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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기 Jul 18. 2016

눈 쌓인 5월의 아비스코(ABISKO) 하이킹

때로는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 있을 때, 답이 찾아오기도 한다. 


작년 겨울(2015년 12월) 오로라를 보기 위해 갔었던 스웨덴 최북단 아비스코 국립공원(Abisko National Park)~!


아비스코 국립공원은,


스카이 스테이션(Aurora Sky Station)이 있어 겨울 오로라관람으로도 유명하지만 자연경관 또한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등산과 하이킹을 위해 찾기도 한다.  작년 겨울에 이 곳에 왔을 때, 경치가좋아서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을 하였기에 제법 초여름이라고 생각한 5월 중순경에 다시 오게 되었다.


출발 전 숙박을 위해 아비스코 마운틴 스테이션 숙소에 온라인으로 예약하여 확정에 대한 안내문을 받았다.


그런데, 제법 자세히 설명된 안내문에는 현재는 비수기에 해당되어 5/1일부터 성수기인 6월 중순까지 리셉션 데스크와 방을 제외한 대부분의시설이 휴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레셉션 데스크는 하루에 두 번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식당, 상점, 기념품가게등이 6월 중순까지 휴무에 들어간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주방에서 밥은 어떻게 해 먹을 수 있는지, 상점과식당은 어디에서 이용 가능한지 등등을 자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결국 식당과 슈퍼마켓은 기차로 한 정거장 전인 아비스코 외스트라 스테이션(Abisko Östra station)에 있다고 했다. 아비스코 외스트라 스테디션은 숙소가 있는 아비스코 투어리스트 스태이션(AviskoTuriststation)에서 약 2k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예전에도 걸어본 적있는 익숙했던 길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먹는 것이야 스웨덴 빵과 캐비어 튜브로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없었지만 리조트 내에 나 혼자서지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을보기 위해 오기로 한 것 아닌가?’ 한 3일 정도 산 속에서혼자 지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 생각을 해도 한참을 잘못했다.~!!!    


키루나에서 스웨덴 친구와 헤어진 후 11시 정도에 아비스코 투어리스트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역시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리셉션 데스크는 오후 1시에 연다는 얘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으며 두 시간 정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리셉션 앞에서 기다리면서 창밖으로 바라본 아비스코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5월 중순이면 늦봄 + 초여름일텐데….. 그러면 녹음이 우거졌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창 밖의 풍경은 모든 것이 눈으로 덮여 있었으며, 작년 11월말에는 얼어있지도 않았던 호수가 지금은 5월 중순인데도 얼어 있었다.   


‘하이킹은 어떻게 하지?’라는 물음과 더불어 ‘눈 밭을 걷는 것도 괜찮아’라는 답변을 동시해 반복하며, 리셉션에서 등록을 하였다. 103호로 정해진 후 방으로 들어갔다. 비수기에 모든 것이 문을 닫는다는 안내에 걱정도 되었지만 방에 들어와보니 모든 침대가 다 차있었다. 방에는 네 명의 스웨덴 친구들이 있었다. 이 방에서 숙박하는 사람은 안톤, 얀스, 요한, 마리엔 그리고, 나까지 다섯이었다. 요한, 안톤, 얀스 셋은 스키를 타러 이곳에 왔다. 마리엔은 영화 연출담당이었는데, 키루나에서의 촬영을 마친 후 잠시 아비스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아비스코가 아직까지도 눈으로 덮여있어서 하이킹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자, 옆에 있는 친구들이 여름이 되어 산과 숲이 초록 물결로 바뀌면 모기들의 습격이 너무 심해지기 때문에 아비스코 하이킹은 지금이 적격이라고 위로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이킹이 아닌 스키를 타러 갔다.     


“하긴 밤이 오지도 않는 곳이니~ 어두워서 길을 못 찾을 일도 없겠네.”     


자체 위로를 해주면서 하루를 쉬었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인 하이킹을 위해 식사를 하러 주방에 갔다. 주방에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아침 식사를 만들어 먹고 있었다. 얼렁뚱땅~ 아침을 해결한 후 간단히 짐을 꾸리고 산으로 출발했다. 


