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퇴근길 하늘을 보며 드는 마음. 밤낮과 기후를 가리지 않는다. 집안일과 육아는 때로 다시 출근하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창밖에 눈 내리는 오늘이 아름다운 건 당신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지만, 사실 아니다. 오늘이 아름다운 건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고단하다
출근길 하늘을 보며 드는 마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힘들면 어쩌자는 건지. 그래도 고달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신은 놔두고 몸만 고생하자. 몸은 아직 쓸만하니까. 아직은.
정확하다
열차는 정확하다. 제시간에 정확히 도착한다. 물론 백 퍼센트는 아니다. 절대라는 건 세상에 없다. 대체로 그렇다는 거지. 열차 지연에 따른 배상 내용은 코레일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길.
망설이다
금연 53일째. 교대 승무원이 기관차에 담배를 놓고 내렸다.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꾹 참았다. 도착할 때까지 두고 내린 담배에 손을 대지 않았다. 비결? 왠지 그래야 이 글이 완성될 거 같아서.
안타깝다
건너편 선로에서 발 동동 구르고 있는 손님을 본다. 거기가 아닌가 보다. 당장 넘어올 수도 넘어가서 태울 수도 없는 승객을 바라보는 딱한 마음. 그나저나 어쩌나. 막차인데.
어이없다
기관차 창문을 열자 밖으로 날아가 버린 승무일지. 객차 창문은 열 수 없지만, 기관차 창문은 여닫을 수 있다. 나는 늘 열차가 한강 철교를 지날 때면 창문을 열고 기지개를 켠다. 팔, 다리를 쭉 뻗어 피곤을 쫓는다. 그러고 나면 문득 떠오른다. 뭐 하고 지낼까. 서울 한강 근처 어딘가에 잘살고 있겠지. 누구? 아. 아니. 그때 그 승무일지.
야속하다
나는 ‘무궁화호’다. 나를 보며 사진 찍던 아이들이 새로 나온 ‘KTX 이음’ 열차가 도착하자 우르르 몰려간다. 나도 한때는 ‘비둘기호’, ‘통일호’보다 잘 나갔거든. 너라고 안 그럴 거 같아? 겸손해라. KTX 붙은 것들.
편안하다
달리던 열차가 고장으로 멈춰서는 일이 없고 새벽 알람을 맞추지 않고도 잠들 수 있다면 편안할까. 배고프면 언제나 먹을 수 있고 배 아프면 아무 때나 화장실 갈 수 있다면 나는 편할까. 부족한 건 늘리고 잘못된 건 고쳐야 해. 하지만 세상에 편한 일이 어디 있겠어. 있어도 마냥 좋지만은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 모자람 없이 좋다’라는 생각도 필요해. 그러다 '무인 운전' 되는 수가 있거든.
답답하다
아무리 무전기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창피하다
무전기 볼륨이 낮춰져 있었다.
감사하다
아내와 나는 부모님 살아 계신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다. 근데 하루는 돈 버는 일에 다 쓰면서, 정작 고마운 건 몸이다.
착각하다
기차다! 기차가 오면 손 흔들어 반기는 사람들. 그래 기차 보고 그러는 거다. 나 좋다고 그러는 거 아니다.
넘겨짚다
아침 운동을 나가려는데 아내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 아내가 뿔난 이유는 아이들이 잘못해서다.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뻔하다
코로나에 걸릴 뻔했다. 코로나로 회사가 뒤집히고 아군과 적군이 분명해질 뻔했다. 우울해하는 친구를 위로하다 코로나 검사받고 더 우울해질 뻔했다. 어제는 사상 사고가 날 뻔했고 엊그제는 차량이 고장 날 뻔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인생은 뜻하지 않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인정한다. 내 삶의 9할은 운이다.
강요하다
모태신앙이라고 다 목사님, 신부님 되는 거 아니다. 억지로 안 된다.
변명하다
온종일 나가지 않고 집에 처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다 코로나 때문이다. 결코 게을러서가 아니다.
책임지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 모든 화살은 내가 맞겠다”라는 말. 이순신 장군쯤 돼야 할 수 있는 거다. 나대지 마라. 돌쇠야.
현혹되다
대학교에 ‘캠퍼스 낭만’은 없었다. 군대 제대해도 ‘내 세상’ 아니었다. 더 이상 “취업만 하면 결혼도 문제없다”라는 어른들의 수작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자.
보잘것없다
발톱이라고 그러는 거지? 빠져봤어? 겁내 아파.
누리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가격은 4천 원 미만이 적당하다. 4천 원 이상이면 커피숍에서 두 시간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돈 아깝다는 생각에 여유와 맛을 즐길 수 없다. 뭐 나는 그렇다.
뽐내다
내 주변 사람들이 힘자랑 안 했으면 좋겠다. 술 자랑도 안 했으면 한다. 서로 자기 주량이 세다고 뽐내면 어쩌자는 건가. 돈 자랑 안 할 수 없을까? 월급봉투의 두께가 서로의 자존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럴 땐 다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다.
탈선하다
울지 말자. 탈선해도 괜찮다. 우리는 기차가 아니다.
대비하다
“코에 피어싱하고 팔에 용 문신한 후배가 회사에 들어올 수 있다”라는 마음은 항상 갖추고 있다.
내다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살면서 요란한 기차 소리에도 잠만 잘도 자던 그 아기. 지금은 재개발로 조합원 보상받고 역세권 아파트 분양받아서 떵떵거리고 살겠지?
