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카고는 아직도 너무나 추웠다. 시카고에선 그저 6, 7, 8월의 햇살만 바라보고 살아간다고 했던 유학생의 말처럼 5월 중순이지만 너무나 추웠던 시카고 날씨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감기 몸살에 걸리셨고, 우리는 총 4일의 일정 중 이틀 이상을 숙소에서 보냈어야 했다. 높은 마천루로 밤에도 밝아 환해 보이고, 빌딩 숲이 바람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와는 대조적으로 시카고는 너무나도 추웠다.
그리고 셋 째날 아침이 밝자 그 동안의 시간이 아까우셨는지 어머니는 침대를 박차고 나오셨다. 시카고는 어머니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어머니의 대학시절 단짝 친구와 60여년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데려다 주신 외삼촌이 시카고에 살고 있으시다. 그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간병으로 자기 삶이 없으셨던 어머니가 이제서야 시카고에 방문한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 시카고는 추위와 감기로 첫인사를 해주었다.
리글리 빌딩(Wrigley Building)과 윌리스 타워(Willis Tower),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
잠시 친구분, 외삼촌과 재회의 시간을 가지신 후, 어머니는 시카고 시내를 돌아보자 하셨다. 드디어 시카고에서 어머니의 첫 외출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쉬셨던 시간이 아까우셨는지 어머니는 부지런히 구경하셨다.
뉴욕은 사람들과 차가 너무 많아 시끄럽고, 분주하며 오래되고 낡은 느낌으로 많이 더러웠지만 시카고는 정리가 잘 되어있어 깨끗하고 번잡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LA, 하와이로 여행 후 어머니께선 시카고가 가장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평생 인자하고 진실되게 살아오셨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와주셨으며, 항상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나중에 모두 너희에게 돌아오게 되어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점점 줄어드는 집안 곳간을 바라보며 이번 겨울 어머니가 그 동안 후원하셨던 수많은 복지원들의 전화를 차단하는 것은 나의 강제적인 몫이 되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이미 너무 과하게 사람들을 도와주셨다. 항상 베풀어 주시는 어머니 덕분에 우리 남매의 친구들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나를 부러워한다.
그러한 어머니! 지난 30년간을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친할머니, 아버지의 병간호로 자신의 삶이 없으셨던 어머니께서 지금 미국을 걷고 있다. 반평생을 헌신으로 살아오신 그 어머니가 시카고를 걷고 있는 모습에 나와 우리 모든 가족은 감동하고 놀랍게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는 70세가 넘으셨지만 신세대이시다. 가끔씩 늦은 밤 퇴근길에 전화를 주셔서 돌아가는 길에 햄버거를 부탁하셨었다. 밤 10시가 다되어가는 데….
그리고 나와 함께 햄버거와 후렌치 후라이를 드시면 내가 이야기 한다.
“이게 몸에 그렇게 안 좋대~”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대답하신다.
“그렇다네~”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그런 어머니가 걷고 또, 걸으신다. 오르고 또, 오르신다. 땀을 흘리며 지난 30년간의 헌신과 어제의 감기를 뒤로하고 걸으신다. 미국에 사시는 친가, 외가 친척 모두들 어머니가 미국에 오신 것을 너무나도 감동스럽게 바라보시며 어머니의 발걸음을 응원하신다. 그리고, 어머니가 걸으시는 이 길 위에선 나비조차도 어머니를 호위한다.
'사람은 참으로 인자하고 덕을 많이 쌓고 살아야 하는 구나.'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이렇게 오르시는 이 길의 끝에서 어머니께는 치유와 회복이 있을 것이다.
우린 다시 방향을 바꾸어 애들러 천문대(Adler Planetarium) 앞의 호숫가를 걸었다. 미시간 호수가 너무나도 커 바다처럼 보였고, 강풍에 파도도 쳤다. 어머니는 어제의 감기가 모두 사라지셨는 지 강변 끝까지 걸으셨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호수 수평선과 반대편에 펼쳐진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바라보셨다. 지금 어머니께는 감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시원한미시간 호수의 바람을 맞으며, 어머니는 지난 시절에 맺힌 모든 한들을 바람과 물과 함께 날려버리셨다. 통쾌해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엄마 조금만 더 힘을 내~!!!”
천문대에서 시카고 스카이라인의 전경을 바라본 후 어머니께서는 시카고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높은 곳에서 시카고 시내를 내려다 보고 싶다 하셔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존 핸콕 센터로 향했다. 해수욕장처럼 보이는 미시간 호수의 백사장,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높은 시카고의 마천루,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호수 수평선 등등을 우리에게 보여준 빅 존(존 핸콕센터의 애칭)은 어머니를 완벽히 치유시켜 주었다.
더욱이 놀라웠던 것은 미시간 호수면 위로 구름이 만들어져서 우리 눈 앞을, 건물 사이사이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개가 변하여 구름이 되는 희귀한 현상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이었다. 시카고가 어머니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을 덕을 쌓아야 되는 것인가?’
시카고는 처음 우리에게 감기를 주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긴 여정 가운데 우리에게 쉼이 필요했고, 또, 이러한 장관을 가장 좋은 때에 보여주기 위한 시카고가 꾸며준 하나의 계획이었던 것같다. 확실히 우리 모두는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카고에서의 모든 여정을 마쳤다.
그리고, 천진난만하신 우리 어머니,
중국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점점 나이 드실수록 그 얼굴은 아기의 얼굴로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어머니도 점점 애가 되어가고 계신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어머니이시지만 뒤에서는 참 어리게 느껴진다.
“100세 인생이라 잖아요? 이제 중년 조금 넘었네!!!”
이번 여행이 어머니께서 또 한번 도약하시는 새로운 활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햄버거 많이 사드릴게요. 수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