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했던 그의 꿈, 코펜하겐

by 정인기

지난 십여 년간 그렇게 다시 오길 바랐던 내 1순위 행선지 코펜하겐에 왔다. 역시 안데르센과 레고의 도시답게 곳곳에서 아기자기한 환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알록달록 코펜하겐의 심장 뉘하운 운하,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 티볼리공원, 세계적인 블록 장난감 레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동화작가 안데르센, 장난감 병정을 연상시키는 근위병들, 햄릿의 무대가 된 크론보르 성, 크론보르 성 지하에 잠들어 있으며 덴마크에 위기 상황이 발생되면 잠에서 깨어나 덴마크를 구해줄 홀거 단스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전망대중 하나이며 하늘을 향해 귀엽게 뻗은 원통 라운드타워,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아가씨인 인어공주 상까지 덴마크를 걸으면 아기자기한 마을에, 마치 우리는 안데르센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덴마크는 다년간 국가 행복지수 1위를 유지해왔으며 실제로 덴마크인 친구를 만나면 자신의 나라에 대한 만족감도 상당히 높았다.


이러한 아기자기하고 동화와 같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덴마크는 북유럽을 리딩한다. 과거 수세기동안 덴마크의 왕가는 북유럽, 영국을 넘어 그린란드까지 북유럽 전체를 지배해왔으며, 이에 절정은 칼마르 동맹(Kalmar Union. 1397~1523년까지 덴마크 왕을 수장으로 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국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스웨덴은 1523년, 노르웨이는 1814년에 덴마크로부터 독립하였으며, 그 이후 스웨덴의 통치를 받던 노르웨이는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덴마크 왕통인 호콘 7세를 국왕으로 맞이하였다. 현재 덴마크는 북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그린란드(2009년 덴마크로부터 독립)와 페로제도(덴마크 자치령)가 덴마크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고, 덴마크는 북유럽과 유럽본토의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북유럽 속 작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매년 국가 행복지수, 정치청렴지수(부패인식지수)에서 북유럽 5개국이 상위 10위권에 들며, 그 중 덴마크는 다년간 행복지수와 정치청렴지수(부패인식지수)에서 1위를 기록했던 것을 보면 리딩한다는 것은 과언이 아닌 듯하다. 참고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인 북유럽 5개국이 속해있는 북유럽 협의회(Nordic Council)의 본부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다. 이렇게 아기자기하지만 그 안에 진정한 강함을 숨겨놓은 나라가 바로 덴마크이다. 그렇게 염원해왔던 코펜하겐의 아기자기한 거리를 지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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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같은 거리를 걸으니 어릴적 생각이 났다. 집에 큰 상자에 레고가 한가득 있었다. 그리고 여러 장난감들. 어릴적 아버지는 장난감을 종종 사오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에 비디오도, 게임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집은 비교적 얼리 어덥터 집안이었다. 어릴적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집안에 트리도 꾸몄다. 물론, 꾸미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해 주셨던 것 같다. 지방이나 산에 다니실 때면 시험 시기와는 상관없이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러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했다. 서로간의 대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아버지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셨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시기 10살 소년의 모습으로 전쟁을 겪으셨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하루는 내가 소설책을 보고 있었는데, 이제 소설책 읽을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며 한소리 하셨다. 본인이 대한민국에서 한 시대 가장 유명했던 소설가의 장남인데도 소설책 대신 자기개발서적을 읽으라고 강조하셨다. 그런 그분이 추천해주신 책 ‘생존력’은 대기업 CEO출신이 회사 내에서 버티는 방법에 관한 책이었다. 어릴 적 우리의 대화 주제는 드라마, 영화, 자연, 동물 등 다양했는데 성인이 되면서 그 모든 것이 공중으로 날아가듯 대화가 급격하게 줄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춘 그에게도 다시 상반된 모습이 있었다. 아버지는 노년에 동네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고 싶으시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주변 사람들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있으셨다. 물론, 건강의 악화로 그 꿈을 실천하시진 못하셨지만 대신 병원 투석실에 종종 피자를 나누셨다. 그의 강인했던 모습과 상반되어 보이는 덴마크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떠올랐다.


옛 생각을 잠시 접고 뉘하운 운하와 별모양으로 생긴 카스텔레(Kastellet) 요새로 향했다. 코펜하겐은 덴마크의 수도이지만 타이트하게 이틀 정도면 모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이다. 그곳에선 아버지가 그렇게도 갈망했던 소박한 삶이 느껴진다. 그리고 하늘도, 바다도, 건물의 벽들도, 사람들도 모두 순수하게 느껴진다. 북유럽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누리고자 하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위에 왕가, 정치인들, 위정자들의 청렴한 삶도 느껴진다. 진정한 강함은 소박한 모습 속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의지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강인한 의지로 성공하셔서 누릴 수 있으셨지만 물질적인 소유나 과시하는 것에 중심을 두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오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쩌면 조용히 북유럽을 리딩하는 덴마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작은 나라처럼 부드러워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모습이 나 또한 지켜 나가야할 이미지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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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시고서도 회사에서 종종 연락이 오면 부탁들을 해결하셨던 모습. 너무 치열하게 살아오셨다. 아버지에게 천국은 어쩌면 코펜하겐과 같이 소박하고 작고 아기자기하고 유치한 곳일지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코펜하겐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본 후 호스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외딴 호스텔의 방안에서 아버지께서는 이 밤 나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과연 어떠한 가치를 품고 살아가고 있냐고. 화려한 것도 좋지만 아버지 자신은 그것을 택하시지 않으셨다고. 내가 젊었을 적 바라던 화려한 삶이라는 것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화려한 것은 주변에서 바라보는 우리 집의 모습과는 다른 것, 아버지께서 계획하셨던 우리 가족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라고. 우리에겐 마음 가운데 내재 된 더 높고 숭고한 가치가 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은은하게 나타내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행복에 대한 갈망과 제조업에 대한 동경을 찾아 북유럽과 독일로 날아왔다. 하지만 여행 중 적지 않은 시기를 새롭게 접하는 신기한 세상 속 화려함과 해방감을 따라 눈길을 돌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덴마크의 번화가에 있는 한 호스텔에서 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 밤 아버지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신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고자 다짐해본다. 부디 조용하게 지내시길 원하셨던 그 꿈을 하늘나라에서라도 이루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