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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Oct 14. 2020

그래 가끔 땡땡이치고 살 거다

학창 시절 땡땡이를 쳤다

학창 시절 땡땡이를 쳤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당구장, 비디오 방을 누볐다.

그때 경험한 당구는 지금의 당구 실력이 되었고 몰래 본 명작 영화와 배우들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브래드 피트와 브루스 윌리스가 등장하는 모든 영화를 섭렵했다.  

맥 라이언을 보면 설렜고 샤론 스톤을 만나면 흥분했다.  


'왜 학교 앞 당구장만을 고집했을까?'     

선생님은 우릴 찾아오셨고 사랑의 매질로 현실을 깨우쳐 주셨다.

그렇게 맞고 다음날 땡땡이를 또 쳤다.

선생님은 모르셨다.

치기 어린 행동으로 객기 부리는 학생은 아무리 때려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반성문도 썼는데 선생님은 반성문을 백자 원고지에 삼백자로 요약해 제출하라고 하셨다.

다음날 빨간 글씨로 수정된 반성문.   

선생님은 틀린 문법, 맞춤법, 띄어쓰기와 삼백자를 벗어난 글자 수를 모두 더해 잘못된 수만큼 마루 걸래 자루로 내 손바닥을 사정없이 내리 치셨다.

나는 알았다.  

글을 못쓰면 손을 못쓰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점심시간에는 농구장에서 마이클 조던 슛 폼을 따라 했다.

지금도 오락실 농구 게임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내는 내가 농구를 곧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니다.

마이클 조던에게 슛 폼은 배웠지만 드리블은 배우지 못했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 노래를 좋아했다.  

수업 시간에는 힙합 음악의 랩 가사를 노트에 옮겨 적고 흥얼거렸다.

랩 가사에 담긴 운율과 동음이의성에 감탄했고 유의어, 다의어에 감격했다.

지금은 자이언티와 지코 음악을 듣고 즐거워한다.

가끔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 작품을 들으며 감동받기도 하지만 요즘은 테스 형을 찾는 나훈아 형 노래에 귀가 쏠린다.


그래 맞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공부를 못했는데 열심히 했으면 어쩔 뻔했나.   

하마터면 후회할 뻔했다.  

그나마 땡땡이치고 놀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

한 번쯤 생각할 법도 한데 그땐 하지 못했다.


기껏 공부해 봐야 의사, 판사, 변호사가 될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해도 회사 사장이나 임원이 될 수 없다.    

집안일 아무리 해도 나는 최수종이 아니다.


가정과 직장.

모든 일 잘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상대방은 느끼지 못하고

혼자 잘해준 나는 상처 받는다.

눈치만 보다 하고 싶은 일 못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시간 내서 하고 싶은 일 해야겠다.  

가끔 땡땡이치고 살 거다. 

후회하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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