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스타디움에 핀 꽃

by 정인기

“죽어라 이놈아. 아아아. 남의 녀석들은 다 잘 하는 데, 우리 팀 애들은 도대체 왜 이런거야?”


저렇게 완전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 집 TV 채널은 세 가지로 고정되었다. 아니. 시즌에 따라서 달랐지만 기자 출신이셨던 아버지셨기에 퇴근하시면 5시 뉴스, 7시 뉴스, 8시 뉴스, 9시 뉴스를 차례로 보셨다. 자연히 우리 가족에게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그리고 CSI. CSI는 반복해서 보셨기에 가족 모두가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의 범인도, 범행동기도, 줄거리도 이미 모두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을 함께 공유하며 본다. 그런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하는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프로야구였다. 매일같이 야구를 보면서 시즌 중 우리가족의 대화 주제는 야구가 되었다.


아버지는 주말이면 매주 등산을 다니셨다. 등산을 하면 산을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하기 때문에 회사일,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고. 그런 그분이 후에 몸이 편찮아지셔서 등산을 하실 수 없으시게 되자 그분께는 야구만이 유일한 낙이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투수의 한 구 한 구 속에 감독들의 두뇌싸움, 수 싸움, 데이터 싸움, 작전이 걸려있기에 가장 재미는 스포츠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평소 완전한 감정이입으로 야구를 보셨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으면 했지만 최근 구단은 투자를 거의 멈추었고 팀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시작한 여행. 나는 행복을 찾아 북유럽을 돌고, 제조업이 발달한 독일, 유럽을 돌고 돌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 우연히 찾아오게 된 엔젤스타디움. 그곳에 아버지의 자리를 하나 잡아드렸다. 매일같이 야구를 달고 사셨지만 야구의 본고장에서 보신적은 없으시기에 너무 늦었지만 더 후회하지 않게 자리를 잡아드렸다. 조금은 억지 같지만 ‘자기 안도감’은 스스로 실천하는 자의 것. 이제까지 눈치 보며 살았으니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곳에서 이 정도 자기 위로는 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엔젤스타디움에 홈런이 나왔다. 불꽃이 터지고 환호성이 흘렀다.


‘기쁘게 보고 있으시겠지?“


개인적인 신앙과 절제력을 위하여 서른이 되기 전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내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함께 야구장 캔미팅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고 한스러웠다. 나 자신의 신념도 중요하지만 함께 할 수 있을 때 조금 더 맞혀드릴걸. 시간은 한정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체 살아오다 이제야 과거 나의 선택에 후회하고 있다. 너무 늦은 것이다.


하지만 엔젤스타디움에 앉아있는 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을 변함없이 웃고 있으시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하셨던 것처럼. 나의 모든 후회도 모두 포용하고 계신 것처럼. 마치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 특유의 어색함은 있으시지만 흐뭇하게 웃고 계신다. 엔젤스타디움에 꽃이 피었다. 아버지의 절제된 웃음 꽃. 내 개인적으로 꽃은 완전히 개화되기 바로 전 상태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따뜻한 감성이 캘리포니아의 온풍과 함께 내 마음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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