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꽃을 바라보며,

by 정인기

몇 년전쯤 아버지와 함께 TV로 야구경기를 볼 때의 일이다. TV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한민국 대표 선수가 헛스윙으로 아웃을 당하고 쓸쓸하게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늙으면 빨리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물러나야지….”하시면서, “늙는다는 게 정말 초라해지는 거지.”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면 나는 갑자기 10년전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시 생각났었다. 일곱 자녀를 돌보며 한국전쟁때 피난 내려오셔서 자녀들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셨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5년전부터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침대에서 하루종일 누워계셨었다. 95세라는 연세이기에 눈도 불편하시고, 거동도 불편하셔서 방에 하루종일 누워계셨던 할머니의 소망은 천국가실 날을 기다리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장손이었던 나를 일평생 끔찍히도 아껴주셨기에 마지막을 우리집에서 보내셨던 할머니께 가능한 자주 인사드리고 누워계신 할머니께 하루하루의 일들을 이야기해 드렸지만, 하루하루 꼬박꼬박 침대 위에서 같은 나날을 보내셨던 할머니에게 앞으로의 미래와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면 왠지 늙어가는 외로움이 더욱 배가 되실 것 같아서 차마 오랫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증명사진1.JPG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8,90년대 대한민국 사회를 주름잡았던 유명하셨던 분들이 많이 찾아 오셨었다.

그 분들 중 우리가 제법 알만한 분이 빈소에 찾아오셔서...


“이…이렇게 가실 수가 있는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면 어쩌나……” 라고 하시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타까워하셨다. 아버지는 8,90년대 대한민국 사회의 한 부분을 주름잡으셨던 분이셨지만 투석을 하시던 마지막 17년 동안 수술 실패로 우울하셨던 모습, 고관절 약화로 지팡이를 짚으시고 한걸음 한걸음 어렵게 걸르셨던 모습, 밤에 침상에서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하셨던 모습들을 오랫동안 보았기에 내가 신문에서 또는, 아버지 후배들에게 듣던 ‘그분의 전설’을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대기업 과장으로서의 삶을 벗어나 잠시 내 삶에 휴식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첫째 누나의 둘째 자녀 출산과 육아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에 잠시 방문하였다.


방문일 중 하루,

누나의 첫 자녀인 E가 아파트 안으로 뛰어들어 가면서 어머니도 따라 들어가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E는 어머니의 유일한 낙이 되었고, 4살배기 꼬마는 어머니에게 굉장한 긍정의 에너지를 주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삶의 무게 중심축은 우리 3남매에서 손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젊었을 적, 한 미모하셨던 어머니도 이제 본인의 가치보다는 ‘자녀를 넘어서 손자, 손녀’를 중심으로 살아가시고 계신 모습이 헌신적으로 보이신다.


“늙는다는 것은 초라해지는 거야.”


어릴 적, 미인으로 보였던 어머니가 이제 저물어가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도 자신의 젊었을 적, 아버지를 만났을 적, 나를 낳으셨을 적을 많이 회상하셨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추억들을 되새기고 계시겠지…… 그 회상 속에는 약간 많은 외로움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겪어야 할 외로움이겠지만?!


옛날 가족사진.JPG
신혼여행.JPG


자식들을 위해 젊음을 희생하신 부모님…….

자식을 위해 살다가 보니 어느 순간엔가 자신의 젊음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 동안 너무 어색해서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우리를 위해서 젊음을 헌신하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 글을 통해서 이제서야 말씀드린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당신들의 헌신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오늘도 조카 E가 “나 천수 할아버지 보고 싶어. 천수 할아버지가 나보고 ‘임마~’ 하셨어.”라고 하며 할아버지라고 그림을 그린다. 물론, 동그라미는 머리, 짝대기 5개는 몸통과 팔, 다리이지만 그 모습에 우리모두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천수할아버지 어디계셔?”라는 물음 속에 모두들 E를 비웃으며 “천국에 계셔”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크게 울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생을 헌신하면서 초라해 지시는 부모님들을 생각하며……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젊었을 적에 비해서 초라해지고, 외로워지는 모습에 대해서 공감해 주는 것을 생각해 보고 싶다. 언젠간 우리도 겪을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