정답다
나에게 무궁화호는 삼겹살, 치킨, 짜장면, 새우깡과 같다.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목록 가운데 하나. 혼자 즐기면 심심하니까. 다른 사람들 목록에서도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당하다
성당에서 새치기하는 사람은 뭐지?
속상하다
‘내가 믿는 종교가 부정보다 긍정을 알게 해 줄 수는 없을까.’
지옥 가는 죄책감보다 천국 가는 기쁨을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나눔과 사랑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싶은데 속상할 때가 있다.
조용하다
다른 사람의 자유도 내 자유만큼 보장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열차에도 '조용한 칸'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차를 타면 아무 말 없이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전화 통화는 안 했으면 한다. 실수라고 하지만 실수는 미안한 마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 뻔뻔함이 나는 싫다. 조용히 가자. 소음 공해. 코로나만큼 좋지 않다.
소통하다
윗사람과 막힘없이 통하려면 골프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 즐기는 일은 존중하고 인정하지 못하면서 말씀은 아주 넬슨 만델라 납셨다.
퇴색하다
젊을 때는 여자만 보이더만, 나이 드니까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따위가 보인다.
아이러니하다
함박눈 오고 새벽 동트는 날 열차 운전은 힘들고 피곤하다. 그럴수록 차창 너머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속물스럽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살면서 요란한 기차 소리에도 잠을 잘도 자던 그 아기.
지금은 재개발로 조합원 보상받고 역세권 아파트 분양받아서 떵떵거리고 살겠지?
아리송하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 있건 없건 고르게 주어진다. 시간은 지나가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헛되이 보낼 수 없다. 집에 있는 식기 세척기, 로봇 청소기로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얼마 전 빨래 건조기를 산 아내는 전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며 흐뭇해한다. 그런데 시간.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결론적이다
때로는 결과가 과정을 말해준다. 내 옷에서 나온 '손톱 스티커'가 친구 아들의 것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아내도 분명 나를 믿지 않았다. 웃프다. 모두 건투를 빈다.
야박하다
왜 아내는 처갓집을 가도 내가 출근하면 가고 퇴근할 때 돌아오는 거냐고.
의도하다
나는 알았다. 아이들과 힙합 음악을 듣고 비디오 게임기로 ‘피파 23’ 축구 게임을 같이하게 될 날이 올 줄.
신기하다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걷다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쑥덕이다
군대에서도 혼쭐이 났었는데 회사에서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 주위에 떠도는 소문들. 내가 빌미를 제공한 걸까. 화나고 속상해서 술을 마셨다. 억울하고 분해서 평소 주량을 넘겼다. 곧장 집으로 들어와 ‘놀면 뭐하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술기운에 밤새도록 뒤척였다.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하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다음 날 아침.
‘하마터면 창피할 뻔했잖아’
왜 하찮고 꼴답잖은 말들에 속상했을까. 정말 다행이다. 아무도 모른다.
깨닫다
“나는 좋은 어른으로 남고 싶어.”
“자기야, 그러지 말고 좋은 남편부터 되는 건 어때?”
“음, 그냥 적당히 좋은 어른이 되는 걸로.”
아빠한다
산책한다. 오늘도 신이 난 아이들이 따라나선다. 돌아오는 길. 힘들어 떼쓰는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주변에 느지막이 건강을 챙기시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미리 살필 수 없는 저마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그들도 하루하루 실패를 거듭하다 기회를 놓쳐버린 건지 모른다. 아이들은 시간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쓴다. 시간 내지 않으면 기회는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 나 아빠 한다.
행복하다
나는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린다. 모두 잠들면 슬금슬금 좀비처럼 방에서 기어 나온다. 살다 보면 한밤중에 퇴근하는 행운을 맞이할 때도 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 이게 뭐라고 행복하다. 사람은 무(無) 소유하면 희망(希望)하고, 풀(full) 소유하면 그냥 망(亡)할 수도 있는 거 같다. 부족해야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비우고 채우는 술잔처럼 사는 오늘이 나는 좋다.
모자라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길도 자세히 보면 1cm 정도 틈이 있다. 더운 여름 레일이 늘어지고 휘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덜컹덜컹" 기차 소리는 끊어져 있는 철길 사이를 지날 때 난다. 기찻길은 하늘에도 있다. 기차 지붕 위로 전기를 공급하는 하늘 기찻길은 전차선이라 부른다. 길게 뻗은 이 전선도 사실은 끊어졌다. 끊어진 전선을 지나기 위해 기관사는 전원회로를 차단하고 관성으로 운전한다. 이때 엔진은 시끄러운 소리를 멈추고 객실은 전등이 꺼지기도 한다.
사람도 기찻길도 틈이 있어야 갈 수 있다. 완벽하면 오래 못 간다. 내가 보고픈 사람처럼 나도 살아야겠다. 모자란 동네 형처럼. 기찻길처럼.
위태롭다
“깨 농사는 끝까지 몰라”
농사짓는 선배가 들려준 깨 농사 이야기.
“장마 때 폭우가 쏟아지잖아? 그러면 웃자란 놈부터 쓰러지는 거야”
“많이 자란 놈 쓰러지면 눈에 띄지도 않던 작은 깍지들이 쑥 뻗어 올라와. 그래서 결국 추수하게 되더라고”
살인 더위에 태풍과 지진까지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농촌은 기온 널뛰기에 가을걷이가 쉽지 않다고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반복되는 이상기온.
‘우리가 사는 지구에 괜히 뭔가를 많이 해서 이 지경이 된 건 아닐까?’
‘웃자란 우리는 이제 쓰러져야 하는 걸까?’
쓸데없이 많이 자라면 연약해진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