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리고 그곳에서의 만남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줄 수 있을까? 여기 내 삶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준 여행에서의 만남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유럽여행에서 나는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베를린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베를린 여행 4일차에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하여 한국인 대학생 청년 두 사람을 만나 동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J와 W. 한사람은 대학교 4학년에 휴학을 한 상태였고 다른 한사람은 2학년에 독일로 교환학생을 온 것이었다. 셋 모두 서로 초면이었다.
우리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에서 만나 간단히 교회를 돌아본 후 티어가르텐(Tiergarten)을 거쳐 전승기념탑(Berliner Siegessäule)으로 향하였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여행 초기였기에 유럽의 오래된 유산들이 신기했고 하나라도 빠짐없이 배우고 담아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베를린의 문화유적에 관하여 미리 공부를 했었고 카이저 빌헬름 교회와 걸으면서 마주치는 곳곳의 문화유산들을 보며 내가 미리 익힌 조금의 지식들을 그 친구들과 공유했다. 한참을 걷자 도중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고 넓게 뻗은 티어가르텐 공원길의 숲 내음과 촉촉한 빗방울이 우리의 가슴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공기가 너무 맑아 누구도 도중에 택시를 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 순간을 함께 즐겼던 것 같다.
사실 그동안 회사업무로만 하루하루를 보내었기에 주변의 상황에 기쁘거나 슬프거나 크게 동요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좋은 기분, 상쾌한 기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이 더욱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렇기에 누구도 비가 옴에도 택시를 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걸었던 것이겠지.’ 그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걷다보니 전승기념탑 앞에 도착했다. 한걸음 한걸음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 전승기념탑 정상에 이르니 장관이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숲으로 구성된 티어가르텐, 그 공원을 관통하는 다섯 갈래의 길, 길 뒤편으로 보이는 베를린의 시내의 모습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날씨가 흐렸고 비가 내렸기에 조금은 차갑고 비정하게 느껴졌지만 그 모습이 과거 동서냉전의 상징 중 하나였던 베를린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비가 내려 공기가 맑았고 그 공기는 티어가르텐의 숲들과 만나 전승기념탑 정상에 있는 우리에게 상쾌한 자연의 내음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여행이었고 한 사람은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해야하고 다른 한사람은 교환학생이후 다음 스텝을 생각해야 한다. 전승기념탑 정상에서 마주하게 된 다섯 갈래로 뻗은 티어가르텐 사잇길. 우리 삶의 방향은 어느 갈래로 가게 될까? 우리가 정한 길은 직선으로 뻗은 이 다섯 갈래의 길만큼 통쾌하게 정주행할 수 있을까? 처해있는 환경과 방향은 달랐지만 아마 우리 셋은 그 길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정상에서 내려와 길고긴 숲길을 지나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에 다다랐다. 만난지 불과 몇 시간도 안되었지만 우리는 이야기도 잘 통하고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간단히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이들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로 안내했다. 사실, 브란덴부르크 문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베를린에 온 첫날 모두 돌아본 곳이지만 내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베를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하여 이들을 데리고 다시 가기로 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그곳에 가본 적이 없기에 유쾌한 마음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다다르자 이곳은 내가 3일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사죄의 공간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겉에는 내 무릎정도 높이인 네모난 비석들은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높아졌고 가장 높은 곳은 3,4미터는 되어보였다. 3일전 맑은 날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쉼터이자 숨바꼭질 장소였는데, 지금 비가 오는 날 그 모습은 조금은 무게감이 있었고 엄숙해 보였다. 누군가가 메모리얼 한쪽 편 위에 장미를 올려놓으니 그 느낌이 배가되었다. 메모리얼에 내린 비는 그 모습 그대로 직선으로 흘러내리니 누군가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티어가르텐을 걸으며 상쾌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이 비는 이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우리 마음속에 엄숙함을 느끼게 해주는 비가 되고 있었다.
잠시 서로의 사진을 남긴 후 우린 배가 고파 근처인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앞으로의 여행뿐만 아니라 취업과 진로에 관하여, 그리고 대기업에서의 직무와 여러 경험에 대하여 물어보았고 나는 회사에서의 업무 중 입문교육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그 대화가 길었기에 저녁이 늦어져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고 다음날 각자가 다음 여행지를 향하여 헤어지게 되었다. 유럽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헤어졌던 사람과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반나절 정도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연락을 지속하여 J와는 뮌헨에서, W와는 스투트가르트에서 다시 만나 여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베를린에서 상쾌하게 보냈던 그 추억을 생각하며 종종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모임에서 J와 W는 취업을 위한 팁이나 정보, 회사 조직 생활에 대한 크고 작은 것들을 물어보았고 그것에 나는 흔쾌히 답을 주었다. 그러던 중 J가 한 글쓰기 앱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동안 여행에서의 경험과 느낀 것들, 회사경험, 내가 회사에서 배운 취업과 진로에 관한 정보와 지식들을 인터넷에 올리게 되었다. 또, J와 W를 만나면서 그들이 궁금해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답을 주면서 그것을 정리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업로드하였다. 얼마후 청년 진로/취업 멘토링 회사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고 나는 직장에서 주업무였던 교육 업무와 영업에서의 경험을 살려 청년들에게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베를린에서 식사를 하면서 나누었던 물음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서로 나눈 고민들에 대해 정리한 것들이 지금 내가 청년 멘토링을 하는 컨텐츠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가이셨던 할아버지, 기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글을 쓰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나는 여행초기에 내가 글을 쓰리라 강의를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노력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계획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답이 찾아올 때도 있는 것 같다.
여행초기에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던 학창시절, 직장인으로서의 시기를 벗어나 선진문화를 최대한 흡수하고자 지식을 습득하고 많은 곳을 다니기 위해 주로 홀로 여행을 했었다. 하지만 내 삶의 변화를 준 그 때 그 만남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제는 지식만큼이나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날 날씨도 흐렸고 아직 전쟁의 잔재가 남아있기에 베를린은 정말 비정해 보였지만 우리 셋의 만남은 상쾌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잠시 습득과 발전을 내려놓고 함께 공유하며 이야기했을 때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함께 걸었던 이 길에서 더 놀라운 답을 찾은 것 같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잠시 쉼을 얻고자 시작한 여행. 그 여행은 나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였다. 내가 언제까지 강의를 하고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나마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글이나 말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한다. 그리고, 나의 동생들인 J와 W. 이들이 나의 삶을 일깨워주었던 것보다 더 큰 도움으로 언젠가 이들에게 갚아줄 수 있는 날이 오길 조심스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