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산책 마우나 케아

by 정인기

육중하게 흔들리는 차 속에서 잠시 졸았다. 조수석은 은근히 잠이 잘 오는 것 같다. 하와이에서 가장 높은 산, 마우나 케아(Mauna Kea)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정된 업체의 지정된 차량만 출입이 허가되었기에 우리는 이 육중한 차를 렌트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온 가족이 시작한 가족여행. 우리는 지금 신성한 산이라고 불리우는 마우나 케아(Mauna Kea)를 오르고 있다.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바라보니 바퀴 아래로 구름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길 잘 했어.’


해수면 위로 4,207m(해저부터 10,100m) 높이의 산이기에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겨울 날씨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곳에 오르기 위해 한여름인 저 아래 하와이 코나에서 두꺼운 코트와 부츠를 입고 출발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럽게 여겨졌지만 산을 오르면서 추워지는 날씨에 그러한 창피함은 모두 잊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하와이 빅아일랜드에는 북극, 사막 이외의 대부분의 기후가 존재한다고… 지금 우리는 한여름의 날씨와 한겨울의 날씨를 불과 몇 분내에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마우나 케아 정상이 고지대이기 때문에 모든 출입자는 산중턱의 휴게소에서 잠깐 멈추어 정상 호흡여부 등 건강을 확인 후 다시 오를 수 있다. 휴게소에서 마우나 케아 관련 비디오와 안내를 받은 후 기념품 가게를 둘러본 순간 신기한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김치 사발면이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섬,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산에 김치 사발면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자랑스러운 건가?

슬슬 저녁이 되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시 차량에 탑승하여 산을 올랐다. 저녁이 되어가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신기했다. 붉은 사막과 같은 풍경. 마치 화성에라도 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고, 곳곳에 작은 분화구와 같은 모양의 언덕이 보였다. 추운 날씨와 바람, 하지만 붉은 토양은 상당한 대조를 이루었다.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태평양 한 가운데 동떨어져 있어 공기가 맑고 지형이 높고 기후가 건조하여 천문단지가 있기에 최적의 요건이기에 세계 최대의 천문단지가 있다는 마우나 케아의 정상에 도착했다. 광활한 붉은 색 사막, 곳곳의 천문 망원경들, 그리고, 발 아래 펼쳐진 구름 바다… 정상에서 본 풍경은 우리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떠오른 아버지 생각.


아버지는 정말 산을 좋아하셨다. 산에 오르시면 회사일, 스트레스를 모두 잊을 수 있다고 매주마다 등산을 하셨었다. 이 광경을 함께 보고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잊기 위해 시작한 가족여행. 여행의 마지막, 나는 태평양 한 가운데 섬에 있는 산 위에서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다. 과연, 아버지를 잊으려고 여행을 시작한 걸까? 아니면 기억하려고 시작한 걸까? 눈앞에서 지고 있는 해처럼 손가락으로 잡을 듯 잡을 듯 잡히지 않는 마음. 그 때는 왜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했다고...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고 보안요원이 우리를 내려가는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차를 타고 다시 내려가고 있다. 올라올 때까지 붉게 보였던 산과 파란 하늘이 이제 검은 산, 검은 하늘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검은 산을 넘으면 다시 여름으로 돌아간다. 검은 산 위로 보이는 하얗고 뚜렷한 달. 그 달이 우리의 하행길을 지켜주고 있다. 안심하라는 얘기인가?

다시 휴게소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여 별을 보고 있었다. 우리도 눈앞에서 머리 뒤까지 펼쳐진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고 있었다. 저 별들 중에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모양도 있겠지? 아니, 저 하늘 너머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이제 밤이 되고 날이 많이 추워져 차 안에 들어와 하와이에서 만난 선교사님들이 싸주신 라면과 스팸 주먹밥을 먹었다. 나라면 이런 것들을 싸주었을까? 감사하면서도 정 없는 내 가슴 속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신기한 풍경,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 귀중한 만남들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 모든 경험과 생각, 관계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 줄 것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그리고 그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