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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Jun 03. 2016

북극권 키루나에 사는 내 친구 토바이어스

2016년 5월의 어느날 버스를 타고 유카스야르비(Jukkasjärvi)에간다. 버스에는 나와 기사분, 그리고 내친구 토바이어스와 몇몇의 학생들이 타고 있다. 갑자기 옆에서 아이들이 소리쳤다. ‘머지? 왜 저렇게 난리지?’ 


창 밖을 보니 길가에 순록이 있는 것이다. 옆에서 토바이어스는 느릿느릿흔들흔들 고개를 저으며 순록 흉내를 낸다. "뫼~뫼~ 순록은 진짜 멍청하다"고~


위도상으로 북극권을 넘어선 스웨덴 키루나(Kiruna) 근처에는 순록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헌데, 길가에 있는 순록은 차가 오나마나 느긋하게 제 갈 길을 간다고 한다. 그리고, 차 쪽을 쳐다보더니 다시 그냥 가만히 서 있는다고 한다. “I don’t care~” 이 것이 토바이어스가 나에게 순록이 멍청하다고 흉내내는 이유이다. 순록을 차로 치면 순록이 뜨면서 차 앞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고 문제가 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이곳에서 차로 과속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키루나에서 30분쯤을 달렸을까? 아이스 호텔로 유명한 유카스야르비에 왔다. 우리는 아이스 호텔을 거쳐 버스의 종점인 유카스야르비 교회에서 내려서 거꾸로 걸어오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먼저, 사미(SAMI)족 캠프가 눈에 보였다. 사미족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북부에 사는 민족으로서 에스키모와도 비슷하다. 토바이어스의 할머니도 사미족 계통이라고 한다.토바이어스는 사미족과 백인의 혼혈인 샘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은 하얗지만 머리카락은 금갈색인 편이다.   


스웨덴의 라플란드 지역은 자연 경관과 백야를 즐기기 위한 완전한 여름인 6~8월이 성수기이거나, 오로라를 보기 위한 완전한 겨울인 11~3월까지가 성수기이다. 내가 서있는 5월에도 기온은 영하까지 내려가지만 오로라는 볼 수 없으며, 완전히 따뜻하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은 비수기에 해당하여 사미족 캠프는 문을 닫았다. 이 곳 대부분이 자연이 다시 살아 숨쉬는 6월 중순부터 문을 열게 된다.     


잠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옆 유카스야르비 교회로 들어갔다. 유카스야르비 교회는 1608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교회이다. 교회 강단 뒷 편의 그림이 인상적인데, 1958년 스웨덴 국영광산회사인 LKAB에 의해서 기부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스웨덴 키루나를 비롯한 라플란드(북부지방)는 광산으로 유명하다. 



“토바이어스~!!! 비키란 말이야.”  


교회는 붉은 색과 흰색, 물결 모양이나 물고기 비늘 문양의 스웨덴 전통적인 모양으로 지어졌다. 이 곳은 라플란드(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의 서쪽이 맞닿은 북부지방)의 스웨덴 어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앞에 약간의 높은 탑이 있었고, 뒤를 본당이 지키고 있었다. 교회의 외벽과 내벽, 강단과 의자 모든 것이 나무로 지어졌다. 나무가 많은 라플란드의 특성인 듯 하다.     


내부에서 잠시 사진 촬영을 하고 은은하게 감도는 나무의 향기를 느긋하게 즐기니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는 머나먼, 북극권 넘어 아직도 겨울인 유카스야르비 교회에 내가 서 있다는 것도 신기하기도 했다. 내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여기서 이렇게 느긋하게 북구 5월의 향기를 즐기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잠깐 동안의 상상을 끊고,     

교회에 들렀으니,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나와 키루나 토박이로서 스톡홀름이나 대도시로 나가고 싶어하는 내친구 토바이어스의 미래와 비젼을 위해 잠시 기도했다.    

 

그리고, 예배실 뒤에 방명록이 있어서 한글로 글을 작성했다.   


토바이어스는 한글을 못 읽으니…..    


“토바이어스 바보~!!!” 라고~    


그리고~ 유럽 교회가 부디 사회에 신앙적, 윤리적 바른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작성했다.     


교회는 9 ~ 15시까지만 개방된다.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교회를 부분적으로만 개방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와 같은 부흥회나 적극적 구제활동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도를 마친 후 우린 호수로 나갔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가운데, 누군가는 저~~~ 멀리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한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미녀가 많기로 유명한데, 유카스야르비가 이렇게 한적하니 그 미녀들은 모두 스톡홀름이나 대도시로 가버렸나보다. 



