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또 당했다. 백기를 올렸어야 했는데 청기를 올렸다. 조금 전에는 올리라는 걸 내렸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서운하다. 아빠한테 바보라고 하다니. 딸이 실수했을 때 나는 괜찮다고 감싸 줬는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은 신이 아니다. 우리는 마약이나 도박, 비리, 폭력 따위를 실수라고 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해야겠다.실수와 과실은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른이다. 부주의나 태만으로 인한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청기백기 게임은 실수가 맞다. 사람이 여러 번 반복하는 일에 실수를 없애는 방법이 있을까. 불행하지만 인간은 꼼짝없이 사고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열차 운전실에 CCTV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사고조사와 경위 파악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기관사는 운전실에서 식사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기 때문에 CCTV 각도를 조절해 기관사가 조작하는 조종간과 손만 촬영하기로 의견을 내보였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안전을 위해서는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까지 철도는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보완해진보를 이뤘다. 보다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인권보다는 안전이다. 인권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운전실 CCTV 설치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안전 문화가 낳은 CCTV 설치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본질은 철도 안전이다. 애당초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그릇 친 모든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원인은 놔두고 평가와 책임 떠넘기기 일처리에 CCTV가 사용되는 것은 아닐까.
"난 한 놈만 패"
사고로 인한 책임과 온갖 욕설은 문제가 일어나고 난 뒤 한 명에게 뒤집어 씌워진다. 아무 일 없으면 얼레벌레 넘어가고 문제가 되면 허둥지둥 옭아맨다. 딱 한 놈만 책임지면 사고는 넘어간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맹세와 교육 시간만 늘어날 뿐이다. 회사는 한 명으로 인해 모든 직원들이 정신을 바로 차리고 집중하기를 지시한다. 현재 국토부는 기관사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과태료가 무섭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왜 그릇된 행동을 하는지 파악해 시스템을 보완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하지만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믿고 양심에 따라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을 추궁해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려는 안전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안전은 사람들의 노력과 기술의 발달, 그리고 사고의 교훈에 의해 진보한다."
신혼초 아내가 속상한 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내에게도 문제가 있다며 내씹는 듯이 말했다. 아내는 위로를 받으려다 되레 우울해졌다. 그날 결국 부부싸움을 했다. 그 뒤로 아내는 모든 얘기를 털어놓지 않는다. 반성한다. 공감을 해줘야 하는 일을 가지고 문제를 삼으면 감추고 살게 된다. 회사가 징계를 벼르고 있다면 말하겠는가. 문제를 삼으면 진실은 은폐되기 마련이다.
회사는 '무사고 목표일'을 달성하는 소속에 상금을 보낸다. 여기서 '무사고'는 산업재해를 포함한다. 정부는 사고 없는 회사를 평가해 성과급을 다르게 지급하고 있다. 안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평가하고 급여를 주는 문화는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다. 사고 앞에 냉정해야 한다. 생각해 보자. 누가 사실을 말하겠는가. 큰 사고만 밝혀질 뿐이다. 덮을 건 덮고 서로 책임 떠넘기기 바쁘지 않겠는가. 아파도 아픈 게 아니여야 기뻐하다니. 왜 이러는 걸까. 대개 이렇게 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순진하거나 아니면 사고를 감추기를 바라거나.
'어떻게 하면 철도가 안전할까?'
답은 시스템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시스템으로 인간의 오류를 보완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사각지대는 인원을 늘려 사고 확률을 줄여야 한다.
열차는 선로를 따라 신호 조건에 맞춰 움직인다. 열차는 사고를 대비해 여러 보안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보안장치는 열차가 속도를 초과하면 줄여주고 신호를 위반하면 멈추게 한다. 기관사가 졸면 벨이 울리고 5초 안에 반응이 없으면 열차는 멈춘다. 긴급한 상황에 '열차방호장치'가 동작되면 반경 2KM 이내에 모든 열차는 멈춰 선다. 기관사가 통화하는 무전은 실시간 녹음되고 제어하는 모든 기록들은 '열차의 블랙박스'라 불리는 '운행정보기록장치'에 보관된다. 기관차 앞에는 카메라가 달려있어 전방을 상시 녹화하고 있다. 기관차에서 하는 모든 운전 조작은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보안장치에도 오류가 존재한다. 이때는 인간이 개입해 오류를 바로잡는다. 시스템과 인간은 서로의 오류를 감시하고 보충하는 역할로 안전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폭주 기관차는 없다."
시스템과 사람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에 사고를 일부러 내고 싶은 기관사가 어디 있겠는가.
'비행기 조종실에는 CCTV가 있을까'
2001년 9·11 테러 이후 항공기 조종실에 CCTV 설치를 추진했었다. 하지만 조종실에 2인이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 CCTV를 대신하고 있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CCTV를 설치했다고 테러를 하겠다는 조종사 마음을 바로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항상 2명을 두어 서로 감시하고 돕는 것이 사고 위험이 줄일 수 있다. 조종사 1명이 화장실에 갈 경우 다른 승무원(객실 승무원)이 대신 조종실에 갈 수도 있으니 사고 염려에 아픈 속까지 덜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건설현장에 타워크레인 사고가 많아지자, 조종실 CCTV 설치 법안을 발의하려 했었다. 사실 원인은 외주화, 안전검사, 고용불안 등 건설업계 구조적인 문제였다. 이를 놔두고 사고를 낸 크레인 조종사에게 떠넘기려고 한 것이다. '건설기계관리법'을 개정했고 시설물 관리 및 안전성 감독을 강화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국토부는 인권도 안전도 모두 지켰다.
"CCTV 설치 없이 타워크레인 안전성을 높였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학창 시절 우리 반 수업 촬영을 위해 방송국에서 온 기억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아침부터 분주했고 우리는 어쩔 줄 몰라했다. 칠판에 선생님 글씨는 평소와 달랐고 질문과 학생을 미리 뽑아 정했다. 카메라 불빛이 비치고 우리 모두는 가면을 썼다. '어떻게 나올까?'라는 생각에만 신경이 쓰였다. 나는 하지도 않는 짓을 했다. 교과서에 무려 밑줄을 그었다. 수업은 듣지 않고 듣는 척을 했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지 않고 연기를 했다. 정작 방송에 나오기는커녕 뒤통수도 안 나왔는데 말이다.
사람 일에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면 CCTV는 우리를 보고 웃게 된다. CCTV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지만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CCTV가 감시가 아닌 안전에 쓰였으면 좋겠다. 사고에 웃음은 없다. 웃음은 오로지 안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