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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Dec 22. 2019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 일어나는 일

“아빠가 오줌 눌 때 변기 시트 열라고 했지!” 


아침부터 화를 냈다. 

결혼해서 집안일은 고작 화장실 청소만 하면서 여섯 살 아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들은 큰 소리에 놀랐는지 글썽거리다가 이내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내는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다.

때때로 잘못된 훈육은 아내와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여섯 살이잖아!” 
'오줌 싸는 일이 뭐 대수라고 소리를 쳤을까?' 

부모님 댁 화장실을 40년 넘게 들락거리면서 청소 한 번을 안 했는데 

자기 집 생겼다고 화를 내는 속 좁은 모습이 우습다. 

후회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다. 

대체로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영화의 주인공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거나 지구를 정복하는 악당들을 무찌르며 인류를 구원한다. 

운명을 바꾸고 인류를 구원하는 영화들과 비교하면 ‘어바웃 타임’은 평범하다.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가족 영화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아버지. 시간여행을 하는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은 아들. 

아버지는 시간여행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아무리 시간여행을 해도 누군가 날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결국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시간여행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뭔가를 바꾸려면 본인이 그럴 마음이 있어야 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두 가지 공식을 아들에게 알려준다. 

첫 번째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 두 번째는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사는 것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아들은 평범한 하루를 두 번씩 살기로 한다. 

처음에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짜증을 내는 직장 상사, 시무룩한 표정으로 거스름돈을 건네는  점원, 

지하철 옆자리에서 큰소리로 음악을 듣는 승객과 다시 마주친다. 

두 번째 시작하는 하루는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지게 한다. 

주인공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인생을 만끽한다.


“마치 그 날이 내 특별한 삶의 마지막 날인 듯이...”  


어느 날 주인공은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이 너무나 즐거워서 하루를 반복하는 시간여행을 굳이 하지 않는다. 


“이제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오늘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는 하루를 두 번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하루를 두 번 사는 것처럼 살 수는 있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변기 시트를 미리 올려놓아야겠다.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를 내리고 아내와 나눠 마셔야지. 

한 번뿐인 나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하루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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