갑자기 나의 바램이 이루어 진 건가?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북유럽은 우박 쫌 내리고 겨울 햇살이 비스듬하게 비춰야 제 맛이지~~~!!!”  

   

옆에서 토바이어스는 지겹다는 듯이 “그나마 밝은 햇살의 봄이 오려는 가? 했지만 다시 겨울이 된 것 같다고~ 흐린 날씨가 너무 지겹다”고 돌을 던진다. 난 우박이 좋아서 신나게 맞았다. 서울에서 우박 맞으면 머리 감아야 되는 데, 이 곳은 보기에도 청정해 보였다. 쌓여있는 눈을 뭉쳐서 토바이어스에게 던져보려 했지만 불순물이 없어서인지 눈도 뭉쳐지질 않는다. 시원한 날씨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신선한 경험이다.  

   

“북극권에서 우박 맞는 기분은 너무 좋았다.”    

 


6개월전 나와 토바이어스는 스톡홀름의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보통 북유럽 사람들 자신들도 인정할 정도로 북유럽 사람들은 상당히 폐쇄적이고 사교적이지 않다.


북유럽 친구들과 만나면 내가 항상 대놓고,   

“북유럽 사람들은 내가 한걸음 다가서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다섯 걸음을 도망간다.” 고 얘기했는데,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친구들 중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말에 동의했다. 다만, 토바이어스는 키루나라고 하는 어찌보면 겨울 레저로 유명한?! 곳에 살고 있고, Bar 겸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때문에 외국사람들과 사교적이라고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었다.     


토바이어스는 스톡홀름에서 약간 북쪽이자, 수세기 동안 스웨덴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대학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웁살라에서 대학을 나왔다. 다만, 본인이 즐거워하는 것을 찾아서 지금은 Bar에서 일하고, Bar에서 일하는 것이 제법 행복하다고 한다. 토바이어스는 한가지 본인의 재미있는 일화를 알려주었다. 키루나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유카스야르비 아이스호텔 Ice Bar에서 일했을 때의 경험이었다.    

 



“어느 날 내가 Bar에서 일하다가 저녁이 되어서 잠깐 쉬려고, 주방에서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웠지, 그 때 갑자기 누가 주방에서 나오는 문을 슬쩍 열더니~ 얼굴을 내밀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거야.   


난 ‘누구지? 하다가   

‘어~ 왕이다.’ 왕이 몰래 나오더니 나한테 담배를 요구하는 거야. 그러더니, 어험~ 어험~ 후~~ 후~~ 너무 추운데, 왕비가 나 담배 피우는 거 너무 싫어해서~ 혹시 자네 담배있냐고 물어서 그냥~ 담배를 건네주었지. 왕비한테는 비밀로 하라며, 두 손을 후~후~ 불면서 나한테 담배를 요청하는데, 하하하~ 왕은 정말이지 너무 소박한 것 같아. 그래서 난 정말 우리 국왕이 좋아.”    


“그 때의 경험은 너무나도 좋고, 환상적이면서도 왕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국왕이 정말 좋아.”    




국왕과 맞담배라~!!!?????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북유럽의 왕가의 모토였다.  

   

‘검소하되 위엄을 잃지 않는~’    


토바이어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국왕을 만날 수 있는 경험도 자신의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은 키루나 제일의 호텔 Bar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스톡홀름과 같은 대도시로 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우린 우박을 맞으며 계속 아이스 호텔 방향을 향해 계속 걸었다. 목가적인 스웨덴 시골의 풍경과 붉은 색의 전통 가옥….. 아무리 보아도 시골같아 보이지만 토바이어스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은 스웨덴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약간 이해가지 않았지만, 키루나 시내에 사는 사람 보다 이 곳 유카스야르비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 부자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집들이 있었고, 어떠한 집은 말을 키우거나 순록을 기르는 집들도 있었다. 또한, 스웨덴의 대표 마트인 COOP마트와 Bar 등의 편의 시설들도 있었다. 


끊임없이 펼쳐진 길을 걷다 보니, 아이들이 나타났다. 북구의 시골마을이라서 그런지 동양인인 나를 보고 신기한 듯 인사한다.  


헤이~~!!   

헤이헤이~     


‘헤이?’ 우리에겐 건성으로 들릴지 모르고, 어감도 약간 안 좋게 들릴지 모르지만 ‘헤이’는 스웨덴의 보통 인사이다.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쉽게쉽게 다가오고 인사했다. 보통의 북유럽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특히 이렇게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나에게 말을 건네주지는 않았겠지…..  


