 시내에 나간 적이 있었다. 모두들 고향에 내려갔기에 텅빈 시내. 지금은 서울에 남아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 때는 설이나 추석이 되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고향으로 향하였고 서울은 전쟁전야의 도시처럼 조용했었다. 아버지와 시내의 한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틀 전만 해도 이곳은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텐데 지금은 텅빈 도시가 되었다.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는 성적에 개의치 않으셨다. 산, 교외에 나가실 때면 시험과는 상관없이 언제든지 데리고 다니셨다. 그날도 독점하듯 서울의 텅빈 거리를 아버지와 아들 둘이 여유롭게 다녔다. 태평로 아버지 회사 앞, 시청 앞, 덕수궁 돌담길, 시내의 뒷골목... 특히 한산한 시내 골목골목에선 차가운 도시의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이후 나에게는 재미있는 버릇이 생겼다. 설이나 추석연휴에 텅빈 시내 걷기. 이러한 버릇은 회사를 다닐 때도 이어졌고 대부분의 회사생활을 수원에서 했기 때문에 연휴 때 텅빈 서울 구경은 나에겐 여유롭게 즐기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후에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종로의 어느 카페에서 창밖으로 청계천을 바라보는 커피한잔의 여유는 내 나름 연휴의 루틴한 습관처럼 되었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인가 연휴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전쟁전야의 한적한 분위기는 카페에서 그들과의 자리다툼 전쟁이 되어버렸다. 이제 시내를 걸으며 그 시절의 추억을 여유롭게 즐기긴 힘들게 되었다.
지금 미드타운(Midtown)은 한밤의 타임스퀘어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겠지? 불과 걸어서 30분 거리, 지금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지금과는 대조적인 상황을 비교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 속에 세계금융의 중심이자 밤이면 암흑으로 변하는 로어 맨해튼의 한적함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한적한 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니 다시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내가 집과는 지구반대편에 있는 로어 맨해튼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 것을 예상하셨을까? 그에게 나는 괜찮은 아들이었을까? 사회적으로는 성공하셨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여행하면 되지.’라는 말씀과는 대조적으로 노년에 지병으로 고생하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회사를 그만둔 후 일 년이 넘는 여행에서도 경치가 좋고 한적한 곳에서 풍경을 즐길 때면 지금 나의 기쁨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앞 바다에서도, 노르웨이의 600미터가 넘는 절벽에서도, 스웨덴 북극권 너머 라플란드에서도, 웁살라 대성당에서 고대 왕가의 무덤 앞에서도 한적함과 마주하게 될 때면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항상 엄하셨지만 선하셨던 그분. 표현이 조금 서투셨던 것뿐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조금의 호의 속에 회사 선후배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자기 삶을 헌신하셨기에 나에게서 감사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으셨어야 되실 분이 그 말을 가장 못 들으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남는다.
이러한 미안한 감정들이 여러 번 떠오르기도 했지만 반복된 생각이 점점 익숙해짐에 따라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더욱 행복한 삶으로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보답해 드리자는 것으로 합리화하였다. 아니, 이러한 합리화로 잠시나마 편안해지길 더 바라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타임스퀘어였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자 인구밀도도 높은 곳이었기에 한밤에도 불야성인 곳이지만 한밤중 로어 맨해튼은 한산했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적막한 이 길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 기분이 좋았다.
걷다보니 미국에서 가장 높다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마주하게 되었다. 낮에는 전망대 입장료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 앞까지 줄을 서고 기다렸는데, 지금은 이곳도 한적하다. 하지만 거리의 한적함과는 다르게 한밤중임에도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로 인한 야근의 불인지 아니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상징하는 조명인지는 모르지만 어두컴컴한 로어 맨해튼에서 나의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오큘러스 안으로 들어왔다.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환승터미널. 날아가는 새의 모양을 상징하는 오큘러스는 9/11의 현장이었던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져 로어 맨해튼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어주고 있었다. 희생의 상징이었지만 그들을 기리는 축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맨해튼을 오가며 낮에는 자주 지났지만 밤에는 와본 적이 없기에 어두움을 쫓는 빛을 발하는 오큘러스의 모습이 조금 신비하게 느껴졌다. 낮보다 사람도 적었기에 조금은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런 아늑한 여유를 즐기길 바랐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신속히 지하철에 탔다.
뉴욕의 지하철 E라인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역이 종점이자 시작점이기에 지하철 안에는 몇몇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미드타운을 지나자 지하철은 만원이 되었다. 타임스퀘어의 밤을 한창 즐기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 모습은 어제의 내 모습이기도 했고 내일의 내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20여분을 더 달려 집으로 도착하였지만 못내 아쉬워 내가 걸은 그 방향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바라보았다. 뉴욕을 수차례 왔지만 보통 낮에 사진을 촬영하고자 나가거나 사람이 많은 미드타운을 돌아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한산한 금융가의 거리를 밤에 걸었던 적은 없었다. 너무 소소했고 짧았지만 조금은 특별했던 그날 밤 그거리가 지금도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행 중 문득문득 떠오르는 소중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더욱 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이 밤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