왕의 길을 가기 위해 차로를 건넜다. 이 도로는 노르웨이 나르빅(Narvik)으로 이어지지만 북극권 위의 외딴 길이어서 그런지 한적하다. 길끝으로 펼쳐진 산과 파란 하늘, 드문드문 낀 구름이 인상적이었다. 지난겨울 하루종일 흐리다가 오후 2시반만 되면 컴컴해졌던 것에 비해서 오늘은 날씨가 상당히 화창하고 좋았다. 



가장 유명한 하이킹 코스인 왕의 길(Kungsleden) 입구에 들어서자 방문록 쪽지가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여러나라 사람들이 작성한 쪽지에서 한국 분이 작성하신 쪽지를 발견했다. 작년 여름에 오신 분이 남기신 것 같은데, 아비스코의 수려한 경관에 대해 감탄하는 글이었다. 하지만 입구 뒤로 보이는 왕의 길은 과연 눈으로 덮여 있었다. 5월 중순에 눈이 녹지 않은 곳이라니….. 그리고, 그 길 위엔 스키자국이 있었다. 




“누군가가 스키를 타고 이 길을 지나갔다.”    


5월 중순의 아비스코가 눈으로 덮여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왔는데, 나는 지금 누군가가 스키로 가는 곳을 조깅화로 걷고 있다.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오고, 발이 차가워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개울가에 다가서자 스키자국의 주인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스키와 썰매를 눈에 꽂아두고 개울가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몰래 다가가보니 커플이었다. 나는 커플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개울가 사진과 커플사진을 슬쩍 찍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곤 생각했다. 결혼을 한다면 배우자와 북극권 아비스코의 외딴 산속을 걸어보는 것도 신비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결혼 후 언젠가 배우자와 함께 노르웨이 로포텐(Lofoten)부터 스웨덴 아비스코(Abisko)키루나(Kiruna)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해보는 것을 내 버킷 리스트에 추가했다. 북극권 너머 신비로운 감성이 분명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특이하게 눈 위에는 개발자국도 있었다. 



“나는 개 발자국을 따라 간다.”   


스키자국의 주인공들을 뒤로하고 길 위의 개 발자국을 따라간다. 개 발자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과연 개 발자국일지 모르겠다. 이 발자국이 개 발자국이라면 분명히 옆에 신발 자국이 같이 있어야 되는데, 신발 자국은 못 봤다.     


분명 곰발자국은 아니다. 그런데, 개발자국이라고 하기엔 많이 컸다. 그렇다면 늑대?!     


키루나에 사는 내 친구 토바이어스가 아비스코보다 더 북쪽에는 가끔 북극곰이 출몰하기도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급격하게 겁이나기 시작했다.  


‘나 지금 혼잔데…’  


‘우리 방 룸메이트들은 내가 지금 여기를 걷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과연 내 가족, 친구들은 내가 지금 지구 반대편 북극권의 산 속에서 눈을 헤치며 걷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여기는 늑대가 나오기 딱 안성맞춤인 것 같아.’  


‘나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나 여기서 진짜 뭐하고 있는 거지?’  


정말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갑자기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갈까?” x 100  

하이킹을 시작하면서 계속 반복해서 생각했던 문장이었다. 더군다나 주위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이러한 생각이 들 때면, 반대로  

 

‘지금까지 걸어왔는데, 지금 돌아가더라도 맹수는 돌아가는 길에 만날 수도 있어. 그냥 가던 길 가자.’ 라는 격려? 아닌 격려로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으며 계속 전진했다.    


눈 속에서 길이 나뉘어 졌다. 하지만 방향에 대해서 갈팡질팡하지는 않았다.   


나는 개 발자국을 따라 간다. 




“때로는 외딴 곳에서 답이 찾아오기도 한다.”  


길에 놓인 개 발자국을 한참 따라간 결과, 넓은 벌판에 다다랐다. 그리고, 허허벌판에 볼록 솟은 산이 하나 나타났다. 아비스코 사진에 항상 나오는 산이다. 이 산은 내 아비스코행의 목적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그 산 앞에 내가 서 있었다. ‘개 발자국을 따라 가는 것도 나쁘지 않네?!’ 개였는지는 모르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눈 덮인 산이었지만 나는 겨울 산을 좋아한다. 나뭇잎이 없어서 나뭇가지 사이로 주변 경관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 나무는 나름 운치가 있다.     


