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우연한 기회로 미국 중서부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 서부영화 <역마차, 1939>의 배경이 된 곳이고 그 이후에도 여러 영화에서도 단골로 등장해서 잘 알려진 곳이죠. 한 해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사실, 모뉴먼트 밸리는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함이나 브라이스 캐니언의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 앤텔로프 캐니언처럼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이곳이 뿜어내는 신비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나바호 국립 인디언 공원에 속한 이곳에서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솟은 붉은 절벽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웅장함, 아름다움이 아닌 묘한 매력에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땅거미가 진 저녁이 되면 그 묘한 감정은 배가 됩니다. 이곳을 찾는 모두 이유가 없는 신비함에 매료되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배우 존 웨인은 자신의 포인트까지 지정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운을 내뿜은 곳이 있었습니다. 규모는 모뉴먼트 밸리에 비할 바가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강렬한 신비한 매력에 이끌리어 한동안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곳입니다.
바로 충북 단양군에 있는 도담삼봉입니다. 처음에 방문하였을 때, 낮이어서 그런지 푸른 강물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암괴석 3개의 봉우리가 뚜렷뚜렷하여 멋스러움을 자아냈습니다. 단양팔경 중 으뜸인 도담삼봉.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호인 ‘삼봉’도 이곳의 이름에서 연유했다고 하며 그에 따른 고사도 전해질 정도로 명승지입니다. 아마 봄, 가을 선선한 날씨에 정도전은 이곳에서 시를 읊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익어가는 논, 밭을 배경으로 약주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여행을 온 친구의 요구로 저녁에 다시 찾아와봤습니다. 땅거미가 져 어둑어둑해진 도담삼봉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밭과 산, 검푸른 빛을 띈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하나의 그림처럼만 느껴집니다. 그 묘한 매력에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군요. 한동안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게 바라봅니다.
웅장한 규모 면에서는 모뉴먼트 밸리에 비할 바가 되지 않지만 물 위 3개의 봉우리 그 신비한 면에서는 모뉴먼트 밸리보다 더 진한 여운을 줍니다.
여행은 어떠한 웅장한 자연과 멋진 경관, 발전된 도시를 자유롭게 마음껏 누비는 것, 타오르는 태양의 남쪽 나라 휴양지에서 시원한 칵테일과 함께 진정한 쉼을 누리는 것에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묘한 감정과 신비한 기억이 새겨지는 장소가 가슴에 더 남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묘한 여유의 추억이 여름을 앞둔 이 밤에 다시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