나를 보고 신기한 듯이 인사하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우리가 가는 길도 아이들이 따라왔다.    



한참을 걷다가 아이스호텔 지역에 왔다.    


"Rest In Peace ~!!!"    


옆에서 토바이어스가 황천으로 가버린 아이스호텔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아이스 호텔 쪼가리를 보고 있는 나도 위로해 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바쁜 일상을 쪼개어서 와준 토바이어스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일 큰 의미였다고 답했다.  

   

하지만 속으론, ‘호수에는 그 많은 얼음들이 아직 살아있었는데, 여기는 이렇게 처분해 버릴 수가?’  


지금은 거대한 아이스 창고를 만들고 있었는 데, 혹시라도 이상 기후로 얼음이 안 만들어지는 겨울을 위하여 아이스들을 보관한다고 한다. 그런데, 날씨가 항상 추웠기 때문에 단 한번도 창고에 있는 얼음이 필요했던 적이 없다고…..;;;   


우리는 날씨도 춥고 버스도 기다려야 하기에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하려고 했지만, 카페조차 문을 닫았다고 한다. 5월의 북극권은 비수기이긴 비수기인가보다. 하는 수 없이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와서 마을을 걸었다. 


유카스야르비는 또한, 우주선 발사대와 우주기지 및 관련 학교가 있는것으로 유명하다. 유카스 야르비에 오는 버스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여러 사람들을 보았고, 또, 국제적으로 IT 방면으로인정받고 있는 인도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세계 제일의 제조업 회사였기 때문에 조선업, 제조업이 쇠퇴하게 된 스웨덴에 대해서 약간 깔보았었는 데, 그 마음이싹 사라졌다. 돈이 되건 안되건 관계없이 투자하는 스웨덴 정부나 기업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또, 이익의 80%를연구개발에 투자 또는 관련 세금으로 납부한다는 발렌베리 가문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키루나로 돌아왔다. 

북극권 넘어 스웨덴 제일의 도시라고 하는 키루나는 광산산업기반으로 발달하였다.두 개의 국영 광산회사가 개발을 하며, 이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상권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키루나는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는 시기이다. 광산을 개발하면서 광산 주변지역의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하여 집들을 옮기고 있다. 


토바이어스도 마찬가지이다. 퇴근 후 집에서 조금 여가생활을 즐기다가새벽 1시 25분이 되면 여지없이 땅굴파는 소리가 들리고진동에 집이 흔들린다고 한다. 그러면 자신은 자야 될 시간이 왔음을 감지하고 취침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만간 자신도 집을 옮겨야 한다고 한다. 부디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 스톡홀름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광산 주변 마을이었던 공터에는 지금은 앙상한 놀이터만 남았고, 마을은 차츰차츰 옮기는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서 오늘 바쁜 일상에도 함께 해준 토바이어스에게 고마워서 같이 맥주 한잔을 하러갔다. 인구 몇 만이 안 되는 이 도시에서 토바이어스는 일명 반장과 같았다. 모든젊은 친구들이 토바이어스에게 인사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이 곳은 외국인도 없고 순수 엘프들만 있었는데, 많은 북구의 엘프 여성들이 토바이어스에게 인사하러 왔다. 정말이 쪼그만한 시골에서 내 생애에 이렇게 예쁜 사람들은 평생동안 처음 본 것 같다. 미국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고개를 못 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 쪽을 보면서 힐 끗 웃는다. 


아~ 나는 계속 토바이어스를 알게 된 것이 상당히 감사했는데, 많은 친구들이 나를 보면서 토바이어스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면, 동양인친구가 있는 토바이어스 입장에서도 내가 있는 것이 작은 타운 키루나에 사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을 모두 먹은 후 잠시의 만남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만약토바이어스가 키루나에 계속 산다면, 앞으로는 정말 더더욱이 서로 보기 힘들 것이다. 한국에서 키루나에 가기 위해서는 헬싱키나 프랑크푸르트로 간 후 스톡홀름으로 가서 다시 키루나행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빠르게 잡아도 하루반은 걸리는 일정이다. 물론, SNS로 서로 자주 안부를 묻긴 하지만 부디 토바이어스가 곧, 아시아에 여행오길 바라며 ~ 


“바쁜 일상에서도 휴일을 쪼개어 동행해준 토바이어스~!!! 너무 고맙다~!!!” 



새벽 1시가 넘었지만 북극권 키루나의 하늘은 어둡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은 상쾌했다. 


이 북극권의 밝은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우리의 우정과 미래를 밝혀줄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토바이어스~!!! 우리 꼭 성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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