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크리스마스가 되면 맥주를 왕창 사놓고 나초를 먹으며 영화를 본다. 시절에 따라서 조금 달랐지만 어렸을 적엔 ‘왕중왕’, 몇 년이 지나선 ‘그렘린’, 또, 몇 년 지나선 ‘크리스마스 캐롤’, 그리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나홀로 집에’….
어릴 적에는 목사님 댁에 찾아가서 아기 예수 탄생의 찬송을 부르고 초콜릿과 함께 덕담을 듣는 낭만이 있었던 크리스마스였지만 해가 지날수록 크리스마스의 낭만은 점점 사그라드는 것 같다. 요즈음 거리에 캐롤도 점점 사라지고 밤 송을 돌면 주변에 신고 들어올까봐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내 직장생활 대부분을 수행했던 교육업무에선 연말에 휴가가 나오기에 해외여행을 다녀본 적도 있었지만 퇴사 2년전에 자의로 지원했던 영업부서에선 크리스마스 아니 연말은 월마감, 연마감이 겹쳐져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조금 특이한 크리스마스의 경험이 있었다.
나는 밀레니엄 시기 크리스마스를 군대에서 보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교회에 모여서 특송 축제를 한다. 조금은 어설프고 엉성한 스무살이 갓 넘은 청년들이 만들어 가는 특송축제~!!! 그 때는 창피함도 없어서 눈 스프레이와 코믹 분장으로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서 그 자리에 계신 목사님과 집사님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렸던 기억이다. 밀레니엄 크리스마스를 군대에서 보내는 것만큼은 피하겠다고 했던 말년 병장은 우리를 남겨놓고 떠났지만 시컴시컴한 군인 아재들끼리 보낸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나름대로 따뜻했던 것 같다.
먹지 못하는 상품보단 역시 하나의 초코파이에 환희했던 시절~!!!
우리보다 10배의 봉급을 받는 지금의 군인 애들은 초코파이 하나에 이런 봉 잡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추운 이 겨울 우리에게 안심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선사해주는 군인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03년말엔 교회 아이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떠났다. 전체 일주일의 일정이었는데, 그 중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이스라엘 광야를 5시간 동안 행군 했었다. 우리는 처음엔 눈 덮인 크리스마스를 상상했지만 사막과 같은 이스라엘 광야에서 눈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오히려 걷다가 더워져서 외투를 벗었었다. 광야를 걸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유목민인 베두인들도 만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아버린 옛 왕국의 무너진 관문을 통과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덥고 고단했지만 크리스마스 날 이스라엘 광야에서 행군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유대교는 기독교와 다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그들에게 정치와 경제적인 부흥을 이끌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에서 크리스마스는 조금은 썰렁하다.
대신 크리스마스 시기에 고대에 수리아로부터 성전을 지켜 정화한 마카비오를 기리는 수전절이 있다. 유대인들은 수전절을 기념한다. 미드나 미국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기에 ‘해피 하누카(Hanukkah)’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누카는 수전절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공산당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종교, 집회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중국에서 종교기관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 비슷한 맥락으로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 아니다. 그러한 중국에서 가정교회 친구들과 극장을 빌려 몰래 크리스마스 축제를 하였다.
형제, 자매들은 성가를 부르며 기뻐하면서도 공안에 들킬까봐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현재는 많이 완화 되었겠지만 그 당시였던 2005년도에는 중앙정부가 다소 보수적인 편이었어서 더더욱 조심했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두세 명씩 시간 간격을 두고 집으로 귀가하였다. 조금은 차가웠던 크리스마스였지만 우리들의 온기로 주변을 녹여준 것 같다.
미국 뉴욕 근교 뉴저지의 어느 집,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트리에는 각종 장식이 매달려 있고 트리 주변으로는 인형과 집 모양의 램프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무 밑에 쌓여있는 선물 상자였다. 그렇게 이모와 이모부는 우리 남매를 맞아 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이모와 이모부가 스테이크 롤을 만들었고 사촌동생들과 우리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았다. 식사를 마친 후 벽난로에 불을 지핀 거실에서 캐롤을 들으면서 마시는 따끈한 핫초코와 케익, 창 밖으로 내린 눈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살려 주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모두는 거실로 내려와 ‘메리 크리스마스’로 서로에게 인사했다. 가장 기다렸던 선물 개봉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 모든 것이 이모와 이모부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날만큼은 그렇게, 그분들은 어른, 우리는 어린이들이 되어 있었다. 선물 개봉 후 느즈막하게 시작된 아침 식사에서는 이모의 특제 수프와 바비큐가 나왔다.
가장 크리스마스다웠던 메리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흘러갔다.
크리스마스 연휴 후 회사로 복귀하여 한 해를 시작하는 엄청난 페이퍼 워크들이 나를 기다렸지만 그 때의 추억이 힘이 되어 기쁨으로 수행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회사를 내려놓고 잠시 쉼을 얻으면서, 어머니, 큰누나 가족, 작은 누나, 나는 2015년말에서 2016년초까지 1개월을 하와이 Big Island에서 보냈다. 커피로 유명한 코나(Kona)에 우리가 아는 선교단체 본부가 있었는 데, 선교사님이 사역지로 나가신 사이에 우리가 집을 점령해버렸다. 반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은, 약간 많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다른 크리스마스였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있었던 가장 뜨거웠던 크리스마스이었다. 날씨가 맑았던 것처럼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파이팅 넘치던 추억의 크리스마스이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연말 휴가를 권장하는 근무문화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겨울이기 때문에 조금 움츠러들 수 있지만 자신이 조금만 노력해 본다면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