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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Feb 09. 2020

무궁화 열차는 새우깡이다

나는 돈이 좋다.

그렇다고 돈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하다.

결국 '돈이 얼마만큼 필요한가'라는 문제다.


상갓집에만 가면 고스톱 치는 직장 형님이 말했다.

"고스톱 치는 사람도 뒷주머니에 30만 원 넣고 치면

자신감이 생겨서 게임 내용이 달라져"


중학교 2학년 때 주눅 든 나를 보고 강선경 국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주머니에 500원씩 꼭 넣어 다녀"

그때 500원은 지금 5천 원 정도 되겠다.


돈이 있으면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살 수 있게 해 준다.

돈이 지나치게 많으면 눈에 보이는 게 없고 거만해진다.

아니 도대체 돈이 얼마가 있어야 오만무례해지고 불행해지는 걸까?    

"로또에 당첨된 사람 치고 행복한 사람 없다"라고 하는데  

로또 당첨 한 번 되어 보고 싶다는 민중의 상상력마저 통제하려는 자본의 수작일지도 모른다.   


내가 면 떨어지고 팔면 오르는 주식.  

우리 집 빼고 오르는 집값.

동료들과 점심내기로 하는 '사다리 타기' 한 번 당첨되기 힘든데 어디 로또는 되겠나.   

그렇다고 쉽게 체념하지 않는다.  

일찌감치 포기했을 뿐이다.

끝없는 욕심에 한도를 정해야 만족을 할 수 있으니까.      

내게 부족한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을 포기하면 시간을 얻을 수 있다.

한도를 정하기 어렵다.

최소한도는 무궁화호 정도면 좋겠는데.    


여행은 내 몸을 이동해 다른 장소에 가는 일이다.  

열차는 여행을 가기 위해 탄다.

열차 여행에 필요한 승차권은 돈을 가져야 살 수 있다.

또 돈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려고 할 때

열차표가 부담이 돼서 열차를 못 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KTX 승차권은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합리적 가격으로 판매해야 하고

최소한 무궁화호, 전동차는 인간이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존재해야 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무궁화호는 삼겹살, 치킨, 짜장면, 새우깡 같은 거다.  

먹고 싶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목록.    

나 혼자는 심심하니까.

다른 사람들 목록에서도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어깨 펴고 살 정도는 있어야 한다.

돈 때문에 무서워하거나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다만 먹는 거, 입는 걸로 주눅 들지 않아야 하는데                              

타는 거, 사는 곳으로 주눅이 들지 않으려 해서 늘 답이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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