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땅 노르웨이 어딘가에서 산을 오른다. 물이 나타나면 발을 담근다. 누군가 노르웨이는 자연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노르웨이의 자연 속에 들어오면 그 거대함, 코발트 색 기암괴석 속에 단순히 자연이라는 표현보다는 야생이라는 느낌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산과 물을 지나며 나는 어릴 적 순수했던 기억을 더듬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종종 나를 데리고 산에 다니셨다. 주말에는 항상 관악산이나 북한산에 다니셨는데, 재미있는 점은 아버지는 휴가 때가 되어도 설악산에 가셨다는 것이다. ‘쉬어야지 주말에 하는 그 고된 등산을 왜 휴가에도 할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게 산은 생활이자 삶이셨던 것 같다. 또, 이제껏 살아오시면서 아버지는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도 결코 쉽고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루 하루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삶을 살아오셨다. 아버지의 삶은 등산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왜 등산이었을까?
아주 어릴 적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오지 않을 만큼 깊은 산 속, 적당한 세기로 흐르는 물과 함께 여유를 즐겼다. 강하게 내리는 햇빛, 작고 아기자기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개울의 물소리, 주변에 바싹 말라버린 흰색 바위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 속에 파묻혔었다. 그때 아버지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사 중 하나의 임원이셨다. 아버지 회사 동료들에게 아버지에 관해 물으면 대부분 가장 무서운 분이시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아버지는 순수하셨던 것 같다. 여유를 즐기셨던 것 같다. 사회부 기자 출신이셨기에 치열한 환경 속에서 여러 사건과 사고를 다루셨을 텐데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확실했다. 자연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노르웨이 사람들은 얼마나 순수할까? 홀로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에 나에게 먼저 물어봐주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었다. 물론, 노르웨이가 북해산 유전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 최상위 권에 속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순수함도 자원과 자본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과의 대화 속에선 평화를 사랑하는 기본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인가 마음 가운데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자연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자연과 함께 자란 사람을 보면 마음의 여유와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자연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아버지가 순수함을 갈망하는 듯, 유지하는 듯 느껴졌다.
순수함이라는 것. 맑고 투명한 노르웨이의 호수는 세상을 반사한다. 그리고 반영한다.
물이 너무 투명하기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동일하게 담기고 우리는 밖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맑고 투명한 사람. 순수한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순수한 사람을 보면 그 순수함 속에 자기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반성하게 된다. 그것이 순수함이 가진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마치 노르웨이의 맑고 투명한 호수가 세상을 반사하듯 순수한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자신의 내면이 반사된다. 그리고 반성하게 된다.
순수한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가장 큰 여운을 남긴다. 힘이 들 때면 찾아가 이야기하고 함께 차를 마시면 우리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노르웨이의 호수가 세상을 반영하듯 순수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포용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닮아가고 싶어한다.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다. 가장 맑은 물이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맑고 투명해 보이는 물이 너무 맑아 그 깊이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사회를 살아갈 때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자신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하게 된 말, 생각, 행동으로 자신에 대해 실망할 때가 있다. 너무 계산적이 되었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거나 등등. 그래서 우리에겐 자연이 필요한 것 같다. 자연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맑고 순수함 속에 자신을 노출시킨다면 지난날들 치열했던 경쟁 속에서 자신을 순수한 사람으로 한걸음씩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자연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자기 분야에서 완고함과 강함의 상징이셨지만 개인적 친분이 있는 지인과의 관계에서는 종종 손해를 보셨던 모습,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셨던 모습의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비록 두 얼굴의 사나이로 보이긴 했지만 등산으로 자신을 자연에 노출시켜 순수함을 지키셨기 때문에 따뜻한 마음을 유지시키셨던 것은 아닌가 싶다. 노르웨이, 노르웨이 사람이 유전이라는 자원과 강한 자본을 기반으로 나라를 유지시켜 나가지만 자연과 함께 있기에, 그 강한 원천으로 국제사회에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순수의 길을 택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지난 수년 동안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살아왔다. 합리적이라는 테두리 안에 나 자신의 냉정함을 정당화시켜왔다. 물론 지난 시절 그러한 성격으로 인한 성공과 성취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회는 냉정하고 치열하기에 앞으로도 나의 이러한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순수함은 석유라는 자원과 강한 자본을 기반으로 된 것이기에 나에게도 강한 물리적, 정신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함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순수한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 속에선 순수함과 여유로움이 되살아난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따뜻함도 되살아난다. 푸른 산, 푸른 물, 푸른 숲에 자신을 노출시켜 순수함으로의 회귀를 추구했던 아버지처럼 나에게도 자연으로의 노출이 필요하다. 완전한 자연인이 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러한 변화의 갈망 속에 주위 사람에게 공감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우리에겐 바이킹의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는 스웨덴을 감싸고 있는 긴 국토와 갈기갈기 찢어진 듯 보이는 피오르드로 절경을 자아내며 북유럽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에게 거대한 자연을 선물해준다. 노르웨이 여행의 핵심인 송네/하르당에르/게이랑에르/뤼세 피오르드, 열차를 타며 험준한 산악지형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뮈르달~플롬 라인, 여러 개의 폭포가 한 곳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협곡 뵈링폭포, 뤼세 피오르드에 있으며 높이 600미터가 넘는 바위절벽 프레이케스톨렌, 대항해시대의 중심 베르겐, 브릭스달 빙하까지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면 마치, ‘북유럽의 거대함이란 이런 것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곳곳에서 보이는 거대한 기암괴석, 맑고 깊어 주변을 반사시켜 대칭으로 만들어버리는 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끼와 돌무더기, 옛 바이킹의 유적 등은 노르웨이의 거대한 자연에 신비함을 더하여 준다. 노르웨이의 산 속을 걷고 있으면 지구 반대편 북구의 요정 트롤이 당장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참고로 북해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노르웨이 경제기반 중 하나이며 노르웨이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최상위에 속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세계 최대의 연기금 중 하나이다. 또한, 테러로 77명을 살해한 브레이빅에게 인권존중이라는 명목 하에 호텔에 준하는 수감시설을 제공하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