‘딱~’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몸을 수그리고 뒤로 돌았다. 다행히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였다. 이 곳 나무는 혹한의 추위와 눈을 겪어서인지 북구의 바람에 여지없이 부러진다.     


바람에 부딪치는 나무 소리와 물 흐르는 개울소리만 들린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없다. 이 곳에선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산을 좋아하셔서 매주 주말이면 관악산에 다니셨었다. 아버지가 산에 다니셨던 이유는 산에 다니면 마음도 넓어지고, 바쁜 회사 일에 대한 생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사시면서 노년에 여행을 다니시기 원하셨지만 나이 드신 이후에는 투병생활로 여행은 커녕 등산도 다니시지 못하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나만 혼자 이런 장관을 보는 것이 죄송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본인이 누리지 못한 삶들을 아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뻐하시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 곳에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도대체 그 동안 왜 그러셨는지…’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제서야 하나씩 하나씩 답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가지 그 모든 행동들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신 것이었다.     


나는 기뻐소리 질렀다.     


“아빠 너무 고마워요. 내가 나이가 차도 마냥 아이처럼만 보이셨겠지요? 제가 더 큰 사람이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사랑해요~ 앞으로 지켜봐 주세요!!!”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듣더라도 한국말이라 알아들을 수가 없겠지?! 한가지 마음 가운데 확신하는 것은 ‘내가 대기업 과장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렇게 유랑하는 것 조차도 사랑하실 것’이란 것이다. 어쩌면 자랑스러워하실지도?!    


깊은 산 속으로 들어오면서 처음에 들었던,   

‘우리 가족은 내가 지구 반대편 북극권 넘어 아무도 없는 외딴 산 속에서 걷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나 여기서 죽으면 어쩌지?’라는 물음들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 이 산에 있는 것이 하염없이 좋았다.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와 한참을 독대 아닌 독대를 한 후 시계를 보니 2시간반이 지나 있었다. 발 속에는 눈과 물이 가득 차 있었고, 동상에 걸리지 않으려면 돌아가야 된다. 5월 중순에 동상 걱정이라니…    


이 곳을 떠나기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원하실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외딴 곳에서 의외의 답이 찾아왔다.’



“소박한 태양이 나를 감싼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도 상쾌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눈들이 녹기 시작하여 발 속으로 물이 찼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벌레와 곤충을 싫어한다. 그 중, 거미를 가장 싫어한다. 눈 위로 거미가 걷는다. 빨간색 거미이다. 오늘따라 거미가 귀엽게만 느껴진다. 적어도 앞으로 한 30분 동안 거미는 벌레가 아닌 귀여운 그 무언가가 될 것이다. 물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장 싫어지겠지만……    


총 여섯 시간 정도 걸은 것 같다. 돌아와서 가볍게 점심을 먹은 후 가벼운 산보를 하였다.   


아비스코 투어리스트 스태이션(ABISKO TURISTSTATION)에는 약간 조그만 협곡과 산, 호수를 따라 잘 꾸며진 산책로가 있다. 그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먹을 것을 가지고 와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잘 되어있다.


이제 저녁이 되어간다. 하지만 흐려질 뿐 어두워지지는 않는다. 5월이어서 그런지 이번에 북극권을 넘어 와서 밤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등뒤로 해가 산 바로 위에서 나를 비춘다. 5월의 태양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북극권 넘어 초여름의 태양이다. 태양이라 하기엔 소박하긴 하다.


“이 태양은 나를 비춘다.”

마치 어릴 적 아버지가 하루 일과를 마치시고 동태를 사가지고 오셨던 그 당당한 모습처럼…


지금은 7월말이고 나는 더운 여름의 서울에 있다. 나의 친구는 5월의 겨울, 곰과 늑대가 나올 수 있는 북극권에서 내가 혼자 산행을 했다는 것을 신기해 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 혼자가 아니었다. 아직도 그때 아비스코에서의 신비한 그 느낌을 못 잊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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