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있어?”
아이가 묻는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드디어 진실을 말해 줄 시간이 온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 날카로운 질문은 계속되었다.
“우리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들어와?”
“산타 할아버지는 몇 살이야?”
“하룻밤 만에 세상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선물을 나눠 주는 거야?”
알고 싶어 했지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의 기쁨과 행복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산타클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다. 진실은 나보다 2살 어린 여동생이 말해주었다. 동생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더 오래 믿었을지도 모른다. 영리한 동생은 산타 할아버지와 엄마가 서로 친하다는 말을 듣고 갖고 싶은 선물을 그때그때 이야기했다. 나는 거부했다. 그럴 리 없었다. 산타와 나의 관계에 엄마가 끼어드는 게 못마땅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내 마음 다 알고 계시거든, 엄마는 몰라도 돼.”
산타 할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이라며 끝끝내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갖고 싶던 무선 자동차 대신 일기장 한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다.
“산타 할아버지가 평소에 일기 좀 쓰라고 전해 달래”라는 어머니 말씀에 글썽이던 나는 눈물을 쏟아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그 밤, 나는 펑펑 울었다. 속상했지만, 꼭 선물을 받지 못해 운 건 아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사실이 젤 서러웠다.
기차는 시간을 건너 나이를 싣고 달린다. 어느덧 나도 산타 할아버지가 되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산타 할아버지의 나이를 묻는 아이에게 장난삼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마흔다섯 살이야.”
아이는 다행히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나에게 일기장을 주었던 나의 산타클로스는 작년에 칠순 잔치를 했다.
‘나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겠지? 아쉬움도 더 크실까?’
코로나가 퍼지기 전 동생은 중국으로 취업을 한 남편을 따라 이민을 결정했다. “엄마가 해준 반찬들이 생각나”라는 동생의 말에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한 보따리 챙겼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나는 루돌프 사슴처럼 산타클로스를 공항까지 모셔 드렸다. 밤새워 준비한 선물 가운데 멸치볶음과 오징어채는 세관에 걸렸다고 한다. 수산물은 반입이 안 된다는 중국 관계자를 붙잡고 사정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며 한숨을 내뱉는다.
하루는 변한 게 없는데 세월은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올해도 변함없이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주실 선물을 기대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직접 보겠다며 큰소리다. 눈 부릅뜨고 방문을 지켜보다 잠이 들 게 뻔한데 안타깝다. 아이가 크면 알게 되겠지. 산타클로스는 멀리 있지 않고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산타클로스가 주는 선물은 커다란 장난감이 아니라 마음속 사랑이었다는 사실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군가의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 산타클로스는 아닐까.
“당신은 산타클로스가 있나요?”
“당신의 산타클로스는 몇 살이신가요.”